
메이저리그 FA 시장이 얼어붙었다. 초반에는 작년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됐지만, 이후 박차를 가하지 못하고 있다. 각 구단들이 '버티기'에 들어가면서 시간과의 싸움이 시작됐다.
이 와중에 모두의 관심을 끄는 선수가 사사키 로키(23)다. 지바 롯데의 '결단'으로 메이저리그 포스팅 자격을 얻었다. 12월10일에 공시하면서 45일 동안 협상을 할 수 있게 됐다(미 동부 기준 1월23일 오후 5시 마감).
괴물
사사키는 일본에서 괴물 투수로 불렸다. 엄밀히 말하면 2019년부터 시작된 '레이와 시대의 괴물'로, 이전 '헤이세이 시대의 괴물'로 불린 마쓰자카 다이스케의 계보를 이어갔다. 고교 시절 사사키는 35년간 고시엔에 나가지 못한 팀을 이끌면서 8일 동안 435구를 쏟아부었다. 이 과정에서 101마일을 던져 오타니가 보유했던 고교 최고 구속도 깨뜨렸다.
사사키는 고시엔을 위해 메이저리그 진출을 뒤로 미뤘다. 그러면서 2019년 NPB 드래프트 전체 1순위 지명을 받았다. 당시 지바 롯데는 이구치 타다히토 감독과 요시이 마사토가 투수 코치로 있었다(현재 감독은 요시이). 두 지도자 모두 메이저리그 경험이 있다 보니, 가슴 속에 메이저리그를 품고 있는 사사키의 마음을 잘 이해했다. 덕분에 사사키는 다른 투수들에 비해 철저한 보호를 받으면서 성장할 수 있었다.
사사키는 2020년 프로 첫 시즌에 불펜 피칭과 시뮬레이션 경기만 소화했다. 2021년에도 등판마다 추가 휴식일을 가지는 등 커리어 초반 무리하지 않았다. 지바 롯데는 사사키를 천천히, 또 조심히 다루면서 사사키가 온실 속에서 자랄 수 있도록 노력했다.
일본에서 사사키 피칭의 백미는 2022년 퍼펙트게임이다. 4월10일 오릭스 버팔로스를 상대로 13타자 연속 탈삼진이 곁들여진 19K 퍼펙트게임을 달성했다. 일본야구에서 28년 만에 나온 퍼펙트게임이었다(1994년 마키하라 히로미).
사사키는 그 다음 등판에서도 8이닝 퍼펙트를 선보이면서 '52타자 연속 범타'라는 세계 신기록을 수립했다. 메이저리그는 2014년 유스메이로 페티트가 46타자를 연속 범타로 돌려세운 바 있다.
사사키의 최고점을 확인한 일본야구는 환호했다. 그리고 메이저리그도 사사키를 예의주시했다. 많은 팀들이 스카우트를 파견해 사사키의 피칭을 지켜봤다. 다저스 앤드류 프리드먼 사장은 직접 일본까지 가서 사사키를 보기도 했다.
2023년 사사키는 사실상 메이저리그 쇼케이스를 가졌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주관하는 WBC 대회에 출전했다. WBC는 현역 메이저리거들이 나온다는 점에서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사사키는 두 차례 선발 등판에서 7.2이닝 4실점 3자책(ERA 3.52)을 기록했다. 피칭 완성도는 야마모토가 위였지만, 잠재력은 그 누구보다 높았다.
주무기
사사키의 구위는 진짜였다. WBC는 호크아이 시스템을 비롯해 메이저리그 측정 장비를 그대로 사용한다. 이에 사사키가 던진 공의 정보들이 세세하게 드러났다.
사사키는 WBC에서 포심 패스트볼 평균 구속이 100.3마일이었다. 최고 101.9마일 공을 세 번이나 찍었다. 포심 65구 중 72.3%에 해당하는 47구가 100마일을 넘겼다. 포심 헛스윙률도 35%로, 충분한 움직임이 동반되면서 구속과 구위가 비례하는 모습이었다.

메이저리그는 2008년부터 투구 추적을 시행하고 있다. 이후 단일 시즌 100마일 공을 가장 많이 던진 '선발 투수'는 2022년 헌터 그린이다. 신시내티 1선발로서 압도적인 구위를 자랑하는 그린은 2위 그룹과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1위였다. 불펜 투수도 포함하면 2018년 조던 힉스(673구) 2016년 아롤디스 채프먼(572구) 등이 있지만, 전력 피칭을 하는 불펜 투수는 일반적으로 선발 투수보다 구속이 더 잘 나오기 마련이다.
단일 시즌 최다 100마일 공 (선발)
337 - 헌터 그린 (2022)
199 - 노아 신더가드 (2016)
185 - 제이콥 디그롬 (2021)
135 - 요다노 벤추라 (2014)
135 - 바비 밀러 (2023)
2022년 그린은 포심 평균 구속이 98.9마일이었다. 100마일 공의 비중은 28.5%였다. 만약 사사키가 WBC에서 보여준 구속을 꾸준히 가져간다면 구속에서 따라올 선수가 없다. 최근 구속 상승 시대에 접어든 메이저리그가 사사키에게 매료된 건 당연한 현상이었다.
포심 하나로 타자를 상대할 순 없다. 역사상 최고의 포심을 던진 놀란 라이언과 랜디 존슨도 하지 못한 일이다. 사사키는 '플러스 플러스 구종'인 포심과 더불어 메이저리그에서 위력을 발휘할 것으로 평가되는 스플리터를 장착하고 있다.
2024 선발 스플리터 평균 구속 (300구)
90.9마일 - 타지 브래들리
90.2마일 - 야마모토 요시노부
88.9마일 - 키튼 윈
88.5마일 - 조 라이언
*사사키 WBC 스플리터 평균 90.9마일
스플리터 역시 구속에서 차원이 다르다. 평균 80마일 후반대에서 90마일 초반대가 형성된다. 현역 메이저리그 타자 알렉스 버두고가 WBC에서 사사키의 스플리터에 헛스윙을 했다. 평균 30인치가 넘는 수직 무브먼트를 자랑하는 스플리터는 하이 패스트볼과 탁월한 조화를 이룬다. 메이저리그 타자들도 공략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사사키의 가장 무서운 부분은 여전히 '발전형'이라는 점이다. 지금보다 더 뛰어난 투수로 올라설 수 있다. 평균 구속 80마일 초중반대 슬라이더도 활용도를 높이는 중이다. 2022년 슬라이더 비중이 5.3%에 머물렀는데, 2023년 14%로 늘리더니 작년에는 데뷔 후 처음으로 20%를 넘겼다(25.7%). <베이스볼 아메리카>는 사사키의 슬라이더에 대해 "더 확신을 갖고 던지면 또 다른 주무기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사사키 구종별 20/80 등급
포심 - 70점
스플리터 - 80점
슬라이더 - 60점
커브 - 45점
몸값
원래 사사키의 메이저리그 진출은 빨라야 2027년으로 예상됐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아직 사사키가 일본 야구에서 보여준 게 적었다. 보통 메이저리그에 가는 선수들은 일본에서 확실한 족적을 남기고 떠난다. 하지만 사사키는 사와무라상도 수상한 적이 없고, 팀 우승을 견인하지도 못했다. 커리어 초반 구단의 세심한 배려를 받았기 때문에 사사키의 이번 메이저리그 진출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도 꽤 많았다.

두 번째는 자격이었다. 메이저리그 국제 계약 규정상 25세 미만 선수는 해외 프로 선수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게 아니면 해외 리그에서 최소 6년을 뛰어야 한다. 하지만 사사키는 이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지 못하면서 국제 아마추어 유망주로 분류됐다.
국제 아마추어 유망주는 기준이 엄격하다. 과거 나쁜 관행들이 자행하면서 예외를 두지 않는 영역이다. 2017년 애틀랜타 존 코포렐라 단장은 이 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리그에서 영구 추방됐다. 계약도 배당된 보너스 풀(bonus pool)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 다른 규정은 어겼을 경우 페널티를 감수하면 되지만, 국제 아마추어 계약은 그런 것도 없다.
사사키도 당장 대형 계약이 불가능하다. 지난 겨울 야마모토가 체결한 12년 3억2500만 달러 계약을 사사키는 할 수 없다. 각 팀들의 보너스 풀을 최대한 쓴다고 해도 1000만 달러 안팎이다. 여기에 데뷔 첫 3년은 구단에서 책정한 연봉을 받아야 한다. 설령 올해 뛰어난 성적을 거둔다고 해도 내년에 최저 연봉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사사키는 메이저리그에서 더 발전할 수 있다. 심지어 이번에 영입하는 팀은 선수로서 전성기인 20대 중후반의 사사키를 보유하게 된다. FA로 나왔다면 훨씬 많은 돈을 투자해야 되지만, 사사키가 돈을 포기하면서 재정적인 부담도 없다. 수준 높은 투수 유망주가 부족해진 메이저리그에서 사사키의 등장은 한줄기 빛으로 와닿았다.
모든 팀들이 사사키를 원한다는 말이 결코 과언이 아니었다.
결정
선택은 사사키가 한다. 예전 오타니가 그랬듯 사사키도 팀들보다 우위에 있다. 사사키는 팀들에게 육성 방안이 담긴 프레젠테이션을 요구했고, 팀들도 마땅히 이 요청에 응했다. 각 팀들은 사사키가 왜 우리 팀에 와야 하는지, 우리 팀에 왔을 때 어떤 이점이 있는지를 설명했다.
사사키는 고려 대상이 있었다. 팀의 상황이나 미디어 분위기, 기후 환경, 일본과의 접근성 등이 언급됐다. 이 요건에 부합하는 세 팀이 최종적으로 남았다. 다저스와 샌디에이고, 그리고 잘 알려지지 않았던 토론토였다.

다저스와 샌디에이고는 처음부터 유력 행선지였다. 오타니와 야마모토의 합류로 왕조가 본격화된 다저스는 사사키에게 안성맞춤인 팀이다. 리그 적응과 동시에 곧바로 우승 도전에 나설 수 있다. 캘리포니아주의 날씨도 아시아 선수들이 굉장히 선호하는 부분이다.
날씨가 강점인 건 샌디에이고도 마찬가지다. 또한 샌디에이고는 사사키가 멘토로 따르는 다르빗슈가 존재한다. 실제로 사사키는 펫코파크에서 훈련하는 장면이 목격되기도 했다.
토론토는 의외라는 반응이다. 사사키가 중요하게 바라보는 것과 거리가 있어 보였다. 그러나 토론토는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아쉬운 2%를 채워주는 역할을 잘 수행했다. 로비 레이가 제구 난조를 딛고 사이영상 투수로 거듭났고, 호세 베리오스와 크리스 배싯도 오기 직전보다 안정적인 투수가 됐다. 기쿠치도 지난해 토론토에서 체인지업을 새로 연마했다.
12월 중순부터 팀 찾기에 돌입한 사사키는 일부러 현지 날짜 1/15일까지 결정을 미뤘다. 2024년 보너스 풀을 소진한 팀들이 있었기 때문에, 2025년 국제 계약이 시작되는 기간까지 기다렸다. 최종 세 팀의 국제 보너스 풀은 아래와 같다.
626만1600달러 - 샌디에이고 & 토론토
514만6200달러 - 다저스
샌디에이고와 토론토는 다저스보다 더 많은 돈을 줄 수 있다. 보너스 풀은 트레이드를 통해 기존 금액의 60%까지 늘리는 게 허락된다. 그러면 샌디에이고와 토론토는 약 450만 달러를 추가해 1000만 달러가 넘는 금액을 안겨줄 수 있다. 반면 다저스는 308만 달러 정도밖에 확보하지 못하면서 끌어모은다고 해도 820만 달러 정도다. 대신 다저스는 합의가 됐던 유망주 두 명과의 계약을 취소해 사사키에게 올인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오늘부로 국제 아마추어 계약 기간이 재개됐다. 각 구단들은 눈여겨봤던 유망주들을 빠르게 데려오고 있다. <MLB닷컴>이 선정한 국제 아마추어 유망주 TOP 10명 중 7명이 벌써 소속팀을 찾았다(1위 사사키, 8위 도리안 소토, 10위 후안 카바다 미정).
사사키의 계약은 며칠 더 걸릴 수 있다. 최종 세 팀의 보너스 풀 추가 확보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해도 사사키가 어느 팀 유니폼을 입게 될지에 대한 해답은 조만간 나온다.
수수께끼가 풀리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 이창섭
현 <SPOTV> MLB 해설위원
전 <네이버> MLB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