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日서 일제강점기 조선인의 삶 다룬 드라마 탄생… 사명감 느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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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의 삶을 다룬 드라마의 고증을 맡아 달라고 연락을 받았을 때가 지금도 생생합니다. '드디어 이런 시대가 왔구나. 이렇게 겨우 일제 강점기 때 역사가 관심을 받는구나'란 말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감동과 사명감을 느꼈습니다."
올 4월부터 지난달 27일까지 일본 NHK에서 방영된 드라마 '호랑이에게 날개' 고증을 담당했던 재일교포 3세 최성희 오사카산업대 국제학과 교수(47)는 1일 동아일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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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의 삶을 다룬 드라마의 고증을 맡아 달라고 연락을 받았을 때가 지금도 생생합니다. ‘드디어 이런 시대가 왔구나. 이렇게 겨우 일제강점기 역사가 관심을 받는구나’란 말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감동과 사명감을 느꼈습니다.”
올해 4월부터 지난달 27일까지 일본 NHK에서 방영된 드라마 ‘호랑이에게 날개’ 고증을 담당했던 재일교포 3세 최성희 오사카산업대 국제학과 교수(47)는 1일 동아일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63년 전통의 NHK 아침드라마(아사도라·평일 오전 7시 30~45분 방영) 코너에서 방영된 ‘호랑이에게 날개’는 1930~1960년대 일본 1세대 법조인 여성들의 일대기를 다뤘다. 지난달 27일 방영된 최종화 시청률이 18.7%를 기록했을 만큼 큰 사랑을 받았다. 드라마 주인공인 ‘1932학번 6인방’ 중에는 조선에서 온 유학생 최향숙이 포함돼 있었다. 또 조선인 단역들도 등장하고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재일교포 차별 등의 상황도 다뤘다.
최 교수는 “향숙과 조선인들이 일본에서 경험하는 어려움을 정확하게 드라마 내용에 담아낼 수 있도록 제작진에게 조언했다”며 “향숙의 굴곡진 인생을 잘 드러내면서 동시에 일제에 협력했던 인물로 그려지면 안 된다는 신념을 갖고 작업했다”고 말했다. 이어 “역사 수정주의 세력과 우익들이 목소리를 내는 상황에서 제작진이 큰 용기를 내 제작한 드라마”라고 덧붙였다.
일제강점기를 연구하는 최 교수는 한국을 자주 찾는다. 또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변 사람들에게 “한일 우호의 씨앗을 뿌리는 게 학자로서의 소명”이라고 강조한다. 강연, 소셜미디어 활동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그의 노력은 의미 있는 성과로 나타나기도 했다. 혐한 부모 밑에서 자란 사범대생은 2018년 최 교수의 ‘한국 근현대사’ 강의를 듣고는 종강 날 “인생이 바뀌었다”며 펑펑 울었다.
2020년 연구차 방문한 나라현에서는 특별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1920, 30년대 일본 여자고등사범학교의 조선인 유학생들이 일본 장학사업가에게 보낸 편지를 연구한 것. 이들은 대부분 조선으로 돌아와 교사가 됐다. 최 교수는 “편지를 읽다 보니 100년 전 조선 여성들로부터 ‘우리를 역사에 남겨 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만 같았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나고 자랐지만 여전히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그를 한국인 교수로 본다. 최 교수는 “다행히 ‘호랑이에게 날개’가 방영된 뒤 재일교포에 대한 일본 사회의 이해도가 높아졌다”며 “제게 큰 보람을 줬고, 날개를 달아준 드라마였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도쿄여대 사학과를 나와 ‘일본 내 한국 근대사 연구의 산실’로 꼽히는 히토쓰바시대에 진학해 동아일보 브나로드 운동(1931~1934년) 연구로 석사 학위를, 1920, 30년대 일제강점기 중등교육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안도 프로듀서는 도쿄외대 조선어과를 나왔다. 서울대 언어학과 교환학생도 했다. 2005년 씨네21 인터뷰에 따르면 고등학생 때 영화 ‘쉬리(2000년)’와 ‘공동경비구역 JSA(1999년)’를 보며 한국어를 배워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그의 지인들이 입을 모아 “최 교수가 적격”이라고 추천해 연이 닿았다. 무려 방영 1년여 전인 지난해 7월의 일이다. 최 교수는 제작진이 역사 고증에 시간과 노력을 아낌없이 쏟아붓는 모습을 보며 믿음이 갔다고 했다.
최 교수는 “기획안을 처음 봤을 때, 도쿄에서 법대에 다니는 친오빠(윤철)의 권유로 향숙 또한 유학을 결심했다는 설정에 놀랐다. 당시에 그렇게 일본 유학을 떠난 여성이 많다”고 했다.
연극과 뮤지컬을 좋아하는 최 교수는 배우 이토 사이리(伊藤沙莉·30)가 주인공 ‘토라코’ 역할을 맡은 점도 눈여겨봤다. 2023년 일본에서 연극으로 각색된 영화 ‘기생충’에서 딸 기정 역할(연극에서 카네다 미키)로 무대에 오른 이토를 객석에서 지켜보며 “연기를 참 잘하는 배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관련 기사: ‘100년 전 조선인 학살’ 정면으로 담은 NHK 드라마 화제
https://www.donga.com/news/Inter/article/all/20240731/126237147/1
향숙처럼 일본에서 법률을 공부한 조선인 여성이 있었을까. 주인공 토라코의 모델이 된 일본 첫 여성 법조인 미부치 요시코 판사의 메이지대 1년 선배 중에도 있다. 부산여자경찰서장을 지낸 독립운동가 이양전 경감이다.
다만 향숙과 이양전 경감은 다른 삶을 살았다. 향숙은 일본 경찰에 사상범이라는 의심을 받아 쫓기다 결국 귀국했다. 경성에서 법률 공부를 이어가다 사랑에 빠진 일본인 판사와 결혼했다. 그러나 양가 집안에 절연당하고 만다. 부부는 해방 후 일본으로 향했다. 향숙은 ‘시오미 쿄코’로 살아가며 외동딸 카오루를 키운다. 남편의 동료가 된 토라코와 우연히 재회하지만 “최향숙을 잊어달라”며 모질게 대했다.
향숙의 행적을 두고 친일 행위가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최 교수는 “재일교포 다수는 정체성을 숨길 수밖에 없는 사정을 안고 살아왔다. 한국에서는 한국인인 점을 숨길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외국인이라고 차별받고, 핏줄을 따지는 특유의 문화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는 점을 생각해 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향숙 부부는 대학생이 된 딸 카오루에게 향숙이 조선인임을 고백한다. 카오루가 “자신이 태어난 나라가, 핏줄이 창피해서 그랬냐”고 화를 내자 부부는 “아니다. 네가 괴로운 경험을 하지 않길 바래서 그랬다”고 말한다. 그러나 카오루는 어머니가 ‘가해자’ 쪽에 섰다며 마음의 문을 닫는다.
얼마 뒤 카오루는 남자친구가 핏줄을 문제 삼아 이별을 통보한 사건을 계기로 어머니를 이해하게 된다. 카오루는 향숙의 친오빠 윤철을 찾아 도쿄로 모셔 온다. 덕분에 남매는 20여 년 만에 재회했다.
향숙은 ‘최향숙’을 되찾기로 결심하고 남은 인생을 조선인 원폭 피해자를 변호하며 산다. 최 교수는 “정체성을 되찾아 자신의 삶을 살고, 카오루에게도 용기를 주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본다”고 했다.
최 교수도 몰랐던 ‘깜짝 등장’이었다. 드라마 오프닝 속 ‘김민수’ 이름을 보며 “설마 오사카 재일교포 극단 ‘달오름’의 김민수 대표인가, 뭐로 나오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로 김 대표가 출연해 재일교포 말씨로 일본어를 하자 최 교수는 매우 큰 충격을 받았다.
토라코는 변호사가 됐지만 결국 포기했고, 남편까지 전쟁으로 잃어 완전히 낙심한 상태였다. 그러다 암시장에서 산 닭꼬치를 싸고있던 신문에 적힌 일본 헌법 14조를 읽고 희망을 되찾아 털고 일어난다. 드라마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1946년 공표된 일본 헌법 14조는 “모든 국민은 법 아래에 평등하여 인종, 신조, 성별, 사회적 신분, 가문에 따라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관계에서 차별받지 아니한다”는 내용이다.
정작 김 대표가 연기한 상인은 헌법 14조에서 제외됐다고 한다. 재일교포는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따라 외국인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최 교수는 이 장면을 재일교포 역사의 비극성을 드러낸 명장면으로 꼽았다.
조선인을 주인공으로 한 아사도라도 탄생할 수 있을까.
“그런 기대도 하고 있습니다. 다만 일본에서 한국과 조선 이야기를 다루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한국 시청자들께서 부족함이나 위화감을 느끼신 부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 시작이니 호의적으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리의 역사를 다룬 드라마가 일본에서 사랑받는 날을 몹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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