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니'로 시작해 '정책'으로···화제·진정성 모두 잡은 환노위 국감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에서 진행한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및 고용노동부 산하 기관 국정감사가 전례 없는 화제성을 모았다. 이날 참고인으로 등장한 걸그룹 뉴진스의 멤버 하니(하니팜) 영향이다. 하니의 출석으로 노동계 중요 사안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예상은 피감기관 등을 상대로 집요한 질의를 이어간 소속 위원들 덕분에 보기 좋게 빗나갔다.
다른 상임위에 비해 비교적 작은 규모의 상임위원회인 환노위는 이날 경사노위·중앙노동위원회 및 전국의 고용노동부 지청장들과 실무자들이 한데 모여 감사 개시 때부터 북새통을 이뤘다. 상당수 피감기관 관계자들이 외부에서 대기해야 할 정도였다. 환노위는 피감기관 출석인들이 많은 데다 유명 아이돌 멤버의 출석 상황을 고려해 이날 오후 주변 회의장 주변을 봉쇄하고 언론인들의 취재도 제한했다.
이날 환노위 국감 스타는 하니였다. 베트남계 호주 국적을 가진 하니는 환노위 국정감사 참고인 출석을 위해 이날 오후 국회를 찾았다. 국회 방호처 직원들의 경호 속에 환노위 국감장에 등장한 하니는 "(직장 내 무시·따돌림은) 누구나 당할 수 있다"며 "누구도 이런 일을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단 마음으로 (국회에) 나오게 됐다"며 출석을 결심한 이유를 설명했다.
하니는 "(김주영 어도어 대표 겸 하이브 최고인사책임자가) 저희(뉴진스)를 지키겠다고 해놓고 (소속사 내 따돌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럴 의지가 없어보였다"며 "(사내에서 무시당한 일이) 한 두 번 있던 일이 아니다. 오늘 (환노위 국정감사에) 나오지 않았다면 조용히 넘어가고 묻혔을 것"이라고 발언했다.
뉴진스 멤버 5인(민지·하니·다니엘·해린·혜인)은 지난달 11일 예정에 없던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통해 "하이브의 (어도어) 경영진 교체와 부당한 대우로 팀 컬러와 작업물이 침해되고 있어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며 "(9월) 25일까지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의 복귀와 함께 회사를 원래대로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하니는 당시 라이브 방송에서 하이브의 또 다른 자회사(빌리프랩) 소속 연예인과 매니저로부터 무시당했다고 주장했다. 하니는 "다른 팀(빌리프랩 소속 걸그룹) 멤버에게 인사를 했는데 해당 그룹 매니저가 (대놓고 저를) 못 본 척 무시하라고 말했다"며 "제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안호영 환노위원장은 해당 발언을 접한 뒤 아이돌 따돌림 문제와 직장 내 괴롭힘 문제에 대해 따져 묻겠다며 하니를 참고인으로 채택했다.
하니는 "블라인드(직장인 익명 소통 커뮤니티)에 하이브 직원들이 뉴진스를 욕한 것을 보게 됐다. 일본 데뷔에 대한 성과를 낮추라는 녹음도 들었다"며 "회사가 저희(뉴진스)를 싫어하고 있다는 데 확신이 들었다"고 지적했다. 하니는 무시당한 일이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와 방시혁 하이브 의장 간 갈등과 관계가 있느냐는 우재준 국민의힘 의원의 물음에 "없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하니는"(누구든 저와 같은)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많은 분이 저희를 걱정해주고 한국까지 와서 이런 경험을 하는 것에 있어 미안하다고 해주시는 데 이 자리에서 꼭 말하고 싶은 것은 (그분들이) 죄송하실 필요가 없다"며 "한국에 와서 가족 같은 멤버들을 만났다.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게 해준 나라인데 뭐가 죄송하냐"고 말하며 눈물을 머금은 채 퇴장했다.
위원들은 하니의 답변을 들으면서 근로계약자가 아니란 이유로 법의 사각지대에 머무는 아티스트를 포함한 소외된 노동자들의 실태를 파악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수립해 줄 것을 당국에 요청했다.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고용노동부가 2024 일자리 으뜸기업으로 하이브를 선정했다"고 문제를 제기하며 "으뜸기업 지정을 취소하라"고 요구했다.
하니의 퇴장과 맥이 빠질 것 같았던 환노위 국감은 새로운 쟁점과 함께 집요한 질의가 이어지며 또다시 달아올랐다. 이번에는 한화오션이 중심에 섰다. 한화오션 거제사업장(구·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는 올해에만 노동자 5명이 사망하는 중대재해가 연이어 발생했다. 이에 환노위는 거제사업장을 총괄하는 정인섭 한화오션 사장을 증인으로 불렀다.
김위상 국민의힘 의원은 정 사장에 "사망 사고가 한화오션의 무리한 작업 지시 때문이었는지 여부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며 "작업자 안전 강화를 위해 2026년까지 1조9760억원을 투입한다는 계획의 취지는 좋으나 산재 원인을 분석하고 (이에 따른) 대책이 엇박자가 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용우 민주당 의원은 "사후 조치로 그물망을 설치했는데 발로 툭 치면 바로 해체되는 정도의 수준이다. 사람이 중심을 잃어 거기에 기대면 어떻게 되겠느냐"며 "굉장히 원시적인 수준의 안전조치"라고 질타했다.
관계당국의 조치에 대한 질타도 이어졌다. 한화오션에서 가장 최근에 발생한 인명사고는 지난달 9일 발생했다. 40대 하청노동자가 컨테이너선 라싱 브릿지(컨테이너 적재를 위한 지지대)를 설치하는 작업을 벌이던 중 32m 아래로 추락해 숨지는 사고였다. 고용노동부는 조선소 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총 9척의 라싱 브릿지 탑재 작업에 대해 작업 중지 명령을 내렸으나 지난 10일 해제 요청을 수용했다.
위원들은 지난달엔 사측의 해제 요청을 수용하지 않았던 통영지청이 이런 결정을 내린 배경을 집중 추궁했다. 정혜경 진보당 의원은 여기에 더해 "작업 중지 범위를 지나치게 좁게 설정한 것 같다"고 따져 물었다. 통영지청의 상급 기관인 부산지방고용노동청 김준휘 청장은 "회사 조치에 문제가 있어 14일부터 통영지청 감독관 20여명이 다시 근로감독에 착수한 상태"라고 해명했다.
정인섭 사장은 "사망사고에 대해서는 드릴 말씀이 없다. 앞으로 이런 일이 없게 만드는 것이 저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겠다"며 "안전 자체가 우리 조선업의 경쟁력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증인·참고인에 대한 질의를 마친 뒤 환노위는 오전에 이어 피감기관에 대한 질의를 계속했다. 박정 민주당 의원은 포스코이앤씨 서울 천호동 현장에서 발생한 감전사고와 관련해 미흡한 대처에 의문점을 제기하고, 조지연 국민의힘 의원은 소규모 사업장을 상대로 중대재해법 관련한 사기로 의심되는 불법컨설팅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고발했다.
김태선 민주당 의원은 노동정책을 담당하는 피감기관 고위 관계자 대부분이 남성임을 지적하고 경사노위의 퇴행적 운영을 지적했다.
한편 이날 정인섭 사장이 국감에 임하는 태도도 도마에 올랐다. 국감장에 증언을 대기하고 있던 정 사장은 뒷 자리에 앉아있던 하니와 웃으며 셀카를 찍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이에 김태선 민주당 의원은 "(조선소에서) 사람이 죽어 나가는데 사진을 찍고 웃음이 나오냐"며 "(산업재해가 발생한 회사 대표로 나온) 증인은 그런 마음으로 임해선 안 된다"고 했다.
정 사장의 태도가 논란이 되자 한화오션 측은 곧바로 김희철 대표이사 명의로 사과문을 냈다. 한화오션은 사과문에서 "당사 임원의 적절하지 못한 행동에 대해 국민, 국회, 그리고 유가족 여러분께 깊이 사과를 드린다"며 "의원들 지적과 질책을 달게 받고 반성과 사죄,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고민해야 할 국정감사에서 신중하지 못한 행동으로 인해 국회와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 드렸다"고 했다.
김도현 기자 ok_k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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