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함으로 승부한 공포…‘기리고’ 박윤서 감독 “신인의 힘 믿었다” [인터뷰]

손미정 2026. 4. 29.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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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기리고’ 공개 3일만 글로벌 4위
해외에 맞게 각색? “한국적인 게 더 신선”
“6화부터 ‘앱’에 얽힌 저주 모두 풀어내”
넷플릭스 ‘기리고’ [넷플릭스 제공]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지난 24일 공개된 시리즈 ‘기리고’는 넷플릭스가 처음으로 한국에서 선보이는 YA(영어덜트·10대 후반~20대 초반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한 콘텐츠) 호러다. 소원을 이뤄주는 애플리케이션 ‘기리고’의 저주로 갑작스러운 죽음을 예고 받은 고등학생들이, 그 저주를 피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신인 배우들로 채운 과감한 캐스팅, 학원물에서 오컬트로 확장되는 장르적 변주, 그리고 낯설 만큼 집요한 공포 연출까지. ‘기리고’는 신선한 감각을 무기로 호러물에 대한 진입장벽마저 무장 해제시키며, 공개 3일 만에 넷플릭스 글로벌 톱(TOP) 10 비영어 쇼 4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지난 28일 서울 종로구 한 모처에서 만난 ‘기리고’의 박윤서 감독은 작품 공개 이후 쏟아진 반응에 대해 “공개 전까지 많이 걱정했고, 스트레스도 컸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지금은 그런 부담이 많이 사라진 상태”라며 웃어 보였다. 한결 가벼워진 듯한 그의 표정에는 안도감이 묻어났다.

넷플릭스 ‘기리고’를 연출한 박윤서 감독 [넷플릭스 제공]

‘기리고’는 박 감독의 입봉작이다. 신인 감독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지만, 이미 굵직한 현장을 두루 경험한 ‘무늬만 신인’에 가깝다. 그는 박인제 감독을 도와 넷플릭스 시리즈 ‘킹덤 시즌 2’(2019)의 조감독을 맡았고, 이어 디즈니플러스 ‘무빙’(2023)에서는 B팀 감독으로 참여했다.

박 감독은 “작품을 하면서 박인제 감독님에게 배웠던 점들과 현장, 제작, 운영에 대한 경험들이 많이 도움이 됐다”면서도 “그래도 혼자 하다 보니 스트레스는 훨씬 컸다”고 했다.

그가 처음 각본을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기리고’의 공포는 “다르다”는 것이었다. 남들이 쉽게 떠올리지 못할, 시도하지 않을 법한 새로움이 그를 끌어당겼다. 실제 ‘기리고’는 기존 호러 문법을 따르면서도 촘촘한 서사와 섬세한 연출로 빚은 ‘낯설어서 더 무서운’ 감각으로 YA 장르의 가능성을 한층 확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3부까지는 학원 호러처럼 가다가, 이후에는 오컬트로 넘어가요. 귀신과 맞닥뜨리는 방식도 기존과 다르죠. 햇살을 통해 다른 세계로 들어간다든지, 단순히 놀라게 하는 공포와는 다른 결이 있었어요.”

박 감독은 연출을 수락하며 신인 배우들로 캐스팅을 꾸리길 바랐다. 장르적 특성에서 비롯된 판단이기도 했지만, 산업 전반에 대한 고민의 연장선이기도 했다. 그는 “신인 배우가 나와야 더 실제 같은 호러가 나온다고 생각했다. 배우들을 통해 신선함을 보여주고 싶었다”면서 “저 역시 신인인 만큼, 새로운 감독과 배우들이 계속 등장해야 산업에도 도움이 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넷플릭스 ‘기리고’ [넷플릭스 제공]

그래서 이어진 것이 바로 치열한 오디션이었다. 소속사에 속한 고등학생부터 23세 이하 배우 대부분을 온·오프라인으로 만났다. 밝은 에너지가 핵심인 주인공 세아 역에는 전소영이, 캐스팅이 쉽지 않았던 형욱 역에는 강렬한 인상을 남긴 이효제가 낙점됐다. 여기에 강미나, 백선호, 현우석 등이 합류하며 라인업이 완성됐다. 이후 박 감독과 배우들에게 필요했던 건 ‘시간’이었다.

박 감독은 “오디션을 잘 본다고 현장에서 반드시 잘하는 건 아니다”며 “충분한 시간과 회차를 확보해 배우들이 연기를 많이 시도해 볼 수 있도록 했다. 테이크도 최대한 많이 가져갔다”고 설명했다.

처음부터 ‘신인’을 고집했던 만큼, 그는 배우들을 향한 반응이 특히 반갑다고 했다. 그는 “신인 배우들이 대중의 관심을 받아야 풀이 넓어지고, 그래야 감독의 선택지도 커진다”고 강조했다. 인터뷰 내내 배우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박 감독은 ‘기리고’가 시즌제로 이어지며 ‘신인 등용문’이 되길 바라는 마음도 전했다.

수위에 대한 고민도 적지 않았다. 작중 일부 장면은 고어(신체 훼손 등 잔혹한 장면 묘사)에 가까운 표현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초반부 형욱의 죽음은 자해처럼 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컸다. 박 감독은 이를 ‘자의가 아닌 타의’로 보이게 하는 연출적 장치로 풀어냈다.

넷플릭스 ‘기리고’를 연출한 박윤서 감독 [넷플릭스 제공]

“형욱의 죽음에서 공포가 느껴지지 않으면 장르적으로 힘이 빠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대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하지 마’라는 대사를 클로즈업으로 넣는 등 장치를 활용했습니다.”

‘기리고’는 호러를 중심에 두면서도 학원물, 오컬트, 액션, 수사극 등 다양한 장르를 유기적으로 결합했다. 그 가운데 노재원이 연기한 ‘방울’ 캐릭터의 코믹한 요소도 살아 있다. 이러한 장르적 변주 역시 의도된 전략이다.

박 감독은 “8부작 시리즈에서 같은 공포만으로 끝까지 끌고 가기는 어렵다고 봤다”며 “귀신의 정체가 드러나면 더 이상 무섭지 않게 되는 지점이 있다. 그래서 변주가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방울이라는 캐릭터도 지나치게 어두운 분위기를 완화하기 위한 장치 중 하나였다”고 덧붙였다.

한국적인 오컬트 설정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해외 시청자들의 이해도를 고려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론은 ‘그대로 간다’였다. 제주도의 전통 부적과 신앙, 공간 디테일까지 사실적으로 구현했다. 극 중 ‘햇살’(전소니 분)과 ‘방울’이 처음 만나는 장소 역시 제주도다.

박 감독은 “과거 작업을 통해 느낀 건, 한국적인 요소를 억지로 해외 기준에 맞추면 오히려 매력이 사라진다는 것이었다”며 “이 작품의 생명력은 신선함에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한국적인 디테일을 살리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넷플릭스 ‘기리고’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기리고’ [넷플릭스 제공]

이 작품은 공포를 넘어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춘기 특유의 불안과 오해, 감정의 균열이 공포의 형태로 확장된다. “사춘기에는 말하지 않아서 생기는 오해가 많다”는 그의 말처럼, ‘기리고’는 친구 사이의 불신과 불안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중반부를 넘어서면서 작품의 차별성은 더욱 또렷해진다. 6화부터는 원한과 저주로 얽힌 두 인물 혜령(김시아 분)과 시원(최주은 분)의 서사가 본격적으로 펼쳐지며, ‘기리고’ 앱의 기원을 촘촘하게 풀어낸다. 단순한 공포를 넘어 서사적 완성도를 확보하려는 시도다.

“처음에는 앱 탄생 이야기가 10분 정도 분량이었는데, 각색을 통해 많이 확장했어요. 시청자들이 납득하지 못하면 허무하게 느껴질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박 감독은 시즌2 가능성도 열어뒀다. 그는 “햇살과 방울의 과거, 미나의 이후 이야기 등 확장할 수 있는 지점이 많다”고 했다. 동시에 새로운 배우 발굴 역시 계속 이어가겠다는 계획이다.

“고어한 장면 때문에 부담을 느끼실 수도 있겠지만, 호러 장르로서의 재미를 놓치지 않으려 노력한 작품입니다. 끝까지 보시면 다른 결의 재미도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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