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은행권에서 정기예금 계좌가 급격히 감소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국내 은행의 정기예금 계좌 수는 지난해 말 기준 총 2314만7000개로, 이는 2019년 말(2272만7000개) 이후 5년 만에 가장 적은 규모다.

▶▶ 2년 만에 1000만 계좌 증발
정기예금 계좌는 2011년 처음으로 1000만 개를 돌파한 이후 기준금리 추이에 따라 변동해왔다. 특히 2016년 말부터 꾸준히 증가해 2023년 6월 말에는 3505만5000개까지 불어났다. 그러나 최근 들어 정기예금 계좌 수가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2023년 말 2909만8000개로 그해 상반기 대비 595만7000개 감소하더니, 지난해 말에는 2314만7000개로 1190만8000개 급감했다.
이러한 추세는 매일 전국 곳곳에서 2만7000여 개 계좌가 해지되는 셈이다. 최근 2년 새 1000만 계좌가 넘는 정기예금이 자취를 감춘 것이다.
▶▶ 쥐꼬리 금리가 주범
정기예금 계좌 감소의 주된 원인은 예금금리 하락이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국내 5대 시중은행의 대표 정기예금 상품 금리는 1년 만기 기준 연 2.15~2.65% 수준으로 1%대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1년 만기 기본금리가 아예 1%대로 떨어진 정기예금 상품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부행장은 "통상 금리가 떨어지면 정기예금을 해지하는 추세가 이어졌다"면서도 "정기예금 금리가 연 2%대 중반으로 내려온 상황에서 대출 억제 정책을 펴고 있는 은행 입장에선 적극적으로 정기예금을 판매할 동력이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 소액 계좌 중심으로 해지 러시
특히 정기예금 계좌 중 '1억원 이하' 소액 계좌 수가 지난해 말 2233만개로 지난 2023년 6월 말(3434만1000개) 대비 1201만1000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같은 기간 '1억 초과 5억 이하' 계좌 수는 69만3000개로 9만8000개 늘었다. 10억원을 초과하는 고액 정기예금 계좌 수도 6만1000개로 '역대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이는 예금에 넣어둘 여윳돈이 부족한 소비자들을 중심으로 계좌 해지가 이뤄진 것으로 풀이된다.
▶▶ 주식·코인으로 자금 이동
정기예금에서 빠져나온 자금은 주식, 가상자산, 금 등 대체 투자처로 이동하고 있다. 특히 미국 주식과 비트코인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 증권정보포털에 따르면 서학개미(서구권 주식 소액 개인 투자자)들의 미국 주식보관액은 지난 3월 말 기준 748억2886만달러로 월간 기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테슬라,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 주요 기업에 대한 투자가 크게 늘어났다.
비트코인 역시 연초 4만4000달러 수준이던 가격이 지난 3월 중순 7만1000달러보다 높은 수준까지 치솟으며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 요구불예금 증가세
투자 대기 자금의 증가도 눈에 띈다. 지난 3월 말 기준 5대 시중은행의 요구불예금 잔액은 647조8882억원으로 전월 대비 5.5% 증가했다. 2월에도 요구불예금은 전달대비 4% 늘었다. 2·3월 두 달 새 요구불예금이 57조원, 10% 가량 증가했다.
이는 투자자들이 예금에서 자금을 빼내 당장은 투자하지 않고 시장 상황을 지켜보며 언제든 투자할 수 있도록 유동성을 확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금융 소비 패턴의 변화
이러한 현상은 금융 소비 패턴 전반의 변화를 의미한다. 과거 안정적인 수익을 추구하던 '예테크' 문화가 점차 사라지고, 투자자들은 더 높은 수익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특히 금리 하락기에 접어들면서 정기예금의 매력이 떨어지고, 주식이나 가상자산과 같은 대체 투자 수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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