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타임스=김우선 기자] 입이 짧은 사람들은 해외여행 때 곤혹을 겪곤 한다. 그 나라 음식이 입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얼마 전, TV에 어느 여행 프로그램을 보니 연예인들이 이집트 어느 강가에서 볶음고추장으로 그 나라 음식을 비벼먹는 장면이 나온다. 자막으로 ‘한국인 해외여행시 필수템’이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뜬다. 출연자들은 밥에 생기가 돈다며 콧노래를 부르며 밥을 비벼 입에 쑤셔 넣는다. 충분히 공감이 되고도 남는다.
해외에서 있는 날짜가 일주일을 넘어가니 슬슬 음식이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이탈리아나 스위스, 프랑스 각 나라마다 음식이 조금씩 특색이 있지만 사실 뻔하지 않은가. 기본적인 빵 문화에 스테이크나 면 요리, 피자 같은 걸 매 끼니마다 먹다 보면 부대끼기 마련이다.
나 역시 고수가 들어가거나 정말 코를 막고 먹어야 할 만큼 독특한 향신료가 들어간 음식을 제외하곤 그 나라 음식을 먹자는 주의지만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유럽에서 값비싼 위스키를 병째 사서 먹을 수는 없고 기껏해야 와인 한 병을 시켜 나눠 마시거나 맥주 한 잔 정도로 입가심을 해야 했는데 몇 잔을 마셔도 부담이 없는 한국 소주가 가장 그립긴 했다.
파리에서의 첫 날 퐁피두 센터를 보고 나니 날이 어두워졌다. 센터 앞 광장에는 여전히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얘기꽃을 피우고 있다. 저녁 먹을 시간도 됐고 해서 광장 앞 상가를 둘러보는데 눈에 익은 간판이 있다. Korean Street Food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스위스 인터라켄에서 ‘도라지’라고 적힌 한국 식당 간판을 본 이후 유럽에서 본 두 번째 한국 식당이다. 도라지 식당을 가볼까 했다가 못 간 아쉬움이 있어 일단 들어가 보기로 했다.
식당 내부는 우리나라 대학가 앞 술집 같은 느낌이다. 한국 느낌이 나도록 여기저기 한글을 많이 써 두긴 했다. 식당에는 종업원이 세 명 정도 되는 듯했는데 한국인은 아니다. 중국인이다. 우린 부대찌개와 비빔밥, 치킨덮밥을 주문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소주도 한 병 주문했다.
십여 분 뒤 음식이 나왔다. 휴대용 가스렌지 위에 냄비가 얹어졌고 불을 켰다. 이게 뭐지? 부대찌개를 시켰는데 한 눈에 봐도 낯설다. 국물 속에 호박, 두부, 파프리카, 팽이버섯 등이 들어있다. 그 사이사이로 햄과 소시지가 조금. 국물이 팔팔 끓고 나서 한 숟갈 떠서 먹어봤다. 생전 처음 맛보는 국물맛이다. 굳이 표현하자면 고추장 야채찌개 정도일 듯하다.
우리가 주문한 세 가지 메뉴 중에 비빔밥이 그나마 제일 나았다. 비빔밥이야 어떻게 비비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기에 식당의 요리 실력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한국과 달리 비빔밥에 참기름 냄새가 나지 않는 게 아쉬웠다. 그래도 거의 열흘만에 한국 소주의 알코올향을 맡았다는 걸 위안으로 삼고 식당을 나왔다.
그리고 그 다음 날, 파리 에펠탑 근처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에펠탑 입장 시간을 9시로 예약해서 그 근처에서 저녁을 먹어야 했다. 주변을 보니 그렇고 그런 레스토랑들뿐이다. 더군다나 에펠탑에서 가까운 레스토랑들은 ‘뷰값’으로 음식 가격이 엄청나게 비쌌다. 메뉴판에 적힌 금액에서 더 얹어줘야 했다. 그래서 조금 더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길을 걷다 보니 길가에 일식집 하나가 눈에 띈다. 간판엔 빨간 글씨로 Fukushima라고 적혀 있다. 한국 식당보다야 많겠지만 일식집도 파리에서 그리 흔하진 않다. 같은 동양민족으로서 애착감도 들었다. 아내가 다른 데 더 가보자고 했지만 그날따라 날씨도 쌀쌀했고 가장 중요한 건 다들 핸드폰 배터리가 방전될 정도로 몇 프로 남지 않아서 충전도 할 겸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식당은 조그만했다. 테이블이 예닐곱 개 정도였는데 한 명이 식사를 하고 있다. 얘기를 들어보니 중국말로 식당 종업원과 대화를 한다. 여기도 중국인이구나. 다행히 전원 플러그를 하나 발견해서 여기서 시간을 때우며 충전하기로 했다. 메뉴판을 보니 벤또 몇 가지, 연어 덮밥류, 우동, 꼬치, 김밥 같은 롤 등을 팔고 있었다.
여자 종업원은 매우 불친절했다. 음식은 이게 일식 맞아? 할 정도로 중국풍의 일본 요리였다. 맛도 별로여서 일본 정종과 일본 맥주를 하나 주문해서 그걸로 만족했다. 그렇지만 우린 음식의 질보다는 핸드폰 충전이 급했고, 화장실도 무료로 쓸 수 있었고, 입장 시간 전까지 시간을 때울 수 있는 곳이 더 필요했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 구글 검색을 해보니 식당리뷰 평이 최악이었다는 글들이 꽤 보였다. 그땐 몰랐지만 식당 이름 후쿠시마를 지금에서야 생각하면 지진으로 폭발한 원자력발전소가 후쿠시마에 있었고 여전히 사람이 살지 않는 유령도시로 남아 있는 곳이다.
두 식당 모두 공통점은 짝퉁이라는 점이다. 두 곳 모두 중국인이 운영하고 있었다. 그래서 두 식당의 음식에서 공통적으로 중국향이 났다. 그럼에도 이번 여행에서 깨달은 게 있다. 역시 현지에서는 현지 음식을 먹는 게 가장 리스크가 없다는 거다. 두 식당 모두 맛은 없었지만 값진 추억이고 경험이다.
<ansonny@reviewtimes.co.kr>
Copyright © 리뷰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