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륙철도 시발점이라는 원대한 설계
광명역이 유난히 크게 태어난 배경에는 단순 환승 수요가 아닌 국제 철도망의 시작점이라는 국가 계획이 있었다. 1990년대 말 경부고속철도 구상 당시 정부는 서울 도심 혼잡을 피해 남서권에 고속철 거점을 두고 장차 남북 철도와 시베리아 횡단 철도까지 잇는 대륙철도의 시발역을 상정했다. 이 목표를 위해 기존 역사 리모델링이 아닌 전용 고속철 역사 신축이 채택되었고, 부지와 선로, 대합 공간, 지상과 지하의 환승 동선을 한꺼번에 수용하는 초대형 스펙이 기본값이 되었다. 광명역은 그렇게 탄생부터 ‘남서울 관문’이라는 상징을 달았다.

‘남서울’의 꿈과 서울 편입의 간극
광명은 역사적으로 서울과 맞닿은 생활권을 형성했지만 행정구역은 경기도에 남아 있었다. 전화 지역번호 02를 공유하며 ‘사실상 서울’ 인식이 퍼졌으나 법적 편입은 이뤄지지 않았다. 서울의 공업지대 확장과 인접 지역 편입 과정에서 광명은 경계 밖에 머물렀고, 정부는 이를 보완하려 남서울 관문 도시로 육성하는 정체성을 부여했다. 서울로의 행정 편입 대신 철도와 도로 네트워크의 출발점 역할을 맡기는 선택이었다. 남서울 역할의 실질을 교통 거점으로 구현해 생활권 통합 효과를 노린 설계였다.

초대형 역사 스펙과 5천억 논란의 구조
광명역은 대지와 건축 규모, 내부 이동 동선, 플랫폼 수용력에서 국내 최대급으로 설계됐다. 고속열차의 고정밀 운용, 대량 승객의 피크 분산, 국제 노선 접속 가능성을 전제로 한 공간 계획은 설비와 안전, 관제 기능을 한데 묶는 막대한 초기 비용을 불렀다. 공사비 총액은 약 4천억 원대, 부지와 접속선, 부대 인프라까지 포함하면 체감 비용은 5천억 원 안팎으로 인식됐다. 당시 기준으로 거대한 투입은 ‘과잉 설계’라는 비판을 낳았지만, 대륙 연결이라는 상위 목표 아래서는 여유 용량과 확장성 자체가 설계 목적이었다. 즉시 수익보다 장기 확장 권리를 매입한 셈이었다.

계획 수정이 남긴 빈 공간과 보완의 시간
문제는 운영 국면에서 드러났다. 서울 도심과의 거리, 초기 연계 교통망의 빈약함, 이용자 행동 패턴이 맞물리며 광명역 접근에 1시간 이상이 소요되는 경우가 잦았다. 결과적으로 경부선 KTX는 서울역, 호남선은 용산역에서 출발하도록 계획이 수정되었고, 광명은 상징적 시발역 역할 대신 정차 및 환승 거점으로 축소되었다. 이미 상당 공정이 진행된 대형 역사는 규모를 줄이지 못한 채 완공되어 한동안 ‘너무 큰 텅 빈 역’이라는 오명을 감당해야 했다. 셔틀, 전철, 도로망 보완을 통해 접근성을 높이는 후속 조치가 뒤따랐고 역세권 개발이 진행되며 이용률은 점진적으로 개선됐다.

‘서울 아님’이 만든 교통 허브의 역설
행정구역상 서울이 아니기에 광명역은 수도권 남부와 서해권의 수요를 흡수하는 별도의 관문이라는 정체성을 공고히 했다. 인천 공항과 남부 권역에서의 차량 접근이 용이하고, 고속도로와 광역버스, 전철 연계로 도심 환승 피로를 줄이는 분산 거점이 되었다. 도심 터미널 혼잡을 회피하려는 장거리 승객과 물류의 시간 가치는 광명역의 장점과 맞물려 허브 기능을 키웠다. 상류 계획은 무산됐지만 중장기 수요 전환에 따라 ‘서울의 다른 출입문’으로서 효용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왜 서울에 편입 안 시키나’라는 질문의 본질
서울 편입은 행정과 재정, 정치, 생활권 전반에 걸친 대합의 결과여야 한다. 광명은 02 지역번호와 밀접 생활권으로 상징되는 결속이 있지만 독자적 도시 정체성과 개발 동력도 축적해 왔다. 편입 여부와 무관하게 교통 네트워크의 접속성을 높이고 생활권 연계를 강화하는 것이 단계적 현실 해법이었다. 광명역의 사례는 ‘경계 밖의 초대형 인프라’가 어떻게 수도권 전체의 이동 효율을 높이는지, 그리고 도시 간 역할 분담이 왜 필요한지를 보여준다. 서울이 아니기에 가능한 분담이 있고, 서울이 아니어도 이점이 되는 허브가 있다.

빈 껍데기에서 남서울 관문으로 재해석하자
광명역은 초기 과잉 설계 논란과 접근성 한계를 겪었지만 대규모 용량과 여유 공간을 기반으로 다양한 기능을 수용할 잠재력을 품고 있다. 수도권 순환형 고속철 네트워크, 공항 연계 강화, 광역 BRT와 간선급행의 정합성 확보, 복합 비즈니스 거점 육성 등은 모두 광명역이 가진 스케일의 경제가 있어야 가능하다. 서울 편입의 찬반을 넘어, 분산형 수도권 체계 속 ‘남서울 관문’이라는 본연의 설계를 오늘의 기술과 수요로 업데이트해 실제 효용을 극대화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