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의 '먹사니즘', 한동훈의 '파이 나누기'...경제로 중원 잡는다
韓 파이 나누기, 격차 해소
"경제 잡는 사람, 2027년 대권도"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
이 한마디에 1992년 미국 대선 결과는 뒤집어졌다. 걸프전 승리로 지지율이 90%까지 치솟았던 조지 H.W 부시 대통령은 변방의 아칸소 주지사였던 '정치 애송이' 빌 클린턴 후보의 경제 승부수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바닥을 뚫고 고꾸라진 마이너스 성장, 치솟기만 하는 물가와 실업률을 버티지 못한 미국은 변화를 택했다. '죽고 사는 전쟁'보다 '먹고사는 경제'가 더 큰 '문제'였다.
경제를 잡아야 대권을 잡는다
한국도 경제가 대권을 갈라왔다. '부자 되세요'를 국가의 과업으로 내걸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욕망의 구호 하나로 청와대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반면 문재인 정부는 폭등하는 부동산 값을 잡지 못하고 5년 만에 정권을 맥없이 내주고야 말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30%도 안되는 지지율로 고전을 면치 못하는 건, 바닥 체감 경기를 붙들지 못한 경제 실정 탓이 무엇보다 크다. 당장 지난 4·10 총선 여당에 압도적 패배를 안긴 건, 윤 대통령의 세상 물정 모르는 '875원 대파' 발언이었다. 한국갤럽 조사에서도 경제 민생 물가는 윤 대통령이 잘 못하는 요인으로 가장 많이 꼽힌다.
진보 정권에서 고위 관료를 지낸 한 중진 정치인은 "경제를 잡는 사람이 2027년 대권도 잡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대한민국호를 이끌 차기 지도자는, 한국 경제의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을 능력과 비전을 제시해야만 한다는 얘기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도 각각 '먹사니즘'과 '격차 해소'를 내걸고, 집권 플랜에 시동을 걸었다. 본디 성장은 보수가, 분배는 진보가 내세우던 어젠다였지만, 두 사람은 서로의 약한 고리를 집중적으로 파고들고 있다. 중도층으로 외연을 넓히려는 전략이다.
"박정희·DJ를 잇는다" 이재명의 먹사니즘, 일단은 성장
이 대표의 대권 플랜은 "뭐니 뭐니 해도 먹고사는 문제, '먹사니즘'"이다. 연임 출사표로 내건 슬로건인데, 대권을 노리는 이 대표의 실용주의 정치철학을 압축하는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먹사니즘의 최우선 방점은 성장이다. 새로운 먹거리를 찾지 않고선 한국 경제의 도약을 이끌 수 없고, 이 대표의 정책적 유산인 '기본사회'를 구현하기 위해서도 성장은 필수일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다.
이 대표는 신재생에너지와 인공지능(AI) 등 신산업에 집중한다. 그중 '에너지 고속도로'가 대표 정책인데, 소멸 위기인 지방 곳곳에 재생에너지 플랜트를 설치, 전국적 연결망을 갖추겠다는 복안이다. 산업화를 이끌었던 박정희의 경부고속도로, 정보화를 선도한 김대중(DJ)의 벤처, IT(정보기술) 산업을 넘어 새로운 혁신성장의 모멘텀을 만들겠다는 포부다.
세부담 완화를 통한 중산층 회복도 먹사니즘의 한 축이다. 전통적으로 민주당은 세제 완화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해왔지만, 이 대표는 연임 성공 이후 금융투자소득세와 종합부동산세에 대한 완화를 역설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설파했던 탄소세, 토지세에 대한 언급은 사그라들었다. "보수 진영의 이슈인 감세를 먼저 띄우며 '이재명은 이념에 갇혀 있지 않다'는 시그널을 일찌감치 던지고 있다"는 평가다.
박근혜 경제민주화 벤치마킹? 한동훈의 차별화 '격차 해소'
한동훈 대표는 격차 해소를 띄우기 시작했다. 취임 일성으로 "지금까지 파이 키우기를 많이 강조해 왔지만, 그와 함께 격차 해소 정책에도 중점을 두겠다"고 밝힌 뒤 격차해소특위도 만들었다. 교육 문화 지역 소득 자산 건강 등 다중 격차를 해소하겠다며 양극화 해결을 제1과제로 내세웠다.
보수정당은 파이를 키우면 분배는 알아서 좋아질 것이라는 이른바 낙수효과에 기대왔지만, 한 대표는 보다 적극적으로 파이 나누기에 나서려는 것이다. 한 대표의 좌클릭은 경제민주화로 진보 진영의 이슈를 선점해 2012년 대선 승리를 이끌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중도 확장과 닮아 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당시 박근혜 후보는 MB 정부의 친기업 친부자 정책에 선을 긋는 차별화로 여당 내 야당을 자처하며 보수 정권 내 '정권 교체' 이미지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민생회복지원금과 지역화폐법 등 야당이 주도하는 민생 법안을 '포퓰리즘'이라고 원천 반대 입장을 밝힌 것과 달리, 한 대표는 선별적 복지 차원에서 논의해 볼 수 있다고 밝히는 대목도 한동훈만의 파이 나누기로 볼 수 있다는 평가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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