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경량화를 버린 로터스를 로터스라 부를 수 있을까

<카매거진=최정필 기자 choiditor@carmgz.kr>

브랜드가 긴 시간동안 쌓아온 역사와 이미지와 달리 최근의 움직임 때문에 좋지 못한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다. 그 중 상당수는 중국 기업에 매각되며 얻는 경우. 의도했던 그렇지 않았던 원래의 색을 잃는 케이스는 너무나 많았다.

로터스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로터스는 소위 ‘경량화에 미친 브랜드’였다. 스포츠카를 지향하는 브랜드는 여럿 있지만, 로터스만큼 독특한 브랜드는 없었다. ‘출력이 강하면 직선에서 빠르지만 차가 가벼우면 모든 구간에서 빠르다’를 실천한 브랜드기 때문. 그러다보니 굉장히 콤팩트한 크기를 자랑했고, 조수석이 있긴 한데 어깨는 반드시 닿았고, 다리도 신경 써서 오므리지 않으면 변속에 방해가 될 정도다.

그러나 지리자동차에 인수된 로터스는 큰 변화를 시도했다. 그렇기 때문에 더 궁금했다.브랜드 최후의 내연기관 스포츠카 ‘에미라’는 그래도 기존 이미지를 최대한 지키는 방향으로 갔지만, 비슷한 시기 선보인 엘레트라는 2.4톤에 5m가 넘는 거구를 자랑하는 ‘전기 SUV’로 선보였다. 그동안의 브랜드 이미지를 완전히 바꾸는 파격 시도였다. 과연 이 차는 로터스라고 부를 만 할까.

먼저 엘라트라S의 외관은 로터스의 새 시대를 알리는 독특한 인상이다. ‘입이 귀에 걸릴 정도’라는 표현처럼 길고, 쭉 올라간 전면부는 디자인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부메랑처럼 꺾인 램프는 어둠이 짙게 깔린 밤에 더 존재감을 발하고, 하단부의 육각형 공기흡입구는 사이버틱한 이미지를 강조한다. 예쁘다거나, 멋지냐고 묻는다면 글쎄. 다만 한번 보면 잊기 힘든 얼굴임은 분명하다. 이런 신기하면서도 기괴한 이미지 속에서 바퀴 옆으로, 앞유리를 넘어 머리 위로 뚫은 바람길은 로터스만의 특징이다.

뒷모습도 평범함은 모두 거부한다. 쿠페형의 날렵한 라인, 후방 라이다 센서를 피해 설치한 스포일러, 로봇처럼 얇고 길게 배치한 후면 램프까지 모두가 비범하다. 여기에 시승차에 적용된 블러썸 그레이 컬러 특유의 휘황찬란한 빛이 더해지니 시종일관 관심의 중심이다.

엘레트라의 특징 중 하나는 겉으로 드러나는 라이다 센서다. 주행보조기능을 작동시키면 지붕 위와 좌우 앞바퀴 바로 위에 하나씩 돌출된다. 후방 라이다 센서는 상시 돌출된다.

라이다 센서는 기본적으로 빛을 감지한다. 따라서 주변 환경이나 오염에 상당히 취약하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로터스는 세척 기능을 추가했다. 해당 기능을 사용하면 라이다 센서 측면에서 워셔액 노즐이 한번 더 돌출, 강하게 워셔액을 분사한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부작용도 있다. 대다수의 워셔액이 에탄올을 사용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증발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워셔액이 채 마르지 않은 상황에서는 감지의 왜곡이 발생한다. 주행 보조 기능 사용 중 전방에 존재하지 않는 차를 존재하는 것으로 인식해 급정거를 일으키는 것. 테슬라의 오랜 골칫덩어리인 ‘팬텀 브레이크’와 유사한 증상이다. 일정 시간이 흐른 후엔 해당 증상이 사라졌으나 추가적인 확인이 필요한 부분이다.

실내 공간은 개성보다는 혼합의 느낌이 강하다. 대형 인포테인먼트 디스플레이는 테슬라를, 얇고 길게 들어간 운전석-조수석 디스플레이는 페라리를 연상시킨다. 송풍구의 작동 방식은 포르쉐를, 컵홀더와 기어 레버는 마세라티와 BMW의 것을 닮았다. KEF 오디오의 스피커 커버만큼은 독특함을 자랑한다.

스티어링 휠 뒷부분의 시프터 패들은 좌우/상하를 모두 구분했다. 왼쪽 패들의 상단부는 회생제동 단계를 높이고, 하단부는 이를 낮추는 역할을 한다. 반면 오른쪽 패들은 드라이브 모드를 바꾸는 기능이 적용됐다. 얇은 스포크 위에 자리한 버튼은 조작감이 명확하지 못하다. 스티어링 휠 위에 기능은 많고, 이를 디자인으로 감추기 위해 얇게 적용하다 보니 생긴 부작용이다.

인포테인먼트 디스플레이의 경우 반응 속도와 한글화는 훌륭한 편. 음성 인식에서 우리말을 인식하지 못하고 영어로 나온다는 점은 아쉽지만 크게 불편하진 않다. 오히려 불편함으로 다가오는 것은 완벽하게 연동되지 못하는 스마트폰 미러링이다. 어떠한 것도 조작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버그가 걸린 듯 반응이 느려지다가 스스로 재부팅 되는 화면은 럭셔리와는 맞지 않은 모습이다.

앞좌석의 착좌감은 다소 단단하다면 뒷좌석은 편안함을 강조했다. 운전의 재미와 함께 동승자의 편안함을 같이 꾀한 모습이다. 2열 역시 터치 디스플레이로 공조장치와 시트의 조절, 볼륨 조절까지 조작할 수 있도록 했다. 많이 쓸지 알 수는 없지만 충분히 신경 쓴 모습이다. 다만 그동안의 ‘로터스’와 맞지 않을 뿐이다.

전기차가 되며 생긴 이점 중 하나는 엄청난 출력을 내기 쉬워졌다는 점이다. 이러한 출력을 발휘하면서도 긴 주행거리까지 확보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지만 우선 고성능을 만들기엔 더 수월해졌다. 덕분에 ‘럭셔리를 강조한다’는 엘레트라 S도 합산 출력 612마력, 최대토크 72.4kg.m를 발휘한다. 보다 강력한 성능의 엘레트라 R은 합산 출력 918마력, 최대토크 100.4kg.m를 발휘한다.

덕분에 가속 자체는 재빠르다. 4.5초만에 가능한 정지가속이 아니더라도 이 차가 빠르다는 것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다만 과거의 로터스에서 느꼈던 ‘적절한 고출력을 가진 차가 한없이 가벼운 무게로 인해 날아다니는 듯한 느낌’은 전달되지 않는다. 2.4톤에 달하는 무게는 고스란히 조작의 묵직함으로 다가온다. 민첩하다면 민첩하지만, 로터스만의 느낌보다는 여러 전기차 브랜드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느낌이다. 다시 말해, 굳이 엘라트라가 아니더라도 로터스 뱃지를 붙여도 ‘로터스같아!’라고 평할 수 있을 정도다. 스티어링 휠을 조향 할 때마다 넘어오는 가죽 마찰음 또한 아쉬운 포인트.

엘레트라는 로터스에게, 그리고 로터스자동차코리아에게 캐시카우 역할을 해야 하는 모델이다. 이미 판매가 완료된 에미라는 과거의 로터스를 그리워 하던 이들을 위해 선보인 웰컴 기프트였고, 오늘(7일) 선보인 에메야는 라인업을 확장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도록 높은 가격이 책정됐다. 엘레트라 S 기준 시작 가격은 1억 7,900만원으로, 선택품목을 모두 추가하면 2억 5,190만원까지 높아진다.

물론 과거에도 로터스를 보는 이들에게 가격은 고민의 요소였을 뿐 구매하지 않을 이유는 아니었다. 로터스에는 그만한 매력이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의 로터스를, 엘레트라를 과연 로터스라고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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