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부터 웃긴, 봄에 어울리는 노래 [단편선과 플리들]

단편선 2026. 3. 29.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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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키델릭부터 포크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인디 뮤지션 단편선이 보물 상자처럼 모아놓은 플레이리스트(플리) 속 반짝이는 노래와 빛나는 앨범을 소개합니다.
첫 앨범 <나 원래 웃긴 사람인데>를 발표한 가수 최제니.

겨우내 움츠리고 다녔다. 추워서. 마침 내 직업은 음악가이고, 우리에게 겨울은 비수기인 탓에 집에만 머무른 날도 많았다. 집에서는 주로 생각을 하거나, 기타를 치거나, 글을 썼다. 또는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기도 했다. 추운 건 싫지만 그런 건 또 좋았다.

오늘은 겨울 동안 들은 앨범 중 한 장에 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최제니의 첫 앨범 〈나 원래 웃긴 사람인데〉. 지난해 12월에 음원으로 먼저 발표되었고, CD는 올 1월에 나왔다.

최제니에 관해서는 알려진 게 별로 없다. 2024년에 처음 싱글을 낸 이래 몇 곡 더 발표했다는 정도가 거의 전부다. 라이브를 한 기록도 찾아보기 어렵다. “스무 살이 되고, 스물한 살이 되던 해에 쓸데없는 잡생각들이 많았다. (···) 스물셋이 되었을 때 비로소 누군가의 안부 정도를 물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라는 앨범의 소개글에서 20대 젊은이겠거니, 짐작해볼 따름이다.

그럼에도 단번에 빠져든다. 위트 있고 솔직하다. ‘나 원래 웃긴 사람인데’ ‘미운 정’ ‘미친개’ ‘쿨하게’ 같은 트랙은 일단 제목부터 웃긴다. 하지만 마냥 웃기기만 한 앨범은 또 아니다. ‘나 원래 웃긴 사람인데’는 실은 웃긴 노래가 아닌, 외려 웃음이 사라지고 말이 없어진 사람의 노래다. 자신을 미친(아마도 사랑에) 개에 비유하는 ‘미친개’는 블랙 코미디스러운 한편, 애수 어리기도 하다. 목소리는 고즈넉하면서도 세련되었다. 조금은 가스펠 같은 뉘앙스도 묻어나는, 명량함과 은은함을 동시에 머금은 피아노 연주도 좋다. 그것들이 직관적으로 귀를 낚아챈다.

그런데 누군가 내게 “이 앨범에 대해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뭐예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아마 ‘사운드’라고 대답할 것 같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운드의 텍스처다.

가령, 여는 트랙인 ‘나 원래 웃긴 사람인데’는 어쿠스틱 기타의 아르페지오로 시작하는데, 곡이 연주되는 내내 고장 난 기타에서나 들릴 법한 ‘버징(기타 줄이 프렛과 잘못 닿아 ‘파르르’ 금속성의 소리가 나는 것)’이 들려온다. 그것도 지나치게, 너무 자주. 보통의 경우라면 버징은 기술적 흠결인 탓에 제거되어야 한다. 즉, 정상적인 컨디션의 기타로 연주를 해야 마땅하다. 직관적으로 거슬리는 소리다. 하지만 듣다 보면 또 납득이 된다. 오히려 마음을 더 깊숙이 찌르기도 한다.

이 앨범에는 그런 ‘까슬함’을 지닌 텍스처가 종종 등장한다. 내친김에 하나만 더 말해볼까. 다음 트랙인 ‘아침’에 등장하는 업라이트 피아노는 ‘잘 조율된’ 레코딩을 위한 악기라기보다는 ‘마침 집에 있던’ 가정용 피아노처럼 느껴진다. 톤은 너무 먹먹한 것처럼 들리고, 그에 반해 삐거덕거리는 잡음들은 크다. 그런데 이 먹먹한 피아노가 명료한 기타 연주, 그리고 겹겹이 쌓인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와 만났을 때 그려낸 풍경은, 어쩐지 몹시 스타일리시하면서도 우아함이 깃든 것 같달까. 흠결을 흠결로 남겨두는 것. 그런 장면들이 이 앨범에는 아주 많다. 그것들이 이 음악에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계속 기울이고 싶게 만든다.

(최제니는 앨범의 발표를 기념하는 공연에서 〈나 원래 웃긴 사람인데〉의 레코딩과 관련해 ‘어느 날, 마법처럼 길바닥에서 기타를 하나 주웠고, 그 기타로 이 곡의 데모를 녹음했는데 이후 다시 녹음을 해보아도 그 맛이 살지 않아 데모 녹음을 그대로 쓰게 되었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아마 그는, 그것을 결심할 용기를 지닌 사람일 것이다.)

글을 쓰는 사이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날씨가 마치 기분처럼, 왔다 갔다 하는 계절이다. 왔다 갔다 하는 날씨와 이 앨범에 담긴 음악이 어쩐지 잘 어울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계속 귀 기울이고 싶어지는 음악이다. 앞으로도 죽.

단편선 (음악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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