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ㅣ 장승용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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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우리는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너무도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내가 보고, 내가 느끼고, 내가 생각한다는 감각이 모두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지는 것이죠. 그런데 만약 내가 내가 아닌 것 같다거나 내몸이 낯선 느낌, 영화를 보듯 내가 자신을 외부에서 지켜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면 어떠실 것 같나요? 아마 매우 낯설고 혼란스러운 느낌이 드실 텐데요.
이인증(depersonalization)은 자신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거나,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 신체로부터 분리된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인증에서는 감정이 무뎌진 느낌이나 내몸이 내 것이 아닌 듯한 느낌, 내몸과 정신이 분리되어 허공을 떠다니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이인증은 해리장애(dissociative disorder)의 한 종류로, 자기 자신을 지각하는 방식에 심각한 변화가 생긴 상태를 말합니다. 이인증을 경험하는 분들 중에서는 “내 목소리가 멀리서 들리는 것 같다.”, “내가 자동으로 움직이는 로봇이 된 것 같다.”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는데요. 이와 함께 주변 환경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비현실감(derealization)이 동반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경험을 하면서도 이런 느낌이 실제가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는 현실 검증력이 유지되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우선 과도한 스트레스에 대한 방어기제라는 측면에서 설명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뇌는 심각한 위협 상황에서는 감정이 압도되지 않도록 감정 반응을 차단합니다. 뇌 영상 연구에서는 우리 뇌가 심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감정 처리와 관련된 변연계 활동이 줄어들고, 전전두엽의 통제 활동이 증가하는 양상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즉,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감정은 억제되고 관찰자 모드로 전환되는 상태가 됩니다.
이인증은 공황장애나 외상 후 스트레스(PTSD), 우울장애, 불안장애와 동반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특히, 외상 경험이 있는 분들에게서 이인증이 나타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외상을 경험하면서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을 억압하고 차단하는 방어기제가 굳어져 일상에서도 자동적으로 이런 방식이 작동하기도 하는데요. 또 다른 원인으로는 술, 담배, 카페인 등과 같은 약물 사용도 이인증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이인증은 겉으로는 관찰하기가 어렵지만 이를 겪는 당사자에게는 심한 혼란과 불안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비현실감, 내가 아닌 듯한 느낌이 들면서 내가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불안이나 미쳐가는 것은 아닌지 하는 혼란, 두려움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실제 상황이 아니라는 현실 검증력은 유지되기 때문에, 자신이 이상한 경험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외부의 현실이 실제로 왜곡되거나 이상하게 변한 것은 아니라는 점도 인지합니다.
이인증을 경험할 때, 가장 먼저는 이런 증상이 자신을 보호하려는 뇌의 방어기제라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만 그 노력이 장기적으로는 고통스러운 감정을 인식하고 적절하게 처리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뇌가 지금은 너무 힘드니 잠시 쉬어가고 스위치를 끈 상태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내가 무의식적으로 억압하고 있는 감정이나 기억, 사실이 무엇인지 탐색하고 건강하게 다루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 과정에서 상담이나 인지행동치료, 정신분석치료, 인지치료, 지지요법 등을 통한 도움을 받는 것도 좋습니다. 필요하다면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SSRI), 기분조절제, 향정신병 약물, 벤조디아제핀 등을 통해 뇌의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을 맞추는 약물치료를 병행할 수도 있습니다.
이와 함께, 비현실감에 대처하는 방법으로서 그라운딩(grounding) 기법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는 이인증을 경험할 때, 내몸에서 벗어나 공중에 붕 뜬 듯한 느낌에서 벗어나 감각을 현재로 되돌아오게 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지금 눈에 보이는 물건 다섯 개의 이름을 말해 보기, 손에 잡히는 물건의 온도나 질감을 느껴보기, 코 끝에 느껴지는 냄새, 손끝의 촉감과 같은 오감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자신이 현재 여기 있고, 현실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다는 물리적 감각을 뇌에 일깨워줄 수 있습니다.
이인증을 경험하면서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는 생각, 미쳐가고 있다는 생각 등으로 인해 자신을 비난하거나 자책하고, 수치심을 느끼실 수 있는데요. 이인증은 내가 잘못되거나 이상해서 생기는 것이 아닌, 감당하기 어려운 심리적 충격 상황에서 뇌가 나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그동안 애써온 나를 인정하고 격려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몸과 마음이 현실에 단단하게 발을 붙일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 보시길 권유합니다. 혹시 그 과정을 혼자 감당하기가 어렵다고 느껴지신다면 전문가를 통해 도움을 받으시면서 필요한 치료를 진행하시면 좋겠습니다.
합정꿈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ㅣ 장승용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