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루이, 그림으로 인간의 본질을 말하다

조지 루이가 뉴욕 니콜라 바셀 갤러리에서 전시 ‘Endless Song’를 선보인다.

얼마 전, 조지 루이(George Rouy)는 런던을 떠나 켄트에 있는 여유로운 마을 파버샴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는 19세기 교회로 이사했다. 거기에 살며 그는 스테인글라스 창 아래서 잠자고, 정원을 가꾸고, 가까운 스튜디오를 빌려 그림을 그린다. 그의 거대한 구상미술 연작은 역동적인 붓놀림과 브라운, 핑크, 토프를 아우르는 풍부한 컬러팔레트가 돋보인다. 루이의 작품 속 추상적인 사람의 형태는, 그 본모습을 하고 있을 때보다 인간의 복잡한 본질을 잘 포착한다.

지난여름, 켄트에서 만난 루이는 두 작품 사이를 끊임없이 서성였다. 그 그림들은 파열과 긴장으로 가득찼다. 배가 있어야 할 자리는 부서져 있고, 얼굴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소용돌이가 치고 있다. “영적이고 허황하게 들리기 싫지만, 우리를 둘러싼 무언가가 있다.” 루이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눈을 감고 우리 몸의 곳곳과 그 무게를 느끼는 감각이 좋다. 나는 우리 몸과 주변, 그러니까 몸 바깥에 있는 것들과의 관계를 그림으로 묘사하는 데 관심이 있다.” 루이에게 사람을 둘러싼 공간 역시 작품의 일부로서 중요한데, 이는 “[의미를] 왜곡하고, 희미하게 하기도 하는” 상호작용에 영향을 미친다.

2015년 캠버웰 컬리지 오브 아트(Camberwell College of Arts)를 졸업한 이래로, 그의 정적이고 조각 같은 화풍은 호흡이 거칠고 격동적인 스타일로 바뀌었다. 점점 확실해지고 있는 29세 아티스트 루이의 작품 세계는, 9월 7일부터 뉴욕 니콜라 바셀 갤러리(Nicola Vassell Gallery)에서 열리고 있는 그의 단독전에서도 만날 수 있다. 그가 말하기를 이번 전시는 신체적인 것보다 심리적인 것에 주목한다. 그는 언제나 몸과 관련된 단어로 전시의 이름을 지었다. 가장 최근의 것은 ‘Body Suit’이었고, 그전에 ‘Clot’과 ‘Shit Mirror’가 있었다. 이번 전시 ‘Endless Song’에서 그는 시간에 따라 문화가 변화하는 것에 관심을 돌려, 사람들 간의 교류가 우리가 알아채기도 전에 다음 세대에 영향을 미치는 것에 주목했다.

“오랫동안 ‘무리’라는 개념을 탐구해 보고 싶었다. 다수의 상호작용과, 신체적인 것을 넘어서 형이상학적인 견지에서의 갈등에 대해 묘사하고 싶었다.” 열두 점에 달하는 그의 연작에서 각 작품의 주제와 톤은 서로를 보완하는데, 그중 두 작품에서 이 의도가 가장 두드러진다. 그 첫 번째 작품에서는 한 사람이 몸 몇 개에 짓눌려 있는데 그림이 풍기는 에너지는 섹슈얼하고 폭력적이고 억압적이다. 그가 말하기를 “질식의 감각”을 표현한 거다. 이는 두 번째 작품이 갖는 초월성과 상반된다. 이 그림에서는 세 개의 추상적인 형체가, 그중 가장 가벼워 보이는 이미 죽은 듯한 사람을 떠받치고 있다.

루이에게 작품이 “그저 아름답거나 쉽거나, 안전해 보이지” 않는 것은 중요하다. 그는 “불안한 긴장감”이 도처에 있음을 이해한다. 그의 작품 속 인물은 종종 제4의 벽을 깨고 보는 이와 눈을 맞춘다. 추상의 바다 한가운데 선 인물은 눈으로 우리를 쫓으며 우리의 영혼을 꿰뚫어 본다. “보는 이와 작품 속 인물 사이에 공백이 있는 것을 안 좋아한다. 내게 작품은 거울과도 같다. 작품을 보는 그 순간 이외의 장면이 또 필요한 것이 아니라, 보는 이와의 상호작용 자체가 곧 작품의 일부인 거다.”

작품 구성을 위해 인터넷에서 찾은 레퍼런스 이미지를 활용해 콜라주를 만들기는 하지만, 루이의 누드화는 그의 상상에서 온 것이다. 그는 그림이 자신이 직접 창조하지 않은 사진이나 평평한 이야기가 만들어 내는 이미지에서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흥미로워했다. “이미지와 몸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데 어떤 추상적인 관점을 가졌는지에 따라 완전히 다른 그림이 탄생한다.” 루이는 이에 강한 아티스트로 세실리 브라운(Cecily Brown)과 제니 사빌(Jenny Saville)을 들며 이들을 “구성주의 회화의 선구자”라 칭했다.

루이의 작품에는 에로티시즘이 돋보이는 면이 있지만, 정작 그는 이를 크게 염두에 두지 않는다. “작품 속 인물이 옷을 입었을 때 더 섹슈얼한 경우도 많다.” 오히려 그는 그 암시가 몸의 어떤 부분을 그리기로 결정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루이가 그림그리기를 즐기는 순간은 그의 작품이 불편하다고 느껴질 때다. 그는 “뭔가 이상하고, 즐거운 것과 거리가 멀고, 심지어 봐서는 안 되는 것처럼 느껴질 때”를 좋아한다. 예술은 설령 그 주제가 매혹적이지 않더라도 보는 이를 매혹할 수 있는 지점에 도달해야 한다고 그는 믿는다.

어떤 면에서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에는 성별이 없는 듯하다. 그가 그리는 사람은 형체를 명확히 하고 있기보다 그 움직임을 마구 섞은 것에 가깝지만, 루이의 그림에는 여전히 인종적 다양성이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바른 의도와 감수성을 갖고 일하는 법을 터득했다. 관음증적인 그림은 보는 이를 분리하기까지 한다. 보는 이를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그 세계에 입장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나면, 이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껴진다.”

루이가 처음부터 그의 작품을 감상하는 이들과 소통할 수 있었던 건 아니다. 2017년 페컴의 한나 배리 갤러리(Hannah Barry Gallery)에서 열린 첫 전시에서 한 비디오그래퍼가 그가 흑인을 묘사하는 방식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 일은 꽤 오래 이어졌다.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물론 좋은 일은 아니었고 처음엔 겁도 먹었지만, 덕분에 시야가 넓어졌고 아티스트로서도 성장했다.” 이제 루이는 예술 작품이 인간의 본질과 관련 있으며, 이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예술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는 것을 이해한다.

루이는 예술가 집안 출신이다. 그의 여동생 엘사(Elsa Rouy)는 화가로, 그의 작품은 여성의 성적 표현과 쾌락주의, 불완전한 자아를 탐구한다. 그의 남동생 알피(Alfie Rouy)는 기묘하고 공상적인 그림을 그린다. 이들 남매는 지금 루이가 사는 곳에서 멀지 않은 스팅본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헤어 드레서, 어머니는 회사원이었지만 이들은 예술에 관심이 많았다. 루이는 아름다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했는데, 그 말은 세 남매의 작품 속에 깔린 어두운 기운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더 궁금하게 했다.

루이는 이것이 그의 강박장애에 기인한다고 했다. 그의 강박장애는 죄책감과 수치심에 관한 침투적 사고의 형태로 나타나곤 한다. “많은 이들이 비슷한 일을 겪지만 그 갈등 상태를 받아들이고 마음으로 소화하고 나면, 이를 다른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된다. 강박장애는 정신적 충격을 동반하기도 해서 어둠을 이해하게 한다. 극복하는 법을 안다면 그렇게 나쁜 일은 아니다.” 루이는 그의 정신 건강은 분명 그의 작품에 영향을 미쳤지만, 그의 작품이 꼭 그것만을 다루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는 “무언가를 창조적으로 만든다는 개념으로서의 예술” 덕분에 그 감정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노는 것은 중요하다. 사회에서 더 신경 써야 할 부분이다. 내가 하는 일의 반이 곧 노는 거다. 이것저것 시험하고 실험한다.” 금박칠한 송곳니와 탈색한 머리카락, 빈티지 스타일 옷으로 뱀파이어 같은 인상을 풍기며 교회에 사는 루이가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은 재밌다. 그는 깊이 생각하기를 즐기는 사람과 사랑스러운 악당 사이 그 어딘가에 있는 듯한데, 양쪽 다 결코 피상적이지 않다. 그는 면허시험에 세 번 연속 떨어져서 스튜디오 1층에 주차된 클래식 BMW를 운전할 수 없다고 말하며 주저 없이 웃는 사람이다. 그의 작품에 드러나듯 루이는 기운차고 활기 있고 매력적인 한편, 그 바람대로 읽기 쉽지만은 않은 사람이다.

조지 루이의 ‘Endless Song’는 10월 21일까지 뉴욕 니콜라 바셀 갤러리에서 열립니다.

Photography Alfie White
에디터 Emma Russell


뉴욕의 젊은 크리에이티브 9인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