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늦게 자면 키가 안 크는 걸까?

유튜브 댓글로 “밤 10시부터 새벽 2시 사이에 성장호르몬이 가장 많이 나온다는데 정말인지 알아봐달라”는 의뢰가 들어와 취재해봤다. 나도 이거 어릴 때 많이 들었던 얘긴데, 결론부터 말하면 엄마한테서 등짝스매싱 맞아가면서 일찍 잤던 거랑 성장호르몬과는 별로 관련이 없다고 한다.

우리가 자고 있을 때 뇌하수체에서 분비되는 성장호르몬 분비량은 언제 자느냐 즉 시간보다는 얼마나 푹 잘 수 있느냐가 아주 중요한 요인이다. 인간의 수면 사이클은 일정하게 유지되는 게 아니라 깊은 잠과 얕은 잠을 몇 번씩 오가는 불규칙한 단계를 거치게 된다. 여기서 성장에 중요한 건 깊이 잠들어 느린 뇌파가 나타나는 수면, 전문 용어로 ‘서파 수면’이라고 부르는 단계다. 그중에서도 맨 처음 단계의 서파 수면에서 가장 길고 깊게 잠드는데 이때가 바로 성장호르몬이 뿜뿜하는 골든 타임이다.

이향운 이대목동병원 수면센터장
“하루에 분비되는 성장 호르몬의 한 70~80%가 수면 초반부의 깊은 잠 단계, 서파 수면에서 이제 분비된다고 해요. 특히 이제 (잠들고) 1시간 이후에 분비되기 시작해서 3시간 이내에 가장 많이 나오거든요"

이때 분비되는 성장호르몬의 양은 서파 수면의 시간에 비례한다는 여러 연구 결과가 있는데, 서파 수면을 길게 유지하려면 생체 리듬에 맞춰 규칙적으로 취침해 양질의 수면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그러니까 하루종일 스트레스를 받아서 심적으로 몹시 피폐한데 어? 벌써 밤 10시네? 자야지~하면서 잠들어봐야 키가 크지 않는다는 얘기다. 성장호르몬이 특정 시간대에만 나온다는 건 선풍기 틀고 자면 숨막혀 죽는다는 괴담처럼 잘못된 속설이었던 셈이다.

다만 수면 전문가들은 수면 시간에서 일정한 규칙성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잠이 들쭉날쭉하면 생체 리듬이 깨지고 서파 수면도 보장되지 않으며, 집중적으로 분비돼야 할 성장호르몬이 줄어들기 때문.

이향운 이대목동병원 수면센터장
“잠을 이제 충분히 못 자서 성장호르몬의 분비량이 적으면 키가 많이 자라지 못할 뿐만이 아니라 (왱: 최종 신장에까지 미치는 영향이 있을까요?) 네, 많이 미치게 되죠”

이건 취재하다 알게 된 건데 성인들이 잠을 잘 때도 성장호르몬은 분비된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성장판이 닫혀있어 키가 더 크는 건 아니지만 지방 대사와 피로회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푹 안자면 살이 찔 위험성도 높다는 말. 뭐 별로 먹은 것도 없는데 자꾸 살이 찌는것 같다면 본인의 수면 패턴이나 잠들기 전의 스트레스 총량을 의심해봐야 한다. 그리고나서 마음을 안정시킨 뒤 서파 수면을 되새기면서 일단 푹 자야한다.

이향운 이대목동병원 수면센터장
“서파 수면을 많이 취하는 성인의 경우에는 성장호르몬이 지방 대사, 에너지 조절 이런 거에 관여를 해가지고 지방이 쌓이지 않도록 도와주거든요. 깊은 잠을 못 자면 비만이, 성인에서는 특히 더 많은 비만의 위험에 노출이 되는 거죠”

정리하면, 키크는 데 도움이 되는 수면은 언제 자느냐보다는 어떻게 자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 내가 수면 그 자체에 집중하지 못한다면 나의 뇌하수체도 성장호르몬을 덜 분비시키도록 만들어졌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참 쉽지않은 일인데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한국 중학생의 평균 수면 시간은 7.1시간, 고등학생은 5.8시간 정도인데 이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다. 특히 지난 3년간은 코로나로 등교를 잘 안 하면서 불규칙한 수면 습관이 몸에 밴 청소년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이향운 이대목동병원 수면센터장
"코로나 때문에 사실 지난 2년 동안은 학교에도 잘 안 가고 집에만 있는 경우가 많았잖아요 .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에 너무 무분별하게 노출이 되면서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불규칙하게 그런 생체 리듬이 너무 일상화돼가지고…"

내가 물려받은 유전자가 키와 별로 관련이 없는 것 같다는 깨달음이 빠를수록 다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요즘 이런저런 주사부터 사지를 늘리는 수술까지 희한한 방법들이 많은데 이런것보다는 한창 커야 할 때 많이 먹고 성장판을 자극시키는 꾸준한 운동, 그리고 영상에서 소개한 서파 수면을 차근차근 실천해보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