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년전 오늘]"아들은 감옥가면 안돼" 외치던 父… 母子는 왜 아빠를 죽였나

이다온 기자 2024. 10. 5.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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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지법. 대전일보DB

"아버지가 쓰러지셨어요."

2022년 10월 9일 오전, 대전의 한 구급대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신고를 받은 구급대원이 현장을 도착했을 때, 이들을 기다리던 사람은 당시 15살의 중학생 아들이었다.

아들은 안절부절못하면서 "아버지는 저기 있어요"라며 한 곳을 가리켰다. 아들이 가리킨 것은 다름아닌 자가용. 차 뒷좌석에는 아버지 김 씨가 온몸에 힘이 풀린 채 엎어져 있었다. 구급대원이 김 씨의 호흡을 확인했지만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그것도 사망한 지 만 하루가 지난 모습이었다. 김 씨의 모습은 처참했다. 흉기로 수십 번 찔렸으며 머리 뒤통수 쪽 후두부는 둔기로 가격당한 듯 깨져 있었다. 엉덩이와 허벅지 부근은 칼에 그인 자국이 선명했다. 범인은 최초 신고자였던 중학생 아들이었다. 아들은 "평소 아버지의 가정폭력이 심했고, 사건 당일에도 어머니를 때리는 아버지를 말리다 우발적으로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경찰 조사에서 어머니 A 씨와 살인을 공모한 정황이 드러나며 '계획범죄'에 무게가 실렸다. 이들은 왜 아버지를 죽였을까.

◇아버지의 가정 폭력과 어머니의 언어장애

언어장애를 가진 어머니 A 씨는 남편 김 씨와 지난 2005년 결혼했다. A 씨는 "남편이 평소 경제적으로 무능하고, 가정폭력을 일삼았다. 언어장애를 갖고 있는 나를 무시하고, 처가에도 소홀히 해 화가 나 범행을 저질렀다"며 "남편이 자주 술을 마시고 욕설하며 폭행했다"고 가정폭력 피해자임을 거듭 주장했다. 당초 경찰은 부부 싸움을 말리다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는 아들 B 군의 진술을 토대로 수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경찰이 사망한 김 씨의 핸드폰을 포렌식 한 결과, 아내 A 씨가 던진 술병에 맞아 상처를 입은 건 김 씨였다. 또 숨진 김 씨의 주변인 조사와 의무기록을 확인했지만 김 씨의 상시·물리적 폭력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에 B 군은 아버지의 물리적 폭력은 많지 않았다고 시인하며 '아빠가 나쁜 사람인 것처럼 부풀렸다'고 허위 진술을 인정했다. A 씨는 어려운 가정 형편에 더해 남편이 자신의 언어장애를 비하했다고 여겨, 평소 아버지에게 불만을 품고 있던 아들 B 군을 끌어들인 뒤 범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게티이미지뱅크

◇주사기와 제초제, 부동액, 그리고 계획범죄

앞서 A 씨는 같은 해 9월 18일 귀가한 김 씨와 사업 실패 문제로 말다툼을 벌이다 소주병을 던져 다치게 하고, 같은 달 20일에는 소주를 넣은 주사기로 취침 중이던 김 씨의 눈을 찔러 실명에 이르게 만들었다. A 씨는 2주 뒤인 10월 4일, 국에 제초제를 넣어 남편을 살해하려 했으나 실패하자 다량의 주사기를 구입하고 수면제 50정을 처방받아 남편을 살해할 계획을 세웠다. 같은 달 7일 A 씨는 B 군에게 '아빠를 죽이자 네가 아빠의 다리를 묶으면 그후로는 엄마가 알아서 한다'며 살인 제안을 했다. 이튿날인 8일 밤, 모자는 집에 있던 김 씨가 잠들자, 부동액을 넣은 주사기로 심장 부근을 찔러 죽이려 했으나 잠에서 깬 남편이 저항하며 실랑이가 벌어졌다. B 군은 김 씨를 흉기로 여러 차례 찌르고 A 씨는 둔기로 머리를 내리쳐 살해했다. 범행 수법은 B 군이 인터넷을 검색해 어머니에게 전달한 것으로 파악됐다. 모자는 김 씨를 살해하고 혈흔을 감추기 위해 사체를 욕실로 옮겨 씻겼다. 이 과정에서 평소 아버지에게 불만을 품고 있던 아들 B 군은 시신을 훼손하기도 했다. 이들은 시신을 유기할 목적으로 승용차에 싣고 A 씨의 친정집인 충남 청양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범행에 사용한 흉기는 버렸으나 시신을 처리할 방법을 찾지 못하자 이들은 다시 대전으로 돌아와 김 씨의 사망 사실을 경찰에 신고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김 씨의 시신을 부검한 결과 폐가 손상되고 두개골이 함몰됐으며 몸에서는 수면제와 소량의 독극물이 검출됐다.

◇父 "아들 감옥 가면 안돼"

숨진 김 씨는 생전에 가족을 사랑하는 헌신적인 가장이라는 증거들이 발견됐다. 숨지기 사흘 전 작성한 노트에선 이들로 인해 눈을 다쳐 시력을 회복하지 못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눈을 다친 뒤 아직도 시력이 회복되지 않아 고통스럽다"며 "아내와 자식을 보면 다시 힘을 얻는다"는 문구가 발견됐다. 살해당하는 순간에는 '아들이 감옥에 가면 안 된다. 날 병원에 데려가라'며 끝까지 이들을 감싼 것으로 드러났다. 또 아내가 주사기로 자신의 눈을 찌른 사실도 숨겼다. 동생에게는 교통사고를 당해 눈을 다쳤다고 했으며 친구에게는 자전거를 타다 굴러서 넘어져 정신을 잃었다고 했다. 안과 진료 후에도 의사에게는 '나뭇가지에 찔린 상처'라며 주변에 아내의 폭행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사건이 벌어지기 직전까지 가족들의 사이도 좋았으며 김 씨는 아들 B 군을 끔찍하게 아꼈고, 아들 역시 김 씨를 잘 따랐다고 한다. 평소에도 아들 B 군은 김 씨의 자랑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40대 가장을 살해한 혐의로 아들과 함께 구속된 어머니 A 씨가 피가 묻은 옷가지와 흉기를 담은 가방을 옮기는 모습. YTN 갈무리

◇사망 보험금을 노린 계획범죄?

같은 해 10월 17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자신을 김 씨의 가족이라고 밝힌 C 씨의 글이 올라왔다. 그는 "올해 봄에 피해자 앞으로 등록된 보험이 총 9개"라며 '가정폭력'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C 씨에 따르면 지난 7월 초 A 군과 B 씨가 피해자의 어머니를 찾아와 "B 군을 종손으로 생각한다면 모든 재산을 B 군에게 증여해달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피해자가 사건 발생 전에 A 씨의 언니(처형)에게 전화해 "부인이 무섭다. 부인이 나갔다 올 때마다 폭력적으로 변해 무섭다"고 말했다고도 전했다. 이어 "이번 살해 사건 이전에는 국에 농약을 타 먹였으나 별다른 반응이 없어 실패했다고 했다. 갖가지 살해 방법은 모두 아들이 인터넷을 검색해서 실행한 살해 시도 방법"이라며 "갖가지 살해 방법 중에 피해자 눈을 어떤 화학 용액이 담긴 주사기로 찔렀기 때문에 실명됐고, 부인에게 이 집에서 나가지 않으면 실명에 대한 고소를 진행하겠다 말한 다음 날 살해당했다"고 주장했다. 또 A 씨는 시아버지의 카드를 훔쳐 약 100만 원을 사용하다 걸렸으며 올케 명의로 신용카드를 만들려다 걸린 전적도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검·경 조사에서 보험 관련 범행은 밝혀지지 않았다.

◇헌신적인 가장, 가정폭력범으로 몰아

존속살해와 특수상해,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기소된 A 씨는 무기징역을 확정받았다.

대전지법 형사 12부는 지난해 4월 14일 A 씨에게 무기징역을, B 군에게 징역 장기 15년·단기 7년을 각각 선고했다.

재판부는 "남편을 살해하기로 결심하고 장기간 준비한 뒤 망설임 없이 범행을 저지르는 등 범행 수법이 잔인하고 극악무도하다"며 "흉기를 휘두른 것은 B 군이지만, B 군을 유인하고 범행을 주도한 것은 A 씨인 점, 진심으로 범행을 뉘우치는 것으로 보기 어려운 점 등을 고려했다"고 판시했다.

이어 B 군에 대해서는 "나이가 어린 소년으로 교화와 개선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며 "부정기형(미성년자 형기의 상·하한을 두고 선고하는 형)의 가장 중한 형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A 씨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지만 2심에서도 원심이 유지됐다. 2심 재판부는 "이전에도 음식에 제초제를 넣는 등 방식으로 피해자를 살해하려 했으나 실패했음에도 단념하지 않고 범행을 저질렀다. 만 15세에 불과한 아들에게 범행을 권유했다"며 무기징역을 선고, 원심을 유지했다.

A 씨는 2심에서도 원심이 유지되자, 대법원에 상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상고 내용에 항소심을 뒤집을 만한 사항이 없다고 보고 변론 없이 2심 판결을 확정했다. 1심에서 징역 장기 15년·단기 7년을 선고받은 아들 B(16) 군은 항소하지 않아 형이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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