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만필] AGI의 문턱에서, 인간의 역할을 다시 묻다

홍충선 2026. 3. 2.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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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에 접어들며 인공지능의 진화 속도는 산업혁명기의 증기기관보다도, 인터넷 확산기를 견인한 초고속 인프라의 보급 속도보다 더 가파르다. 거대언어모델은 추론과 창작, 설계와 의사결정의 경계를 허물며 인간 수준의 일반지능(AGI)에 근접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엔스로픽 CEO인 다리오 아모데이는 "노벨상 수준의 AGI가 2026~2027년에 실현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과장이든 경고이든, 분명한 사실은 기술의 가속이 문명사의 변곡점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우리는 지금 단순한 도구의 개선이 아니라, 인간 지적 역량의 자동화라는 전례 없는 국면을 통과하고 있다.

코딩의 세계는 이미 변곡점을 지났다. 노코드·자동화 기반의 이른바 '바이브 코딩'은 짧은 주기로 성능이 배가되며, 요구사항을 해석하고 설계·구현·테스트·배포까지 일괄 수행하는 환경을 현실로 만들고 있다. 개발자의 역할은 코드를 직접 작성하는 데서 벗어나 문제를 정의하고 제약을 설정하며 결과를 검증하는 감독자로 이동하고 있다. 최근 공개된 Claude Cowork는 AI 비서의 새로운 전형을 제시한다. 회의록 정리나 단순 자료조사를 넘어, 사내 인트라넷의 활용 가능한 데이터와 개인 호스트의 데이터셋을 연동해 보고서를 완성하고 의사결정 대안을 제시하는 협업 주체로 기능한다. 개발, 기획, 분석이 실시간에 가깝게 이루어지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생산성과 속도의 증가는 기업 경쟁력의 지형을 근본부터 다시 그리고 있다.

에이전트 간 상호작용을 전제로 한 소셜 플랫폼 MoltBook의 등장은 또 다른 전환을 예고한다. 인간은 게시물을 읽을 수 있지만 직접 개입은 제한된다. 수백만 개의 에이전트가 자율적으로 토론하고 협업하며 지식을 증폭하는 장면은 생산성의 극대화이자 동시에 통제의 과제를 드러낸다. 2월 초 기준 160만 개에 이르는 등록 에이전트는 '기계 간 사회'의 서막을 알린다. 에이전트가 다른 에이전트를 개선하고 집단적 추론으로 전략을 수립하는 구조는 인간 중심의 의사결정 체계를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다. 능력의 증강이 책임의 공백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새로운 거버넌스와 윤리 기준의 정립이 시급하다.

이 거대한 파고는 자본시장과 고용시장에 즉각 반영되고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대규모 감원은 단순한 비용 절감이 아니라 산업 구조 재편의 신호로 읽힌다. 일부 기업이 비AI 인력을 정리하면서 이를 기술 전환의 불가피성으로 포장한다는 'AI 워싱' 의혹도 제기된다. 기술은 중립적일 수 있으나, 그 활용은 언제나 전략적이며, 그 사회적 비용은 공동체가 분담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국내 상황도 다르지 않다. 제조 현장에 피지컬 AI와 로봇 도입이 가시화되자 노동 현장의 우려와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소프트웨어 전공뿐 아니라 이공계 전반의 취업률 둔화 조짐은 청년층의 불안을 키운다. 바이오, 신소재, 반도체 분야 등에서 AI 기반 연구개발이 확산되면서 기업들은 신규 채용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생산성의 비약은 단기적으로 초급 인력 수요의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효율이 오르면 기회도 늘 것이라는 낙관은 전환기의 충격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산업 구조의 변화는 언제나 기대보다 먼저 고통으로 체감된다.

해법은 단층적일 수 없다. 노동시간을 재설계해 고용을 분산하는 방안, 예컨대 주 4.5일 근무 전환은 생산성 증가의 성과를 사회적으로 나누는 하나의 시도다. 제조현장 로봇 도입에 따른 로봇세를 검토해 재교육과 전환훈련, 기본소득의 재원을 마련하는 방안 역시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세목 신설이나 근로시간 조정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교육 체계의 근본적 개편, 평생학습 인프라의 확충, 산업 전환을 예측하는 데이터 기반 정책 설계가 병행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기술 도입의 속도와 사회적 합의의 속도를 조율하는 집단적 지혜가 절실하다.

결국 더 근본적인 질문이 남는다. 인간은 어디까지 역할을 양보할 것인가. AI가 계산과 반복, 예측과 최적화를 압도한다면, 인간은 의미를 부여하고 방향을 설정하는 존재로 서야 한다. 문제를 정의하는 능력, 책임의 경계를 긋는 판단, 공동체의 신뢰를 설계하는 역량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우리는 일을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일의 정의를 다시 써야 하는 시점에 서 있다. 기술은 수단이고 사회는 목적이다. AGI의 문턱에서 필요한 것은 공포도, 맹목적 낙관도 아니다. 냉정한 통찰과 담대한 합의, 그리고 인간 존엄을 중심에 둔 설계다. AI는 인간을 대체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어떤 존재로 남을 것인지를 묻기 위해 등장했다.

홍충선 경희대학교 컴퓨터공학부 고황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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