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채우는 강인함, 포드 레인저 2.0 디젤 랩터 시승기

북미 시장의 전통적인 베스트셀러는 '픽업 트럭'이다. 본토 소비자들은 험로 주파 능력과 적재 용이성이 뛰어난 SUV를 선호하는 경향이 크다. 자동차를 이용하는 환경이 달랐기 때문이다. 교외 지역의 경우 주거 밀집도가 상당히 낮고, 유전을 보유하며 유류비 부담이 크지 않은 국가다. 더불어 주거 밀집도가 낮은 만큼 교통 인프라도 빈약할 수 밖에 없다. 대한민국처럼 택배나 배달 시스템이 환경적으로 발달될 수 없었고, 자동차의 적재 능력은 당연히 강조되는 셈이다. 또 도로 관리 상태가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픽업트럭의 기동성에 가치를 둘 수 있다.

한국도 교외에는 비슷한 환경의 지역이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장 규모 자체가 좁다. 시장이 좁을수록 시판가는 높아야만 하고, 결과적으로 픽업트럭의 시장성이 약화된다. 무엇보다 국산 1톤 트럭의 판매량이 매번 상위권을 점유한다. 더 저렴하고, 적재 능력이 뛰어난 1톤 트럭이 있는데 특수한 목적이 없다면 픽업트럭은 사치가 맞다. 그런데, 그래서 픽업트럭을 찾는 소비자들도 분명 존재한다. 특수한 라이프스타일, 혹은 개개인의 개성을 나타낼 수 있는 수단이다.

포드는 글로벌 시장에서 가장 많은 픽업트럭을 판매하는 기업이다. 특히 내수 시장에서 판매량 1위를 달성하는 F 시리즈와 함께, 해외 시장을 저격한 '레인저'를 별도로 양산하고 있다. 2021년에는 제4세대 레인저를 세계 시장에 공개했다. 순차적으로 고성능 디비전 레인저 '랩터'를 발표하기도 한다. 한국에도 픽업트럭의 수요가 있다고 판단한 포드코리아는 2023년 레인저를 한국 시장에 정식 출시했다. 그 중에는 레인저 랩터도 포함되는데, 엔진이 아닌 외관 커스텀 위주의 패키지 모델이라고 보는게 정확하다.

시승 차량은 포드 레인저 2.0 디젤 RAPTOR 트림이다. 국내에 입항된 레인저는 'WILDTRACK'과 'RAPTOR' 두 등급으로 나뉘는데, 오프로드 성능을 강화한 '랩터'가 상위 트림에 해당한다. 등화 장비, 언더 커버, 휠, 전용 데칼 디자인이 바뀌고, 후륜 서스펜션 댐퍼 성능이 강화된다. 또 클러스터와 전동시트 기능, 패들 시프트 등의 옵션 사항도 달라졌다고 한다. 후방 안개등이나 루프레일 등 기타 옵션은 제외되기도 하고, 엔진과 파워트레인 성능은 유사하다.

레인저는 포드가 생산하는 픽업트럭 라인업의 일원으로 F 시리즈와 유사한 디자인을 갖게 된다. 'ㄷ'자 형태의 헤드램프가 듬직하고 입체적인 인상을 남긴다. 기본형 대비 '랩터' 사양은 DRL 그래픽을 제외한 대부분의 스타일링이 더 강인해졌다. 우선 굵직하게 돌출된 보닛과 두꺼운 프런트 펜더가 볼륨 있는 차체를 만들어 주고, 차체 하단부의 스키드 플레이트는 진입각이 개선되는 형태로 바뀌었다. 라디에이터 그릴에 큼지막하게 새겨져있는 'FORD' 로고가 공격적이고 이국적인 분위기를 과시한다.

측면 디자인은 여느 픽업트럭과 같이 밋밋해 보인다. 개방형 적재함이 있는 픽업트럭이다 보니 바디 셰이프에 관한 평가를 하기에는 어렵다. 대체적으로 후륜구동을 베이스로 하기 때문에, 짧은 프런트 오버행과 긴 휠베이스의 조화가 매력적이다. 랩터 모델의 두꺼운 스키드 플레이트와 높은 지상고는 강인한 자동차라는 이미지를 확실히 전달해 준다. 프런트 펜더에는 에어 브리더 형상의 액세서리를 부착하기도 했고, 올블랙 바디 컬러와 검은색 휠의 디자인도 조화롭다.

밋밋한 디자인은 뒷모습도 매한가지다. 대다수의 픽업트럭들이 유사한 모습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적재함을 기준으로 테일게이트가 구성되고, 분할선을 따라 세로형의 테일램프가 부착되었다. 랩터 모델의 경우 'ㄹ'자 처럼 꺾여 있는 형상의 테일라이트 그래픽이 적용된다. 그나마 개성을 부여해 주는 디테일 요소라고 볼 수 있겠다. 해치게이트에는 랩터 모델 전용 레터링과 데칼이 부착되어 있고, 역시 큼지막한 레터링이 새겨진다. 하단 범퍼 아래로 노출되는 리지드 액슬 서스펜션이 터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인테리어는 디지털 인터페이스가 특징이라고 볼 수 있겠다. 12.4인치 크기의 풀 TFT 디지털 클러스터와 12인치 세로형 센터 디스플레이가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인터페이스도 간결하여 시인성이 좋다. 공조장치와 다이얼 버튼을 보면 직관성을 중시 여기는 미국차의 성향이 남아있긴 하다. 기어 레버는 전자식이지만 원위치로 돌아오지 않아 마치 기계식 레버를 조작하는 듯 하다. 글로브 박스는 상하단 두 곳으로 수납공간을 지니고 있으며, 양측 에어벤트 하단에는 접이식 컵홀더가 마련되는 등 공간 활용성이 뛰어나다.

랩터 전용으로 채택되는 시트는 볼스터가 두꺼운 편이다. 빨간색 포인트 컬러를 실내 곳곳에 적용하여 스포티한 감성을 자극하기도 한다. 2열 시트도 마찬가지다. 뒷좌석 공간은 여유로운 편이며 센터터널도 낮다. 물론 등받이 각도 조절이 자유롭지는 않고, 암레스트와 에어벤트 정도의 기본적인 편의장비가 구성된다. 적재함은 휠 하우스 부분을 제외하면 평탄하고 넓다. 고가의 차량에 가스 리프트가 탑재되지 않은 건 아쉽다. 전체적으로 픽업트럭 하면 떠오르는 투박한 실내 구성이 아니라는 점에 만족했다.

시동을 걸면 우렁찬 엔진음이 들려온다.부정적으로 보면 디젤엔진의 소음이긴 하다. 아무렴 안정된 상태에서는 적정선의 소음과 진동만이 느껴진다. 오디오를 켜면 신경 쓰이지 않을 수준이다. 2.0L급 디젤엔진은 최고출력 210HP, 최대 토크 55Kg.m 수준의 힘을 발휘한다. 디젤 엔진답게 낮은 RPM에서 초반 펀치력이 강한 편이다. 경쾌하다기 보다는 강인하게 나아간다는 느낌이 든다. 변속기로는 10단 토크컨버터가 맞물린다. 자연스러운 변속감을 지녔다. 변속기를 다단화하는 이유중 한가지는 연비 때문이다. 2.5톤에 살짝 못 미치는 무게와 심한 공기저항을 감안하면 9km/l 정도의 연비는 적정 수준이라 볼 수 있겠다.

어느 정도 속력이 붙은 이후에는 출력에 대한 갈증이 느껴지기도 한다. 스포츠 모드에서도 저단에서는 두터운 토크로 인해 전해지는 폭발력이 있지만, 기어비는 빠르게 상승하고 곧 탄력이 죽는다. 디젤엔진의 토크 밴드나 중량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제약이다. 무엇보다 무거운 짐을 적재해야 하는 픽업트럭은 토크를 초반부에 집중시킬 수 밖에 없다. 일상적인 주행에서의 문제도 아닐 것이다. 단지 '랩터'라는 수식어와 공격적인 외모에 비해 온순하게 느껴진다는 아쉬움이다.

스포츠 모드에서는 스티어링이 꽤나 묵직해진다. 중량이 무거워서 그런지 그립도 끈끈하게 확보되는 편이다. 예상보다 댐퍼의 감쇠력이 강한편이었고 롤링도 억제되어 있었다. 그래서 고속에서는 의외로 편안한 승차감과 정숙성을 보여준다. 섀시 구조는 전륜 더블 위시본과 코일스프링, 후륜은 리지드 액슬을 판스프링으로 지지하는 형식이다. 이론상 바퀴의 움직임을 정밀하게 조율하기 어렵다고 하지만, 애초에 기민한 주행성을 바라고 승차하는 차량이 아니다. 어드밴스드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을 비롯한 ADAS 기본화 등, 장거리 주행에서 만족스러운 세팅이라 표현할 수 있겠다.

한편, 전자식 트랜스퍼 케이스는 1단 저속 기어 와 고속 4륜 구동을 지원한다. 온로드와 오프로드를 포함해, 총 7가지 주행 모드를 제공하는데, 흥미로운 기능 중 한 가지는 트레일 컨트롤이다. 구동력 전달이 불균일한 험로에서도 속도 유지가 가능하게 해주는 기능이다. 오프로드용 크루즈 컨트롤이라 생각하면 되겠다. 원하는 속력을 세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속도 제한 장치와 차이가 있다. 반면 도심에서는 서라운드 뷰 카메라와 다양한 주행보조 장비를 활용하여, 거대한 덩치를 안전하게 운행할 수 있다. 특히 사각지대가 많은 픽업트럭이라 첨단 안전장비의 도입이 더욱 반가웠다.

포드 레인저 랩터를 시승했다. 만족스러운 데일리 성향을 품은 오프로더다. 어쩌면 한국 시장에서는 픽업트럭이 쿠페나 정통 SUV, 해치백처럼, 보편성 대신 '감성'을 추구하는 라이프 스타일 아이템으로 자리 잡지 않았나 싶다. 적재 용량은 1톤 트럭, 오프로드 성능은 전통파 SUV라는 정답지가 있긴 하지만, 픽업트럭만의 강인한 감성과 분위기는 독보적이다. 총합적으로 레인저 랩터는 정통 오프로더의 감성이 가득한 일상용 픽업트럭이었다. 한국 시장에서는 그 위압감으로 쉽게 밀려나지 않을 것이다.

글 / 사진: 유현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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