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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GOUT Futures] 한화 이글스 윤산흠

조회수 2022. 10. 12.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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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을 던지기까지

만화처럼 갖은 역경을 딛고 올라온 윤산흠이 1군 마운드에 서는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감동하고 열광했다. ‘낭만을 던지는 투수’라며. 이 남다른 스토리를 가진 주인공에게 야구란 정말이지 특별한 존재일 것만 같았는데, 실은 크게 다를 건 없었다. 그저 야구만 해왔고, 야구 외에 할 줄 아는 게 없었고, 야구가 너무 좋았을 뿐이다. 다만 특별했던 게 있다면 누구보다도 끈질기게 붙들고 놓지 않았다는 것. 좌절을 거듭하면서도 포기하지 않던 그에게 야구의 신은 마침내 미소를 보였고, 수많은 박수갈채를 받는 낭만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줬다.

Photo Hanwha Eagles, Sanheum Yoon Editor Chanwoo Lee

#꿈에 살아

꿈에 그리던 1군 무대에서 공을 던지고 있어요. 하루하루 어떤 기분으로 경기를 준비하고 있나요? (9월 5일 인터뷰)

정말 꿈에 그리던 무대거든요. 매일 재밌게 즐기자는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어요.

요즘 인터뷰도 자주 하고 팬들의 관심이 늘고 있어요. 본인도 실감하는지 궁금하네요.

출퇴근할 때 크게 와닿아요. 팬분들이 선물도 챙겨주시고 사인 요청도 많이 하시고요. 사진 찍어달라는 분도 자주 있어요. 얼마 전만 해도 아무것도 아닌 선수였는데, 이렇게 알아봐 주시니까 감사할 뿐이죠.

6월 중순에 콜업된 뒤로 꾸준히 기회를 받는 중이에요. 1군 타자들을 상대하는 데 좀 익숙해졌나요?

예전에 비하면 진짜 많이 적응된 것 같아요.처음에는 마운드에 올라갈 때 긴장을 꽤 했는데, 요즘은 긴장은 덜하고 집중력이 더 생긴 것 같아요.

어떤 식으로 타자들을 상대하고 있나요?

경기가 있기 전에 전력분석을 하거든요. 제가 구사하는 구종이 많지 않은 만큼 분석한 걸 토대로 상황마다 적절한 공을 섞어 던지고 있어요. (등판해서는 포수 사인대로만 던지나요?) 대체론 그렇지만 제가 원하는 공을 던질 때도 있어요.

좋은 활약을 보이면서 점차 접전 상황에도 자주 나서고 있어요.

타이트한 상황이 오면무조건 나가서 막아야겠다는 생각이긴 한데, 아직은 그날그날 컨디션에 따라 좀 어려운 부분이 있어요. 컨디션이 좋으면 자신감 있게 과감히 대결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날엔 직감적으로 뭔가 어렵다는 느낌이 오기도 해요. 경험이 아직 부족해서 그런가 봐요.

마운드에 오를 땐 어떻게 마인드 컨트롤을 하나요?

또 전직 메이저리거 팀 린스컴을 닮은 투구폼으로 주목받고 있어요. 워낙 역동적이라 체력적인 우려가 따르는 폼이기도 한데요.

다행히 몸 컨디션에는 전혀 문제가 없어요. 트레이닝 코치님들이 꼼꼼히 관리해주시거든요. 덕분에 아프다거나 체력적인 문제가 발생한 적은 없어요. (본인만의 회복 노하우가 있을까요?) 음… 특별한 건 아니지만 잠을 충분히 자고 있어요. 회복에 관해선 앞으로 좀 더 요령이 생겨야 할 것 같아요.

어떻게 현재의 독특한 투구폼을 갖게 된 건가요?

독립야구단스코어본 하이에나들에 있을 때는 투구 동작에서 다리를 두 번 들었어요. 그러다 작년 한화에 와서 몇 경기를 나섰는데, 박정진 코치님께서 주자가 있을 때 던지는 모습이 더 안정적인 것 같다고 하셨어요. 그때부터 세트 포지션으로 계속 던지면서 지금의 폼이 됐습니다.

패스트볼과 커브 투 피치 유형인데, 특히 너클 커브로 불리는 브레이킹 볼이 매우 뛰어나다고 평가받아요. 본인의 커브는 남들과 어떻게 다른지 소개해주세요.

보통 커브 구속은 빠르면 120km/h대 초중반 정도 나오잖아요. 제 공은 그보다 조금 더 빨라요. 또 전력분석팀에 물어봤는데 남들처럼 한번 떴다가 떨어지는 게 아니고, 직구처럼 날아가다가 급격하게 떨어지는 궤적이라고 하더라고요. 브레이킹이 빠르게 걸린다고 들었어요. (투구폼 뿐만 아니라 공 자체도 굉장히 독특하군요.) 던지는 방식이 달라서 그런 것 같아요. 커브를 구사할 때도 직구처럼 강하게 던지는 편이기 때문에 회전이 많이 걸리는 게 아닌가 해요.

지금도 위력적인 공을 구사하지만 새로운 구종을 던지려는 욕심도 있나요?

계속 연습하고 있어요. 지금은 일단 체인지업을 연습하고 있는데, 투구폼이 와일드해서 그런지 아직은 좀 어려워요.

1군 무대에 빠르게 안착할 수 있던 본인의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꿈이 꿈이었을 때

언제부터 야구선수의 꿈을 꾸기 시작했나요?

2008 베이징 올림픽을 보고 시작했어요. 당시까지 저보다는 아버지께서 야구를 무척 좋아하셨는데 항상 TV에 중계가 틀어져 있었고요. 원래는 전남 담양에 살았는데 야구부가 없어서 광주로 전학 갔어요.

고등학교 때는 내야수로도 많이 출전했더라고요.

진흥고등학교에 있을 때는 주로 2루수나 3루수를 봤고, 영선고로 전학 가서는 유격수로 주로 나갔어요. 타자로서는 맞추는 건 잘했는데, 힘이 워낙 약했어요. 수비를 그렇게 잘하는 편도 아니었고요.

신생팀 영선고로 전학 간 게 투수 전향을 위해서였다고 들었는데요.

맞아요. 어렸을 때부터 투수를 더 하고 싶었어요. 마운드에서 타자들을 삼진으로 돌려세우는 모습이 너무 멋있어 보였거든요. 전학 간 당시에는 팀에 선수가 없어서 한동안 야수로 나섰는데, 2학년 말에 전북지역 대회에서 투수로 등판할 기회가 생겼어요. 그때 구속이 꽤 잘 나와서 감독님께서 본격적으로 포지션 전향을 해보자고 하셨어요.

그렇게 3학년 때부터 투수로 전업했으나 성적이 좋진 않았어요. 프로 지명도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고 했는데, 그래도 막상 미지명이 현실이 되니 막막한 마음이었을 텐데요.

일단 앞으로 뭘 해야 할지 고민해봤는데 딱히 답이 안 나오더라고요. 야구는 계속하고 싶었는데 고교 때 기록이 안 좋다 보니 어려움이 있었어요. 그러던 중 아버지께서 대학보다는 독립야구단에 가는 게 나을 거 같다고 추천해주셨어요. 독립리그에 가면 프로와 연습 게임도 여러 번 하니까, 가서 일단 부딪혀보고 얼마나 통하는지 보자고 하셨어요. 만약 제 실력이 안 통하면 그때 가서 다음 길을 결정하자고 하시고요.

파주 챌린저스에 입단하며 독립야구단 생활을 시작했어요. 당시 프로에 어필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주로 했나요?

불과 1년 만에 두산 베어스에 육성 선수로 입단했는데, 그 배경엔 남모를 노력이 있었네요. 1년간 뼈를 깎는 노력을 하며 크게 성장했나 봐요.

고등학교 때보다는 타자를 상대하는 요령이 조금은 더 생겼다고 느꼈어요. 여전히 부족한 상태였지만, 투수 전향을 한 지 얼마 안 됐기도 하고 앞으로의 가능성을 보고 뽑아주셨던 것 같아요.

그러면 당시 프로에 입단했을 때의 기쁨을 표현하자면 어땠나요?

진짜 말도 못 했죠. 그때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있다가 전화가 와서 알게 됐거든요. 너무 좋아서 훈련하다 말고 바로 집에 갔어요. 아버지께도 전하려고요.

어렵게 프로에 입성한 만큼 살아남아야겠다는 절박함도 컸을 텐데요. 입단 후 어떤 마음으로 운동을 했나요?

하루하루를 전쟁처럼 살았던 것 같아요. 남들보다 잘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거니까요. 쉬는 타임에도 안 보이는 곳으로 가서 몰래 운동하고 그랬어요. (간절한 만큼 마음고생도 꽤 컸겠어요.) 힘들 때도 있었고, 스트레스도 받았죠. 저는 지금도 그렇고 힘든 생각이 나면 그냥 공을 던지거든요. 그러다 보면 잡생각이 사라져요. 그래서 그때 참 많이 던졌던 것 같아요.

그렇게 악착같이 두 시즌을 보냈는데, 다시 방출의 아픔을 겪었어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한동안 공을 정말 많이 던지다가 조금 무리가 왔나 봐요. 2년 차 때 기회를 좀 받다가 어깨가 아파서 경기를 얼마 소화하지 못했어요. 그러다 보니 실전 감각도 크게 떨어졌고요.

부상 때문이었군요. 지금은 어때요?

지금은 조절하면서 연습하고 있어요. 공 옮기는 노란 박스에 공이 200개 넘게 들어가는데, 두산 때는 그 안에 있는 건 무조건 다 던지곤 했거든요. 이제는 관리해야 한다는 걸 알아서 그때처럼 몇백 개씩 던지진 않아요. 보강 운동도 열심히 해서 작년부터 아픈 건 전혀 없어요.

#포기할 수 없던

사실 그쯤이면 야구를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는 경우도 많은데, 또다시 독립야구단 스코어본 하이에나들에 들어갔어요. 야구를 놓을 수 없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딱히 다른 일을 하려고 떠올려봐도 마땅치 않았어요. 계속 야구밖에 안 했으니까요. 당시 입대를 할지, 아니면 다시 독립야구단에 갈지 고민이 많아서 힘들 때 의지했던 코치님들한테 연락을 드렸어요. 두산 조경태 코치님이랑 지금은 NC 다이노스에 계시는 백차승 코치님께요. 두 분 다 1년 더 해보고 군대에 가라고 말씀하셨어요.

거듭된 좌절로 막막하고 뒤숭숭할 때도 있었을 텐데, 어떻게 마음을 다잡았나요?

그래도 저는 그렇게 크게 좌절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막막하다가도 일단 야구를 시작하면 재밌으니까요. 그래서 큰 고민 없이 그냥 했던 것 같아요. 별생각이 없어요. 성격이 그런가 봐요. (웃음)

스코어본에서 7이닝 노히트 노런을 기록할 만큼 활약이 좋았어요. 6월 중순에 일찌감치 한화 입단이 결정됐는데, 처음 프로에 갈 때와는 소감이 달랐을까요?

처음 두산과 계약했을 때는 ‘내가 결국 프로에 가는구나!’ 하고 마냥 좋았어요. 하지만 한화에 오게 됐을 땐 그냥 좋다기보단 ‘이번에는 아프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도 있었죠. 또 스스로 부족한 점도 많이 깨달았으니까 보완해서 더 잘해야겠다는 다짐도 했고요.

계약하던 날 스코어본에서의 마지막 등판을 하고 동료들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죠. 기쁘면서도 동료들을 보면 마음이 복잡했을 텐데요.

좀 뒤숭숭했어요. 어떻게 보면 혼자만 프로에 가는 거니까 ‘같이 가면 좋을 텐데’ 이런 마음도 들고. 시원섭섭한 기분이었어요.

독립리그 팀의 선수단 분위기는 어떤지 궁금해요. 다들 비슷한 아픔과 꿈을 공유하는 만큼 무언가 특별한 분위기가 있을 것 같은데요.

음… 확실하게 말씀드리긴 어려워요. 독립야구단 특성상 1년마다 구성원이 많이 바뀌거든요. 그에 따라 팀 성향도 어느 정도 영향을 받는 것 같아요. 파주와 스코어본 두 곳에 있을 때 모두 형들이 많았는데, 나이가 있는 형들께서 분위기를 잘 잡아주셨어요. 어린 선수들만 있으면 흐지부지해질 때도 꽤 있거든요. 덕분에 다들 정말 열심히 하고 운동량도 많았죠.

프로 입성 뒤로도 독립야구단에서 함께했던 인연들과 한 번씩 만나는 것 같더라고요. 어떤 선수들과 특히 친분이 깊나요?

일단 지금 삼성 라이온즈에 있는 박정준 형이요. 두산 때부터 알았던 형이에요. 서로 한 번씩 연락하고 얼굴도 보고요. 그다음에 가평 웨일스에 있는 손정빈(롯데 자이언츠 손성빈의 형)이요. 친해서 자주 연락하는 사이에요. 그리고 가평에서 연천 미라클로 옮겨간 전태준 형도 있어요. 제 중고등학교 선배인데 학교 때부터 두산 시절까지 계속 같이 뛰었어요.

여전히 독립리그에서 뛰며 도전을 이어가거나, 혹은 야구를 그만두고 새로운 길을 나서는 옛 동료들이 있을 거예요. 그들을 응원하는 진심을 한번 듣고 싶어요.

#낭만에게 야구란

‘낭만을 던지는 투수’라고 불리고 있어요. 특유의 장발 스타일도 이미지에 한몫하는 것 같은데, 긴 머리를 고수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운동하는 사람들은 학생 때 머리가 좀 짧잖아요. 그래서 그냥 한번 길러보고 싶었던 거예요. 20살 때 기르다가 포기했고, 작년 스코어본에 있을 때도 기르다가 잘라버렸거든요. 다시 한번 기르고 있어요. 당장은 자를 계획이 없어요. (예전에 김광현 선수가 모발 기부를 했잖아요. 본인도 비슷한 계획이 있나요?) 만약 자르게 되면 기부할까 상상은 해봤어요. 그래서 일단 염색이나 파마도 안 하고 있거든요. 지금 너무 지저분해서 파마를 살짝만 해야 하나 고민이 있는 상태입니다.

또 투구 중에 모자가 자주 벗겨지잖아요. 장발을 휘날리며 모자가 벗겨지는 게 멋있긴 한데 좀 불편해 보여요.

저는 학생 때부터 계속 그래와서 특별히 불편하지 않거든요. 보는 분들이 안 불편하냐는 말을 가끔 하세요. 저희 팀이 뉴에라에서 모자를 받고 있는데, 제 사이즈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모자 안쪽에 스펀지 같은 걸 붙여서 사이즈를 맞추는데 그래도 종종 벗겨져요.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에게 스페인어로 ‘내게 공을 달라. 자신 있다’라고 했던 말이 꽤 화제였어요. 이글스 TV를 통해 다른 스페인 말도 배워보겠다는 계획을 전했는데요.

한 마디 배운 게 있어요. ‘포기하지 않는 자가 성공한다’라는 뜻이에요. (좋은 말인데 한번 해줄 수 있나요?) “알깐싸 끼엔 노 깐사(Alcanza quien no cansa).” (멋있는데요? 정말 스페인어를 배울 욕심이 있어 보여요.) 처음에는 통역 형한테 문장만 하나씩 알려달라고 했는데, 지금은 글자 읽는 것부터 찬찬히 공부하고 있어요. 근데 너무 어려워요. (한숨) 진도가 안 나가요.

혹시 본인만의 좌우명이 있을까요? 여러 역경을 이겨온 만큼 하나쯤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좌우명이라면 아버지가 항상 해주시던 말씀이 있어요. ‘최고보다 최선을’이라는 말이요. 최고가 되는 것도 좋지만, 항상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다고 자주 말씀하십니다.

어느덧 시즌 막바지인데, 올 시즌을 어떻게 마무리하고 싶나요?

앞으로의 야구 인생에 있어서 목표가 있다면요?

조금 먼 미래의 목표를 말씀드리자면 언젠가 마무리 투수를 한번 해보고 싶어요.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아요. 다른 보직보다는 마무리에 대한 로망이 있어요.

낭만을 던지는 투수 윤산흠에게 야구란 어떤 의미인가요?

제 인생의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이죠. 지금까지 인생의 절반 이상을 함께했잖아요.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

끝으로 야구선수의 꿈을 놓지 않고 도전하는 이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남기며 인터뷰 마치겠습니다.

계속 꾸준히 열심히 하다 보면 분명 기회가 찾아올 거라고 믿어요. 자기 자신을 믿으면 좋은 결과가 따라올 거예요. 쉽지 않은 일이지만, 모두 힘내서 도전했으면 좋겠습니다. 화이팅!

▲ 더그아웃 매거진 138호 표지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2년 138호 (10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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