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과 독, 그리고 속임수의 과학, 모방과 의태

자연은 왜 닮은꼴 생물을 탄생시켰나

[글] 강창구 서울대 농생명공학부 교수
[그림] 신인철 한양대 생명과학과 교수
[편집] 윤신영 기자
[기획] 사단법인 집현네트워크

다양한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내려오는 속담이나 격언이 있다. 한국에는 “세상에 자기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셋은 있다”라는 말이 있고, 영어권에는 “Everyone has a twin somewhere in the world(모든 사람은 세계 어딘가에 쌍둥이가 있다)”, 중국에는 ‘天下之大,无奇不有(천하지대, 무기불유, 세상은 넓어서 닮은 사람도 어디엔가 있다)’라는 말이 있다. 동물 세상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볼 수 있다. 더 독특한 점이 있다면, 서로 다른 종들이 서로 닮은 형태를 보인다는 것이다. 의태(mimicry)라고 부른다 (그림 1).

[그림 1] 서로 다른 종이 서로 닮은 형태나 형질을 갖는 현상을 의태라고 한다.

의태의 정의는 한 종이 다른 종을 모방해 비슷한 형태나 형질을 갖는 현상이다. 생물에서 의태 현상을 주의깊게 관찰하고 이론을 정립한 최초의 과학자는 헨리 월터 베이츠다. 그는 아마존에서 오랜 기간 나비를 연구했는데, 분명히 서로 다른 종인데도 비슷한 색채와 무늬를 가지는 나비가 존재한다는 데에 큰 흥미를 느꼈다. 그는 이런 나비 가운데 일부는 독이 있고, 일부는 독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독이 없는 종이 독이 있는 종을 흉내내서 자신을 보호하는 전략이라 설명했다. 이 현상은 베이츠의 이름을 따서 베이츠 의태(Batesian mimicry)라고 부른다.

비슷한 시대에 독일인 학자 프리츠 뮐러는 남아메리카에서 곤충을 연구하면서, 독이 있는 종들이 서로 비슷한 색채와 무늬를 가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독이 있는 종들이 서로 비슷한 형태를 갖게 되면, 포식자가 한 종을 공격해 위험성을 학습한 뒤에는 비슷한 형태를 가진 다른 종도 덜 공격하게 된다. 이런 과정 덕분에 독이 있는 비슷하게 생긴 종들은 모두 보호 효과를 얻게 된다. 뮐러는 이 현상을 뮐러 의태(Mullerian mimicry)라고 명명했다. 이처럼 의태는 독이 없는, 혹은 독이 있는 종들이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진화시킨 흥미로운 생존 전략이다.


| 베이츠 의태: 얼마나 닮아야 속을까
베이츠 의태의 핵심은 포식자를 속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로 닮아야 포식자가 속을까. 이론적으로는 모델종(독이 있는 종)과 의태종(독이 없는 종)이 완벽히 같아지면 포식자는 둘을 구분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의태종이 모델종을 닮게 만드는 자연선택이 오랜 기간 작용하면, 의태종은 모델종과 구분이 힘들 정도로 완벽하게 닮은꼴로 진화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 자연에서는 완벽한 의태는 거의 없다. 오히려 의태종은 인간의 눈으로 보았을 때 쉽게 구분될 만큼의 차이를 지닌 경우가 많다. 왜 이렇게 ‘불완전한 의태’가 많을까.

첫 번째 이유는, 현재의 불완전한 의태가 충분히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포식자가 헷갈려 회피한다면 굳이 더 닮을 필요가 없다. 특히 모델종의 개체수가 아주 많을 때 이런 불완전한 의태가 잘 유지된다. 예를 들어 개미를 생각해보자. 개미는 작은 몸집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턱과 개미산을 가지고 있어 많은 포식자들이 기피한다. 그래서 개미를 흉내 내는 곤충이 많지만, 자세히 보면 완벽히 닮지는 않는다. 그래도 포식자 입장에서는 자연에서 매우 자주 마주치는 ‘개미처럼 생긴 것’을 자세한 관찰 없이 습관적으로 피하기 때문에 이런 정도의 의태만으로도 충분히 생존에 도움이 된다 (그림 2).

[그림 2] 많은 수의 개미 사이에 개미를 의태하는 거미 한 마리가 섞여 있다. 이 정도의 의태만으로도 충분히 생존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두 번째 이유는, 포식자의 감각 능력이 갖는 한계와 편향이다. 인간의 눈은 매우 정교하지만, 많은 포식자들은 그렇지 않다. 인간이 보기엔 불완전한 의태라도, 포식자의 시각 체계에서는 거의 동일하게 보일 수 있다. 또한 포식자들은 서로 다른 종의 잠재적 먹이를 구별할 때 모든 시각 정보를 종합하지 않고, 특정 단서(예를 들어 색채)에만 집중하기도 한다. 실제로 새들은 형태를 통해 잠재적 먹이원의 적합성을 판단할 때 무늬보다 색상 정보를 더 중요하게 사용한다는 연구가 있다. 이런 경우, 구체적인 무늬에 차이가 있더라도 색상이 비슷하면 포식자들은 의태종을 모델종으로 혼동할 수 있다.

세 번째 이유는 모델종이 의태종으로부터 형태적으로 ‘도망친다’는 가설이다. 의태종이 모델종을 닮을수록 의태종은 생존에 유리하다. 포식자들이 모델종을 경험적으로 학습하면 의태종 역시 함께 회피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델종의 입장에서는 의태종의 존재가 곤란하다. 모델종과 비슷한 의태종이 많아지면 포식자들이 의태종을 공격해 ‘이건 독이 없구나’라고 학습할 수 있고, 그 결과 모델종 또한 공격받을 위험이 커진다. 따라서 모델종은 의태종과 다른 형태로 진화하려는 선택압을 받게 되고, 의태종은 모델종을 따라잡으려는 선택압을 받는다. 이 두 상반된 힘의 균형 속에서 결국 불완전한 닮음이 유지된다.


| 뮐러 의태의 경우는 어떨까
앞서 소개한 가설들은 베이츠 의태에서 독이 없는 종과 독이 있는 종 사이의 관계, 그리고 불완전한 의태가 유지되는 이유를 설명한다. 그렇다면 뮐러 의태의 경우는 어떨까. 뮐러 의태에서 가장 잘 알려진 예는 헬리코니우스속(Heliconius) 나비들이다. 서로 다른 종이지만 이 나비들은 매우 비슷한 형태를 보인다. 그러나 베이츠 의태와 마찬가지로 자세히 들여다보면 서로 구분할 수 있을 정도의 차이가 존재한다. 헬리코니우스 나비뿐만 아니라, 독이 있는 산호뱀 사이에서도 비슷한 색과 무늬를 가진 종들이 많다. 하지만 이들 역시 세밀히 관찰하면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뮐러 의태에서도 두 종이 완전히 똑같이 생기면 포식자가 구분하지 못하는 이점이 있을 텐데, 실제 자연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불완전한 닮음을 보인다. 이 현상 역시 여러 가설로 설명된다.

하나는 포식자가 의태종들 사이의 유사성을 판단할 때 특정한 시각적 단서에 주로 의존한다는 가설이다. 포식자가 주목하는 핵심 단서가 비슷하다면, 나머지 세부적인 차이는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포식자가 빨간색과 검은색이 섞인 나비를 공격한 뒤 독이 있음을 학습했다고 해보자. 이후 같은 색 조합을 가진 다른 나비를 봤다면, 형태나 무늬가 조금 달라도 회피할 가능성이 크다. 빨간색과 검은색이 어떤 무늬를 이루는지, 나비의 크기나 윤곽선이 얼마나 다른지는 덜 중요한 요소다. 이처럼 포식자가 주로 이용하는 시각적 단서에 대한 일반화 능력은, 뮐러 의태에서 불완전한 유사성이 유지되는 주요 이유다.


| 의태는 모두 포식자들을 속이기 위한 방어 전략일까
베이츠 의태와 뮐러 의태는 모두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전략이다. 하지만 자연에서 의태는 방어 외의 다양한 기능을 위해 진화하기도 한다. 그 중 하나가 생식을 위한 의태 전략이다.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보고된 난초과 식물의 의태가 대표적이다. 의태는 같은 분류군 내에서 나타나는 경우가 많지만, 이 난초과 식물은 식물이 동물을 흉내 낸다는 점에서 매우 독특하며 많은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림 3).

[그림 3] 말벌을 의태하는 난초과 꽃과, 이 꽃에 짝짓기를 시도하는 말벌. 꽃은 말벌 암컷의 의태로, 시각적으로도 비슷하게 생겼을 뿐만 아니라 암컷의 향기도 풍긴다.

보통 꽃과 곤충의 관계는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상리공생이다. 꽃은 곤충에게 꿀이라는 자원을 제공하고, 곤충은 꽃의 수분을 돕는다. 이를 위해 곤충은 에너지와 노동을 들이고, 꽃은 꿀을 생산해야 한다. 그러나 일부 난초과 식물은 꿀을 제공하지 않고도 수분을 이루기 위해 의태 전략을 사용한다. 이들의 모방 대상은 같은 지역에 사는 말벌이다. 이 꽃들은 겉모습이 말벌과 비슷하다. 인간의 눈에는 크게 다르게 보이지만, 시력이 좋지 않은 말벌의 시점에서는 암컷처럼 인식될 수 있다. 실제로 이러한 난초들은 말벌의 몇 가지 특징, 예를 들어 광택 있는 표면이나 몸의 털 같은 구조를 정교하게 흉내 낸다. 여기에 더해 말벌 암컷이 내는 성페로몬을 화학적으로 모방해 방출함으로써 수컷 말벌을 유인한다. 그 결과 말벌 수컷은 짝짓기를 시도하기 위해 꽃에 접촉하고, 그 과정에서 꽃가루가 몸에 묻게 된다. 이후 수컷은 근처의 또 다른 난초 꽃에서도 같은 행동을 반복하게 되며, 그 결과 난초는 말벌을 이용해 수분에 성공한다. 이 과정에서 말벌은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한 채, 그저 난초의 번식만 돕는다.

말벌 수컷은 왜 이런 속임수에 반복해서 속을까. 왜 자연선택은 이들이 더 신중하게 암컷과 난초 꽃을 구별하도록 만들지 않았을까. 암컷의 희소성과 치열한 짝짓기 경쟁 때문이다. 말벌 암컷은 번식 준비가 되면 식물의 가장자리에 매달려 수컷을 기다리는데, 짝짓기 가능한 암컷의 수는 수컷보다 훨씬 적다. 따라서 수컷은 한정된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가능한 한 빠르게 반응해야 하며, 신중한 판단보다는 재빨리 접근하는 편이 번식 성공률을 높인다. 이런 강한 선택압 때문에 수컷은 종종 기만적인 난초 꽃에도 달려들게 되고, 그 결과 난초의 의태 전략이 효과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 게다가 난초 꽃에 속았을 때 수컷이 치르는 대가는 고작 몇십 초의 시간과 약간의 에너지일 뿐이다. 반면, 드물게 나타나는 생식 가능한 암컷을 망설이다 놓친다면 그 손실은 훨씬 크다. 바로 이런 이유로 난초의 정교한 의태 전략이 오랜 시간 유지될 수 있다.


| 닮음이 만든 진화의 언어
의태는 단순히 외형의 닮음을 넘어, 생존과 번식을 둘러싼 복잡한 상호작용의 결과다. 포식자와 먹이, 꽃과 곤충이 얽힌 진화의 이야기 속에서 닮음은 때로는 생존의 방패가 되고, 때로는 생식의 열쇠가 된다. 자연은 언제나,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서로를 닮아가며 살아남는 길을 만들어낸다.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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