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열등생이 사회에서 성공하는 이유!

[박만규 아주대 교수]
프랑수아 피노와 안도 다다오 사례
학교, 정리된 문제 푸는 인지학습의 장
사회, 스스로 문제 찾는 경험학습의 장
창의적 사고, 회복 탄력성 강해야 '성공'
우리나라 공교육도 사회 우등생 키워야

프랑수아 피노와 안도 다다오

올 하반기 미술 전시회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 중 하나가 피노 컬렉션(Pinault collection)이다. 피노 컬렉션(송은 갤러리, 9월 4일~11월 23일)은 세계적인 현대미술품 컬렉터인 프랑수아 피노(François Pinault)의 소장품 중 일부를 서울에 와서 전시하는 행사이다. 프랑수아 피노는 구찌(Gucci),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발렌시아가(Balenciaga), 부셰론(Boucheron), 린드버그(Lindberg) 등의 브랜드를 포함하는 프랑스의 명품 그룹 케링(Kering)의 창업자로, 세계 부자 순위 20~30위를 차지하는 사업가이면서 세계 최고의 미술품 수집가 중 한 명이다.

본래 작은 제재소를 운영하던 그는 목재 매매업에 뛰어들었다. 복잡한 중간 유통과정을 없애고 북유럽 국가들로부터 목재를 직수입하면서 큰돈을 벌었다. 그리고 1973년 설탕산업에 투자하여 1년만에 100배가 넘는 수익을 보았는데, 이는 당시에 주요 설탕 생산국들인 브라질, 쿠바, 인도 등에서 악천후로 인해 설탕 생산량이 급감하고, 1차 석유 파동으로 인해 운송 비용마저 급격히 높아졌다. 또한 석유 가격 급등으로 전체적인 산업 생산비용이 증가함으로써 설탕 가격의 인상을 초래하는 등 여러 가지 이유가 동시에 발생하여 일어난 일이었다.

이를 피노가 예측하고 내린 결정이라면 통찰력 혹은 동물적 후각이라 해야 하겠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단지 크게 운 좋은 사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어느쪽인지 알 수가 없다.

그는 자신의 소장품을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팔라조 그라시(Palazzo Grassi)와 푼타 델라 도가나(Punta della Dogana), 그리고 파리의 부르스 드 코메르스(Bourse de commerce de Paris)에 전시하고 있는데, 이 세 곳은 모두 처음부터 전시장이 아니었다. 팔라조 그라시와 푼타 델라 도가나는 구입 후 전시장으로 개조한 것이고 부르스 드 코메르스는 본래 농산물 거래소였는데 이를 구입한 파리 시로부터 50년 임대를 하여 전시장으로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세 곳 모두 한 명의 건축가에게 리노베이션을 의뢰하여 탈바꿈시킨 것인데, 그는 바로 일본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이다.

프랑수아 피노(왼쪽)와 안도 다다오.

학교와 사회가 사람을 키우는 방식

프랑수아 피노는 목재 매매업으로 출발한 사업가에서 미술품 수집가로 변신한 사람이고 안도 다다오는 권투선수를 하다가 건축가로 변신한 사람이다. 둘 다 제대로 된 학교 교육을 받지 않았는데도 세계적인 예술가로서 성공한 사람이라는 점이 공통적이다. 이들의 사례는 즉각적으로 이런 의문을 제기한다. 정식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이나 학교 다닐 때 공부를 못했던 사람들 중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이유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반대로 왜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잘 하던 학생이 반드시 사회에서 우등생이 되지는 않는 것일까?

내 생각에 그 이유는 이런 것이다. 학교에서는 먼저 학습을 하고 다음에 시험을 치는 반면에, 사회에서는 먼저 시험을 치고 다음에 학습을 한다. 다시 말해 학교에서는 교사나 교수가 우선 중요한 내용을 다 가르쳐 준 뒤 그것을 잘 배웠는지를 측정하기 위해 시험을 친다. 반면에 사회에 나오면 중요한 내용을 아무도 안 가르쳐 준다. 일단 먼저 상황에 부딪힌다. 그리고 그 경험으로부터 각자가 배운다. 학교는 사고 과정 (mental process)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인지학습의 장(場)인 반면에, 사회는 직접적인 체험을 통한 경험학습의 장인 것이다. 데이비드 콜브(David Kolb)의 ‘경험 학습 이론’(Experiential Learning Theory)은 각자가 직접 경험을 통해 학습하는 것을 강조한다.

요구하는 능력의 차이

이 같은 학교와 사회에서 학습 방식의 차이는 학교와 사회에서 요구하는 능력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학교에서는 주로 암기력, 이론적 지식, 문제 해결 능력 등이 평가의 중심이다. 따라서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시험을 잘 보는 능력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반면에 사회에서는 다른 능력이 요구된다. 창의력, 감정 지능, 대인 관계 능력, 리더십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러한 능력은 학교 성적과는 무관하거나 반대로 오히려 성적이 낮았던 사람일수록 뛰어난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프랑수아 피노는 사업 운영 과정에서 실질적인 경험을 통해 비즈니스 감각을 발전시켰다. 안도 다다오는 건축가로서 독특한 스타일을 개발하기 위해 실제 현장을 탐험하고 다니며, 실전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쌓아 나갔다.

사회 생활에서는 사람과의 협력, 갈등 해결, 공감 능력, 리더십과 같은 감정 지능(Emotional Intelligence)과 대인 관계 능력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학창 시절 성적이 우수했던 학생들은 종종 개인 학습에 집중하다 보니 이러한 대인 관계 기술이 상대적으로 발달하지 못한 경우가 많이 있다. 반면에, 성적이 그다지 우수하지 않았지만 동아리 활동을 하거나 친구들과 어울려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 사람들은 이러한 기술이 더 발달했을 수 있다.

동기부여 방식의 차이

또한 학교에서의 모범생은 동기부여가 잘 되어 있는 사람이다. 공부를 잘해야 하는 이유를 잘 알고 있었고 여기에 스스로 동의를 하니 공부하는 데 적극적이 된다. 모범생들은 외부 동기(좋은 성적, 칭찬, 장학금 등)로도 동기부여가 잘 되지만 비모범생들의 경우는 이런 것에 별로 휘둘리지(?) 않는다.

이들은 학교와 부모가 요구한다고 따르지 않고 오직 자신의 관심사나 열정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사회에 나와서 자기 분야를 잘 찾게 되면 그 분야에서 열심히 해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되고 이를 기반으로 성공을 이루기 쉽다. 컴퓨터 해커들은 대부분 컴퓨터공학과 출신이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취미로 하던 사람들이다. 컴퓨터공학과 학생들은 의무로 해야 하지만 취미로 하는 학생들은 밥도 안 먹고 하고, 하지 말래도 하는 사람들이다.

문제를 내는 방식의 차이

마지막으로, 학교에서는 교과서가 제시하는 정답을 찾아내도록 요구받지만 사회에서는 스스로가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학교에서 제시되는 문제는 잘 정의된 문제이다. 즉 문제가 무엇인지 이미 노출되어 있다.(만일 문제가 무엇인지 모호하면 정답 시비에 휘말리기 십상이다) 반면에 사회에서는 문제를 제기하는 상황이 있을 뿐이지 문제가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노출되어 있지 않다. 즉 무엇이 문제인지가 분명하지 않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답을 찾아야 하지만 사회에서는 문제를 찾아야 한다. 답을 찾아야 하는 학교 시험에서는 암기력, 이론적 지식, 문제 해결 능력이 좋은 사람이 유리하지만, 문제를 찾아야 하는 사회생활에서는 이런 것들이 아니라 자기 주도성과 창의적 사고, 실패에 대한 회복 탄력성 등이 좋은 사람이 유리하다.

핀란드 헬싱키 시내에 있는 포롤라흐티 종합학교 1학년 교실. 어린 학생들은 핀란드 동화를 읽은 뒤 인근 숲에서 돌을 주워 털실 따위를 붙여 동화 속 주인공을 직접 만든다. 국어, 공예, 생물, 음악을 함께 공부하는 방식이다. 사진= 연합뉴스

'창의적 사고' 키우는 해외 공교육

대부분의 공교육은 표준화된 시험과 규칙을 기반으로 운영되다 보니 지식의 습득에는 도움을 주지만, 창의적 사고나 자기 주도적 학습에는 별로 도움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공교육이 자기 주도성과 창의적 사고, 실패에 대한 회복 탄력성을 결코 길러줄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사실 일부 국가들은 기존의 표준화된 교육 방식을 넘어서서 창의적 사고를 키우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도입하고 있다.

핀란드의 경우 프로젝트 기반 학습(Project-Based Learning)과 현상 기반 학습(Phenomenon-Based Learning)을 도입하고 있는데, '기후 변화'라는 주제가 주어지면, 학생들이 과학, 사회, 경제, 환경 등 다양한 관점에서 이 주제를 탐구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교육 방식은 학생들이 문제를 다각도로 바라보고, 새로운 접근법을 찾도록 장려한다.

싱가포르 교육부가 시행하고 있는 싱가포르 메이커 교육. 학교내 메이커스페이스에서 학생들이 발명 등 다양한 문제를 설정하고 이를 해결하는 시간을 갖는다.

또 싱가포르 교육부는 ‘싱가포르 메이커 교육(Singapore Maker Education)’을 장려하고 있는데, 이는 학생들 자신이 직접 문제를 정의하고 창의적인 해결책을 탐구하게 한다. 그리고 시도와 실패를 통해 학습하는 경험을 쌓도록 발명, 디자인, 프로그래밍 등 다양한 창의적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것을 지원한다.

이제 우리의 공교육도 이런 방식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러나 이렇게 하려면 현행의 입시 위주의 교육에서 전인 교육으로 조금이나마 방향을 틀어야 한다. 시험이나 성적에 대한 학생들의 압박감을 줄여주고, 그렇게 함으로써 교사들이 학생 개개인의 학습 속도와 흥미를 존중하며, 학생들 간에 경쟁이 아니라 협력적 학습이 가능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야 할 것이다. 그랬을 때, 프랑소아 피노와 같이 예술을 사랑하고 작품을 수집하는 사업가가 나오고, 안도 다다오 같은 창의력을 갖춘 세계적 건축가도 나올 것이다. 부러워하지만 말고 이제 행동으로 옮기자!


박만규 아주대 불문과 교수는 언어에 관한 다양한 주제, 특히 상대를 설득하기 위한 언어, 어원과 인간의 사유, 한국어와 영어/프랑스에 나타난 세계관의 차이, 현대 프랑스 문화의 기원에 관한 연구와 강의를 수행하고 있다. 한국사전학회와 한국프랑스어문교육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프랑스정부 학술공로훈장을 수훈했다. 저서로는 ‘설득언어’(베가북스)와 ‘빛나는 당신이 있다면 촛불을 켤 필요가 없다’(씨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