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울수록 커지는 말의 무게“말은 할수록 힘이 떨어진다”

한 여성이 “너무 좋은 대화였다”라며 상대 남성을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그런데 팀장이 알기로는 그 상대 남성은 평소 소통 능력이 그리 뛰어나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궁금증에 녹화 영상을 돌려보았더니 그 남성은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주로 “흠”, “네”, 당연하죠”, “정말요?”, “세상에”처럼 동의를 표하는 추임새가 대부분이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상사와 단둘이 있는 장면, 오랜만에 만난 초등학교 동창, 미팅 직전의 서먹한 분위기…. 이런 난감한 순간은 끝도 없이 많다. 오로지 어색한 침묵을 피하고자 주섬주섬 말을 늘어놓는 상황들. 이런 상황에서 말은 정보 전달의 도구가 아니라 그저 고문 같은 정적을 깨뜨기 위한 소음일 뿐이다.

침묵도 소통의 방식이다. 말과 침묵은 서로를 보완한다. 그래서 말과 침묵의 균형이 중요하다. “잔잔한 물이 깊다”라는 속담과 “빈 수레가 요란하다”라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말이 적으면 속이 깊어 보인다. 깊이 있는 인간의 아우라가 바로 침묵의 결과인 셈이다. 베스트 프렌드는 어떤 사람인가? 멋진 조언을 해주는 친구? 그렇게 대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은 이렇게 대답한다. “내 말을 잘 들어주는 친구요.” 우리는 떠들어대는 사람이 아니라 내 말에 귀를 기울여주는 사람을 원한다.

침묵보다 더 가치 있는 말을 하라

말이 많아질수록 실언하게 되거나 굳이 안 해도 될 말을 하게 되거나 차라리 안 하는 게 나았을 말도 하게 된다. 주위에 상황 파악, 분위기 파악 제대로 못하고 상황에 안 맞는 말, 분위기에 안 맞는 말, 눈살 찌푸려지는 말, 눈치 없이 내뱉는 말을 하는 사람을 보면 어떤가? “가만히 있으면 반이라도 간다”는 속담이 절로 떠오른다.

차라리 말하지 않고 가만히 침묵하고 있는 게 더 나았을 상황을 살다 보면 많이 겪게 된다. 돌아보면 스스로도 “아! 그때 내가 이 말을 왜 했지?” “아! 그런 말은 하지 말걸” 하는 부끄러운 순간이 분명히 있다. 그래서 스스로가 말이 많은 사람이라고 느끼면 평소 자신이 내뱉는 수많은 말 중 굳이 안 했어도 될 말들은 없었는지 찬찬히 돌아보는 게 좋다.남에 대한 오지랖에서 나오는 말, 사소한 것에도 불평불만 하면서 하소연하는 말, 남들 입장에서 들어주기 피곤한 말 등등 이런 말을 줄여야 한다. 말 잘하는 사람, 더 나은 사람,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한다면 우선 안 해도 될 말을 줄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보자.

성경에도 말에 관해서 가르침을 주는 좋은 구절들이 있다.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버려지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마태복음 15:17~18)말은 그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으로 그 사람의 내면을 투영한다. 그래서 말을 잘못 내뱉으면 그것은 그 사람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 나라는 사람을 더럽게 만든다. 말은 수정도 삭제도 안 되고, 인터넷 댓글처럼 익명도 아니며 내 얼굴에 달린 내 입에서 내 목소리로 하게 된다. 이에 관한 성경 구절 하나만 더 소개한다. “입을 지키는 자는 생명을 보존하나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잠언 13:3)

동서고금 ‘자나 깨나 입조심’ 경계

중국 후당(後唐)의 정치가인 풍도(馮道, 881~954)는 자기의 처세관(處世觀)을 아래와 같이 후세인들에게 남겼다.

- 口是禍之門(구시화지문)
: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요.
- 舌是斬身刀(설시참신도)
: 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로다.
- 閉口深藏舌(폐구심장설)
: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면.
- 安身處處宇(안신처처우)
: 가는 곳마다 몸이 편안하리라.

공자(孔子)께서 천하(天下)를 주유(周遊)하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삼사일언(三思一言) 삼사일행(三思一行)!’ 한 마디 말하기 전에 세 번을 생각하고, 한 번 행동하기 전에 세 번을 생각하라! ‘선행후언(先行後言)!’ 먼저 실천하고 그다음에 말하라는 이 짧은 한마디는 공자가 번드르르한 말로 자신의 능력을 뽐내는 제자 자공(子貢)을 꾸짖은 말이다.한번 내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기 힘들다. 무심코 던진 잘못된 말 한마디는 상대방의 가슴에 비수(匕首)가 되어 날카롭게 박히게 마련이다.

《논어(論語)》 〈안연편(顔淵篇)〉에 ‘사불급설(駟不及舌)’이란 말이 나온다. 네 마리 말이 끄는 수레도 혀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말로, 소문은 빨리 퍼지니 말을 삼가라는 뜻이다. 네 마리 말이 끄는 마차도 따라잡지 못한다는 ‘사마난추(駟馬難追)’의 의미와 그 맥락을 같이한다. 원문(原文)은 ‘一言旣出 駟馬難追’(말이 입 밖을 나가면 사두마차(네 마리 말이 끄는 마차)도 따라잡지 못한다.)이다.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 제5장에 ‘多言數窮 不如守中(다언삭궁 불여수중)’이란 말이 나온다. 말이 많을수록 자주 궁색해지니 속을 지키는 것만 못하다는 뜻이다. 자기가 내뱉은 말로 스스로 곤경에 빠지는 일이 없게 말을 신중히 해야 한다는 경계의 뜻을 담고 있다.‘발 없는 말(言)이 천리 간다’, ‘말 많은 집은 장맛도 쓰다’는 속담도 있다. 한 번 내뱉은 말은 절대 붙잡아 주워 담을 수 없으니 ‘자나 깨나 입조심’을 경계하는 말이다.

더 나은 소통을 위해 ‘침묵’을 배우자

경제학과 심리학을 전공한 독일 최고의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코르넬리아 토프(Cornelia Topf)가 최근 《침묵을 배우는 시간》이란 책을 냈다. 핵심은 “말 대신 침묵하라”가 아니라 “말의 양을 조절하여 침묵을 효과적인 설득의 수단으로 사용하자”는 것이다.우리는 말의 홍수에서 살고 있다. “잘 알면 세 마디로 족하다. 잘 모르니 서른 마디가 필요한 법이다.”라는 말이 있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 중에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모르는 경우도 많다. 어째서일까? 결론을 말하자면, 침묵의 힘을 모르기 때문이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하라.”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의 마지막 구절이다.


이규열(본지 발행인 겸 편집인)
[참고도서] 침묵을 배우는 시간 | 코르넬리아 토프 | 서교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