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영 칼럼]尹 겨누는 두 개의 칼, 김 여사와 의대 증원
윤 정부 ‘황태자’ 김 여사 리스크
VIP 오판에 입 닫은 천민 공직윤리
이대로 가면 불행한 대통령 될 것
하지만 원전으로 벌어들인 돈과 끌어올린 지지율을 의대 증원과 김 여사 문제로 다 까먹고 있다. 이번 보건복지위 국감은 ‘의대 국감’이다. 국감 자료에 따르면 올 2월 ‘의대 2000명 증원’ 발표 후 다음 달 초까지 의료 공백 수습에 투입되는 재정이 2조3448억 원이다. 이와는 별개로 의료개혁에 총 30조 원을 쓴다지만 의료 체계가 붕괴 직전인 데다 개혁안 설계가 잘못돼 혈세만 날릴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그 돈의 반의 반만 필수의료 원가 보상에 썼더라면 이 난리를 겪지 않고 의료 질도 좋아졌을 것이다. 대통령 긍정 평가 이유 1위였던 의대 증원은 부정 평가 1위로 바뀌었다.
더불어민주당이 예고한 대로 이번 국감은 ‘김건희 국감’이다. 김 여사 의혹과 관련해 채택된 증인만 69명이고, 김 여사 의혹을 다루는 상임위가 17곳 중 10곳이다. 행정안전위는 대통령 관저 증축 의혹, 법제사법위는 디올백 수수 등 의혹, 정무위는 김대남 낙하산 인사 개입 의혹, 국토교통위는 양평 고속도로 개발 특혜 의혹, 교육위는 석박사 학위 논문 표절 의혹, 문화체육관광위는 KTV 문화행사 황제 관람 의혹을 다룬다. 여당은 “이재명 방탄 국감”이라고 비판하는데 10개 상임위가 다종다양한 김 여사 의혹들로 난타전을 치르고 나면 대통령 지지율만 더 떨어질 것 같다.
의대 증원과 김 여사 문제가 정부의 최대 성과만 까먹고 말까. 지금으로선 윤 정부를 겨누는 두 개의 칼이 돼 치명상을 입힐 가능성이 커 보인다. 정치학자들의 공저 ‘한국의 불행한 대통령들’에는 희망으로 시작했으나 불행하게 끝난 역대 대통령들의 공통적인 패인이 나온다. ‘5년 임시직’으로서 역대 정부를 계승 발전시키겠다는 겸손보다는 ‘대권 잡았으니 새로운 세상 만들겠다’는 오만, 대통령 권한을 제 것인 양 휘두르는 ‘황태자’와 측근들, 대통령의 오판을 바로잡지 않고 편법을 써서라도 실행시켜 자리보전하는 천민 공직 윤리다. 의대 증원과 김 여사 문제에서도 확인되는 요인들이다.
의료 붕괴로 가고 있는 ‘무데뽀’ 의대 증원은 영화 한 편 보고 강행했다는 전임자의 ‘탈원전 자해극’을 닮았다. 대통령이 “2000명은 그냥 나온 숫자가 아니”라고 선언한 후 참모와 장차관들은 국민 건강이야 어찌 되든 ‘숫자 지키기’에 올인하고 있다. 그 결과 의료개혁으로 살리고자 했던 필수 의료와 지방 의료부터 죽어가는 중이다. 당장 내년도 군의관과 공중보건의 공백 사태가 예견되자 “의대 5년제 단축”까지 발표했다가 “대통령 임기나 단축하라”는 비난을 샀다. 수술 대기 줄 더 길어지고, 초과 사망자 집계 나오고, 내년 의대 신입생들까지 교수도 시설도 형편없는 학교에 실망해 집단 휴학에 동참하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까.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대통령 부인은 그냥 가족에 불과”하다며 ‘내조형 영부인’을 시사했다. “제 처는 정치하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주요 정치적 결정을 할 때 부인과 상의) 잘 안 한다. (아내가) 섭섭하게 생각할 때도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김 여사의 행보는 ‘내조형’보다는 ‘황태자’에 가까워 보인다. 공개적으로는 ‘개 사육 농장주 폐업 지원’과 ‘전 국민 마음건강 투자’ 사업을 주도하고 있다. 정부는 총사업비가 각각 3562억 원, 7892억 원인 양대 ‘김 여사 사업’에 예타 면제까지 해주었다. 밀실에선 공천과 인사 개입설에 “용산 십상시 쥐락펴락설”까지 터지고 있다. 역대 대통령 부인들이 알게 모르게 남편 하는 일에 관여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희호 여사는 장상 국무총리 내정 인사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국회에서 제기된 적도 있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하는 것과 녹취록을 통해 온 국민이 다 알도록 하는 것은 법적인 문제를 떠나 정치적 파장이 전혀 다르다.
역대 대통령을 보좌했던 이들은 청와대에 근무할 땐 “청와대는 높고 세상은 넓다”고 했다가 나중엔 “청와대를 나와 보니 세상이 넓은 줄 알겠다”고 했단다. 듣기 좋은 보고만 올리는 참모들에 둘러싸여 ‘모르는 것도 못 할 것도 없다’고 자만하는 것 아닌가. 용산 밖 넓은 세상의 성난 민심을 외면했다가는 또 한 명의 불행한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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