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체' 리뷰: 진화한 좀비와 퇴화한 서사, 야심이 낳은 절반의 성공

제79회 칸영화제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에서 7분간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연상호 감독의 신작 ‘군체’가 마침내 베일을 벗었다. 해외 유력 매체들은 “좀비 장르의 새로운 신체적 문법을 도입한 혁신적 작품(Samuel Jamier)”, “멈출 수 없는 스릴의 향연(Next Best Picture)”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국형 좀비(K-Zombie) 신드롬의 시초였던 ‘부산행’(2016) 이후 딱 10년 만에 다시 칸의 레드카펫을 밟은 연상호 감독. 이번 신작은 과연 ‘연니버스(연상호 유니버스)’의 화려한 정점이 될 것인가, 아니면 반복되는 클리셰의 늪이 될 것인가.
‘부산행’ 감독의 귀환, 그리고 K-좀비의 경이로운 진화

영화 ‘군체’의 오프닝은 군더더기가 없다. 서울 도심의 둥우리 빌딩을 배경으로, 시작과 동시에 거대한 재난의 서막을 열어젖힌다. 이 영화의 가장 독창적이고 위대한 성취는 단연 ‘좀비의 진화와 집단화’라는 설정에 있다.
기존의 좀비들이 본능에 따라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움직이는 시체에 불과했다면, ‘군체’ 속 감염자들은 이른바 ‘집단지성(Colony)’을 발휘한다. 생물학적 작용을 통해 인지 능력을 공유하고 상호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마치 세포가 유기적으로 결합하듯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무용수들의 정교한 안무로 완성된 좀비들의 움직임은 기이함 그 자체다. 감염 직후 네발로 기던 이들이 직립을 하고, 생존자들의 행동과 방어 기제를 ‘학습’하고 ‘모방’하며 인간의 모습을 기괴하게 변형해 나가는 과정은 압도적인 서스펜스를 선사한다.
또한 한정된 빌딩이라는 공간에서 세포처럼 증식하고 조종당하는 좀비 떼의 물량 공세와 압도적인 액션 시퀀스는 연상호 감독이 왜 장르 마스터인지를 다시금 증명한다.
고질적인 인간 윤리 실험, 그리고 피로감을 부르는 ‘고구마’ 캐릭터

그러나 화려한 외피를 한 꺼풀 벗겨내면, 연상호 감독의 지독하고 고질적인 ‘고집’이 이번에도 고스란히 고개를 든다. ‘부산행’, ‘반도’, ‘지옥’ 등에서 감독이 그토록 천착해 온 ‘극한 상황 속 인간 윤리 실험’과 ‘인간의 악한 이중성’에 대한 강조가 이번에도 변함없이 반복된다.
재난 그 자체보다 무서운 것은 이기적인 인간이라는 테마는 이제 신선함을 잃은 지 오래다. 극의 긴장감을 불어넣기 위해 배치된, 대책 없이 이기적이거나 서사를 방해하는 ‘고구마 캐릭터’들의 반복적인 등장은 장르적 쾌감을 뚝뚝 끊어놓는다.

좀비들은 정보를 공유하며 비약적으로 ‘진화’하는데, 빌딩 내부의 인간들은 과거 연상호 시나리오의 한계 속에 갇혀 도리어 ‘퇴화’하는 모순을 보인다.
이로 인해 2시간 남짓한 러닝타임 중 후반부 서사는 익숙한 클리셰의 난립으로 변질되며, 관객에게 짜릿한 스릴 대신 지독한 피로감과 짜증을 유발한다. 이 명확한 한계야말로 영화가 공개된 후 극과 극의 호불호를 불러올 가장 결정적인 도화선이다.
중2병과 독창성 사이, 빌런 ‘서영철’과 구교환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감염 사태를 촉발한 빌런, 생물학 박사 서영철을 연기한 구교환에 대한 평가는 이 영화에서 가장 뜨거운 논쟁거리가 될 전망이다.
서영철은 100여 명의 좀비와 신체적·행위적으로 연결되어 마치 사이비 종교 교주처럼 좀비들을 일사불란하게 지배하는 전무후무한 캐릭터다. 문제는 캐릭터의 설정과 대사 톤이다. 거대한 악을 대변하기보다는 마치 ‘중2병’에 걸린 듯한 과장된 행동과 철학적 독백은 보는 이에 따라 실소를 자아내거나 극의 몰입을 깨뜨리는 논란의 소지가 다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교환은 특유의 유니크한 마스크와 예측 불가능한 연기 톤으로 이 위태로운 캐릭터에 강력한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감독의 디렉팅 아래 온몸의 미세한 떨림과 눈빛만으로 좀비 군단을 조종하는 그의 페이스 액션은 기괴하면서도 매혹적이다. 호불호 갈리는 캐릭터 설정에도 불구하고, 그가 보여준 광기 어린 빌런 연기는 K-좀비 영화계에 한 획을 그었다는 사실만큼은 부인하기 어렵다.

차라리 ‘군체’는 좀비의 진화와 조종이라는 영화만의 독창적인 하이콘셉트(High-Concept) 자체에만 포커스를 맞추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진화하는 좀비 집단과 이를 과학적으로 깨뜨리려는 생명공학 교수 권세정(전지현 분) 및 생존자 연합군의 사투, 즉 ‘과학과 진화의 맞대결’이라는 장르적 본질에만 집중했다면 훨씬 더 명징하고 짜릿한 오락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연상호 감독은 이번에도 인간 본성에 대한 철학적 질문과 사회 비판이라는 너무 많은 야심을 한 그릇에 담으려다 서사를 산만하게 정체시키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군체’는 빼어난 장르적 혁신과 진부한 서사의 관습이 격렬하게 충돌하는 ‘산만한 문제작’이다. 하지만 좀비물의 패러다임을 한 단계 진일보시킨 시각적, 설정적 성취만큼은 분명하기에, 한편으로는 한국 크리처물 역사에서 꽤나 의미 있는 수작으로 기록될 것이다.
'군체'는 5월 21일 오늘 개봉한다.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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