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페이크 성범죄 방지법' 국회 통과...앞으로 달라지는 것들은?
딥페이크를 이용한 성범죄를 막고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이른바 '딥페이크 성범죄 방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지난 26일 국회 본회의에서는 딥페이크 범죄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강화하고, 단순 시청 행위도 범죄에 포함하며, 피해자 회복 조치를 강화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개정안 세 건이 모두 통과됐다.
이날 통과된 딥페이크 관련 법안은 성폭력범죄처벌특례법(성폭력처벌법),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청소년보호법),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성폭력방지법) 등 총 3개 법 개정안이다.
지난 8월 딥페이크를 이용한 성착취물 범죄가 광범위하게 퍼져있고, 특히 가해자와 피의자 상당수가 10대인 것으로 드러나 큰 충격을 준 가운데, 이번에 개정된 법이 딥페이크 이용 성범죄를 근절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딥페이크 성범죄물 시청만 해도 처벌
이날 통과된 법들은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딥페이크 성착취물의 수사와 처벌을 강화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우선 딥페이크 성범죄물을 시청한 행위도 처벌 대상이 됐다. 개정된 성폭력처벌법은 불법합성 성범죄물을 소지·구입·저장 또는 시청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딥페이크 합성물 제작자를 처벌할 때 '반포할 목적'을 입증해야 할 필요성도 사라졌다. 기존 법에서 허위 영상물을 "반포할 목적"으로 편집·합성 또는 가공한 자를 처벌한다는 조항에서 "반포할 목적"이라는 단서 조항이 빠져, 당사자의 의사에 반해 불법 합성물을 제작할 경우 목적과 관계 없이 처벌할 수 있게 됐다.
청소년보호법에서는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이용한 협박과 강요에 대한 처벌 수위가 높아졌다. 기존 법에서는 협박은 1년 이하, 강요는 3년 이하의 징역이던 수위가 협박은 3년 이하, 강요는 5년 이하로 상향됐다.
또 비공개 수사 항목을 신설해 긴급을 요할 때는 경찰이 상급 경찰관서의 승인 없이 비공개 수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딥페이크 성범죄물 등에 대한 국가의 책임도 강화됐다. 성폭력방지법에서는 제3조 국가 등의 책무에 '불법촬영물 등의 삭제지원 및 피해자에 대한 일상 회복 지원' 항목이 신설돼, 삭제와 일상회복 지원이 국가의 책무임을 명시했다.
또 불법촬영물 등의 삭제지원을 요청할 수 있는 대상을 기존 '국가'에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로 바꿔 지방자치단체도 적극적으로 삭제지원에 나서도록 했다. 삭제지원 대상에는 촬영물은 물론 신상정보도 포함할 수 있도록 했고, 가해자에 대한 구상권 행사에 필요한 개인정보를 관계 행정기관 장에게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또한 현재 서울, 경기, 인천, 부산에만 있는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가 전국으로 확대될 수 있도록 설치 및 위탁 등 운영 근거를 명시했다.
일부 '아쉽다'는 평가도
이번 법안에 대해서는 지금이라도 통과돼 다행이라는 반응과 아쉽다는 반응이 동시에 나오고 있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인 국민의힘 이인선 의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국민들이 안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강력한 법적 지원이 필요하기에 이번 법률 제정이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딥페이크 이용 성범죄와 지난 2019년 이른바 ’N번방 사건’의 존재를 알린 추적단불꽃의 원은지 활동가는 BBC에 이번 개정안에 대해 일부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도 특정 법안이 통과되지 못한 데 대해서는 아쉬움을 전했다.
원씨는 성폭력처벌법에서 ‘반포할 목적으로’라는 문구가 삭제된 데 대해 “유포 목적이 입증되지 않더라도 딥페이크를 이용한 성범죄물을 이용한 경우 처벌할 수 있도록 한 부분은 굉장히 좋게 본다”고 밝혔다.
서울대 딥페이크 사건의 재판 과정에서도 “유포하려고 제작했는지 여부가 다뤄졌었다”는 원씨는 “유포 목적이 유죄 여부와 판결 형량에 영향을 미쳤는데, 이제 그런 것들이 바뀌었다”며, “이런 부분은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원씨는 경찰이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에게 직접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의 삭제와 차단을 요청하도록 한 법안이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한 데 대해선 아쉬움을 표했다.
현재 경찰이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에게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의 삭제를 요청하려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삭제조치에 나설 것을 요청해야 한다. 이 때문에 신속 대응을 위해 경찰이 직접 삭제와 차단을 요청할 수 있어야 한다는 문제제기가 지속적으로 있었다.
지난 9일 조국혁신당 박은정 의원 등은 이같은 내용을 담은 성폭력처벌법 개정안인 이른바 '응급조치법'을 발의했지만, 이 안은 이번에 법사위에서 논의되지 않았다.
“피해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게 유포잖아요. 그래서 경찰이나 방심위에서 권한을 나눠서 적극적으로 처리하라는 응급조치 법안이 통과되지 않아서 좀 아쉽습니다.”
지난 25일 71개 여성 단체가 모인 ‘딥페이크 성범죄 아웃 공동행동’은 이 '응급조치법' 불발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한편 성폭력처벌법 개정 과정에서는 '알면서'라는 조항이 법률안 심사 과정에서 추가돼 논란이 된 후 최종적으로는 삭제된 안이 통과됐다. 문제가 된 대목은 14조 4항의 불법합성 성범죄물인줄 '알면서' 이를 소지·구입·저장 또는 시청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한다는 부분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5일 법사위 회의에서 '알면서'라는 단서 조항이 없으면 "딥페이크 영상을 누군가가 보냈는데 나도 모르게 소지하고 있고, '이게 뭐지' 하고 시청했다가 처벌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며 "알면서라는 것을 명확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여야 의원들의 동의로 이 문구가 추가된 법률안이 본회의에 상정됐다.
이후 이 문구에 대해 '가해자들이 모르고 시청했다'는 식으로 처벌을 피해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고, 본회의 전 더불어민주당은 이 문구를 뺀 수정안을 다시 제출했다. 최종적으로는 이 '알면서'가 빠진 안이 통과됐다.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한규 의원은 수정안 제안 설명에서 "현재 법안에 따르면 딥페이크 영상물을 소지·구입·저장·시청한 자가 몰랐다고 주장할 경우 수사기관이 행위자가 알았음을 입증해야지만 처벌할 수 있다"며 "부당하게 처벌을 피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어 우려가 큰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앞으로 남은 과제는?
딥페이크 성범죄 문제가 공론화된 지 한 달 여만에 관련법이 통과된 만큼, 이번 딥페이크 방지법과 관련해선 후속 논의와 입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주를 잇는다.
전날인 25일 열린 국회 법사위 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위원장은 “딥페이크 관련해 법안이 수십 건이 쏟아져나왔고 물리적으로 심사할 시간이 부족했지만 시급성을 요하기 때문에 빠르게 심사했다”고 밝혔다.
이어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다섯 가지 정도의 법을 담지 못 했다”며 추후 입법 논의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김한규 의원도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26일 더불어민주당 정책조정회의 모두 발언에서 밝혔다.
김 의원은 “성인 대상 디지털성범죄도 비공개, 위장 수사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많고, 경찰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직접 영상물 삭제 요청과 접속 차단 조치를 하는 방안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밝히며 추가 입법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지난 2017년부터 디지털 성폭력 대응 활동을 해오고 있는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이효린 사무국장은 여전히 법이 담지 못한 사각지대를 지적했다.
이 사무국장은 "현재 법은 행위를 저지른 사람을 처벌"한다며 "의뢰자는 행위자가 아니게 되는지, 정범이 되는 것인지, 방조범인지, 교사범인지 명확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촬영, 유포, 협박, 합성 이런 식으로 행위들이 나열되는 방식"의 법제화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그는 "새로운 형태의 폭력이 등장할 때마다 이 안에 들어가는지 여부가 중요해진다"며, "행위를 나열하는 게 아니라 폭력이 발생할 수 있는 과정을 포괄해 법제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