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기 시절 하루에 3억 원씩 벌었는데 한 푼도 못 모았다는 연예인
1999년 KBS '개그콘서트-사바나의 아침'에서 추장 역할을 맡아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한 코미디언 심현섭.
해당 캐릭터를 통해 6년여의 무명 생활을 끝낼 수 있었던 그는 이후 '봉숭아 학당'에서 2대 맹구를 연기하며 전성기를 맞이했으며, 하루에 많게는 17개의 스케줄을 소화할 정도로 바쁘게 지냈다고 한다.
라디오 광고를 비롯해 각종 행사와 체육대회, 결혼식 등의 MC와 나이트클럽까지 쉬지 않고 활약한 덕분에 3억 2천만 원에 달하는 수익을 냈다는 그. 참고로 당시 압구정 현대아파트의 매매가 1억 8천만 원이었다고.
하루 스케줄만 소화해도 강남에 있는 아파트 한 채를 사고도 충분히 남을 어마어마한 돈을 벌었던 심현섭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열심히 일을 했던 이유는 다름 아니라 어머니의 빚 때문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11대 국회의원이자 민주정의당 총재 비서실장이던 심상우로, 안깝게도 1983년 10월 9일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로 사망했다. 아버지의 사망 이후 그의 집안형편은 급속도로 나빠지기 시작한다.
졸지에 집안의 가장이 된 어머니는 심현섭을 비롯한 5남매를 먹여 살리려고 노력하다가 1991년 사기를 당하게 되는데 그 빚이 15억 8천만 원이었다고 한다. 지금 기준으로 환산하면 150억 원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액수다.
아버지 명성도 있는데 왜 그런 걸 하느냐?!
심현섭은 빨리 돈을 갚기 위해서는 연예인이 되는 것이 방법이라고 생각해 형제들의 반대에도 코미디언이라는 직업을 선택했는데, 6년이 지나도 무명 생활을 벗어나지 못하자 도망칠까 생각까지 하게 된다.
그러던 중 '개그콘서트'의 창단 멤버로 합류하며 큰 인기를 끌게 되었고 덕분에 7년 만에 그 어마어마한 빚을 모두 갚아낼 수 있었는데, 예상보다 시간은 좀 걸렸지만 그의 생각처럼 연예인이 된 덕분에 빚을 모두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이제는 힘든 생활은 뒤로 하고 행복한 일만 가득할 줄 알았던 심현섭. 안타깝게도 침체기를 겪으며 방송에서 모습을 자주 볼 수 없는 연예인이 되고 말았는데 2000년대 중반부터는 어머니의 병간호를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너무 싫었다는 그는 한 번 해보자는 마음먹고, 어머니가 별세하던 2019년까지 무려 12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곁을 지킨다. 그러다 보니 결혼 시기를 놓치고 만 그. 어느덧 50대 중반이 되었다.
그러던 중 그는 지난해 말부터 집안의 먼 친척이기도 한 배우 심혜진의 도움으로 결혼 준비를 하는 모습을 TV조선 ‘조선의 사랑꾼’을 통해 공개해 왔으며, 이후 소개팅으로 만난 11세 연하 미모의 여자친구와도 동반출연한다.
지난 7월 심현섭은 부모님의 산소가 있는 국립현충원에서 여자친구인 정영림 씨에게 프러포즈를 선사, 승낙받으며 보는 이들에게 감동을 선사한다. 그리고 9월에는 여자친구와 함께 고모 심혜진을 만나려다 무산된다.
'조선의 사랑꾼'은 지난 9월 말을 마지막으로 재충전을 위한 휴식기를 갖고 있는 중인데, 많은 시청자들이 심현섭이 노총각 딱지를 언제 뗄 것인지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아버지 유산 미리 받아서 데뷔한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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