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영국 '첼시 플러워 쇼(Chelsea Flower Show)'에서 만난 정원들

2024 chelsea FLower show

다양한 주제의 정원 디자인과 지구를 생각한 아이디어가 넘치는 정원 박람회. 2024년 영국 첼시 플라워 쇼에서는 어떤 정원이 주목 받았을까.

빗물을 활용한 생태계적 정원과
재활 치료를 돕는 정원 아이디어들

첼시 플라워쇼는 매년 5월 마지막 주 런던 템즈 강변 첼시 지역의 왕립병원 정원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정원 및 원예쇼로 1913년에 시작되어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작년의 핵심 주제였던 소재의 재활용, 환경을 배려한 작업, 지속 가능함 등의 주제는 올해도 여전히 쇼의 근간을 이루었고, 새롭게 주목할 만한 것은 이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에 대해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가장 두드러진 방식은 빗물을 활용하는 수공간 및 설치물 아이디어였다. 정원의 역할이 단순한 휴식에서 확장되어 치료나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의 적극적인 힐링과 재활 장소로 제시되고 있었다. 정원 식재의 특성에서 보면 자작나무 등을 활용한 숲 정원이나 다양한 초화류를 활용한 와일드한 식재를 구현한 것이 눈에 띄었다. 이번 호에서는 쇼 가든 중심으로 올해 가장 주목받은 5개의 정원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다음 호에서는 이슈가 되었던 식물과 주택 정원에 적용할 만한 콘셉트를 알아본다.


THE OCTAVIA HILL GARDEN

designer : Ann-Marie Powell 앤 마리 포웰

BBC와 연계된 소비자들의 투표로 정해지는 올해 최고 인기상(People’s Choice Best Show Garden)은 앤 마리 포웰(Ann-Marie Powell)의 옥타비아 힐(Octavia Hill) 정원이 뽑혔다. 사회재건 활동가인 옥타비아 힐(1838-1912)의 사상에 기반을 두고, 버려진 도시 내 유휴지에 녹색 공간을 만들어 주민들로 하여금 정신적, 신체적 휴식을 즐기고 서로 교류할 수 있도록 계획된 공간이다. 어린이들이 뽑은 최고의 정원으로도 선정되었다. 다양한 숙근초를 야생적인 감각으로 배치하고, 큰 나무와 손으로 깎은 통나무 의자를 배치하여 사람들이 자연과 교감하며 편히 쉴 수 있게 배치되었다.

Plant list : 다릅나무 Maackia amurensis, 아이리스 Iris ‘Holden Clough’, 알리움 Allium ‘Forelock’
정원 사이에 작은 연못을 만들어 수중 식물을 심고 곤충들을 위한 안식처를 조성했다.
구조물을 세울 때 콘크리트를 사용하지 않고 기초를 좀 더 깊게 설치하는 등 환경적 배려를 시도했다.

FOREST BATHING GARDEN

designer : Ula Maria 울라 마리아
정원 내에 재생 타일이나 블록을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으며, 작은 수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쇼 가든 중 최고상을 받은 정원. 산림욕에서 영감을 얻었다. 근위축증 환자와 가족들의 정신적 휴식과 육체적 회복을 목적으로 조성되었다. 이미 많은 통계를 통해 산림욕이 혈압을 낮추고 면역체계를 향상시키며, 긴장과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50여 그루의 자작나무가 정원을 둘러싸고 잔잔한 그림자를 만들며, 그속을 거닐면 마치 산림욕을 하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정원 디테일을 살펴보면 나무 그늘이 교차하는 곳에 시베리안 멜리카 그라스를 심어 연결성을 주고, 정원 중앙에는 자연스러운 경계로 실개천을 만들어 흘러가는 물이 모이도록 했다. 이 정원 또한 다른 정원들과 마찬가지로 행사가 끝난 후 병원 및 연구소에 다시 설치된다.

Plant list : 시베리안 멜리카 그라스 Melica altissima ‘Alba’, 숙근 제라늄 Geranium sylvaticum ‘Mayflower’, 야생 딸기 Fragaria vesca
언뜻 보기에 세포 구조처럼 보이는 벽면이 정원의 주제인 근위축증 환자의 회복과 연결된다.
아이리스, 그라스, 숙근 제라늄 등 화려하지 않은 식물을 선택하여 휴식이 가능하도록 조용한 숲의 하부를 완성했다.
다간 혹은 외목대 자작나무들이 전체를 아우르고 있다. 나무로 생기는 그늘 및 양지에 초화류와 그라스를 심어 정원이지만 깊은 숲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했다.

‘IMAGINE THE WORLD TO BE DIFF ERENT’

designer : Robert Myers 로버트 마이어
전형적인 디자인의 오래된 건물에도 녹색 공간과 수공간을 마련하여 도심 속 휴식처를 만들 수 있다는 예를 보여준다. 높은 벽과 프레임을 통해 바라보는 정원 풍경도 재미있다.

세인트 제임스 성당의 정원을 구현한 쇼 가든. 도시의 전형적인 공간인 ‘포켓 정원’을 콘셉트로 도시 공간을 재구성하고자 하는 노력을 보여 준다. 높은 건물과 구조물을 배경으로 텍스처가 있는 잎과 형태감 있는 식물을 사용해 공간에 변화를 주고 활기를 불어넣어 준다. 지금까지의 전형적이었던 도심 공간이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변화했음을 느낄 수 있다. 녹색이 가진 힘을 도시 중심에서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은행나무나 목련 등은 도시에서도 견디는 힘을 가지는 나무이며, 정원 내부의 둥근 집은 앉아서 대화나 상담을 할 수 있게 마련되었다. 작은 수공간도 휴식을 줄 수 있는 요소가 된다.

Plant list : 은행나무 Kinkgo biloba, 별자스민 Trachelospermum jasminoides, 나무 고사리 Dicksonia antarctica, 센트란투스 Centranthus ruber
통나무집 주위에는 깊이감이 있는 식재 디자인을 연출했다.
예술가 이반 모리슨(Ivan Morison)에 의해 디자인된 둥근 모양의 통나무 집은 카운슬링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된다.

THE WATERAID GARDEN

designer : Tom Massey 톰 메시, Je Ahn 제이 안(건축가)
빗물을 모아서 정화 및 보관하고, 일부는 정원으로 흘려보내는 깔대기 모양의 대형 철 구조물. 수공간 위로는 스틸 그레이팅으로 제작한 통행로가 놓여져 있다.

물과 위생에 중점을 둔 국제 비정부 기구인 ‘WaterAid’의 후원으로 조성된 정원. 기후변화와 물 부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정원에서 빗물을 좀 더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을 제시
한다. 멋스럽고 효과적인 구조물을 설치하여 빗물을 저장하고, 이를 정화해 정원 관수에 사용하게 된다. 식물도 매우 습한 곳 혹은 매우 건조한 곳에서도 살 수 있는 것을 골라 다양한 조건에서 견딜 수 있게 했다. 물속에 초대형 오리나무를 심어 배경을 만들고 적절한 그늘을 만드는 동시에 빗물을 모으고 정화하는 역할을 한다. 빗물의 일부를 천천히 정원으로 흐르게 하는 철 구조물이 중심을 이룬다. 지상부에 스틸 그레이팅 통행로를 설치하여 그 아래로 물이 흐르고 식물도 자라게 한다. 이 시스템은 개인 정원에서도 설치할 수 있게 계획되었다고 한다.

Plant list : 오리나무 Alnus glutinosa ‘Pyramidalis’, 워터 바이올렛 Hottonia palustris, 붉은 유카 Hesperaloe parviflora
구조물로 생긴 그늘에는 그늘 식물, 벽면으로는 건조에 강한 식물, 수공간 주변으로는 습지 식물들이 다양하게 공존한다.

THE NATIONAL GARDEN SCHEME

designer : Tom Stuart-Smith 톰 스튜어트 스미스
성장이 빠른 서양개암나무는 코피싱으로 다간을 만든다. 통나무집과도 잘 어울린다.

지난 2023년에 정원가로서 대영제국 훈장을 받은 영국 정원계의 대부, 톰 스튜어트 스미스는 영국 전역을 아우르는 National Garden Scheme을 위한 정원을 조성했다. 이는 1927년에 만들어진 비영리 단체로 사람들에게 개인 정원을 오픈하고 차를 제공하는 조직이다. 3,500여개 정원이 소속되어 있으며 영국 정원 발전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숲 가장자리 정원을 테마로 하고 있으며 *코피싱(Coppicing)한 거대한 서양개암나무 아래 건조에 잘 견디는 숲 식물들이 심어져 있다. 통나무 집은 영국산 참나무를 재활용한 판재를 사용하였으며, 탄소 흡수원의 역할을 한다. 바닥은 허트포트셔 지역의 진흙으로 만들거나 요크 스톤을 재활용한 것으로 시멘트는 전혀 사용되고 있지 않다. 식물은 물이 고여 축축한 곳에서부터 건조한 지역에 이르는 곳까지 모든 환경에 잘 적응하는 것들을 선택했다. 빗물은 통나무집을 통해 모여 표면 배수 방식으로 화단까지 흘러간다. 이 정원도 행사 후에 새로 생기는 매기 암센터에 옮겨질 예정이다.

*코피싱(Coppicing) : 나무를 그루터기까지 잘라 삼림을 관리하는 전통적인 방법. 그루터기나 뿌리에서 새싹이 자라 궁극적으로 나무가 다시 자라나게 한다.

Plant list : 서양개암나무 Corylus avellana, 카렉스 Carex oshimensis, 아스트란시아 Astrantia major ‘Star of Billion’, 아이리스 Iris ‘Silver Edge’
흰색의 디기탈리스와 아이보리 컬러의 진달래가 서양개암나무로 이어지는 입구.

취재_ 정원 디자이너 김원희 : 가든웍스 대표
사계절 아름다운 자연주의 정원을 지향하며 개인 정원뿐만 아니라 공공정원, 상업공간 등 전국적으로 다양한 정원·식물 작업을 한다. 개인과 단체를 대상으로 정원 수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2018년 일본 세계가드닝월드컵에서 ‘최우수디자인상’(최재혁 작가와 협업)을 수상했다.
사진_ 정원 디자이너 김민 : 잎새달 대표
모든 이들이 햇빛, 별빛, 달빛을 품는 저마다의 정원을 가지기를 희망한다. 현재 ‘가든디자인 잎새달’을 운영하고 있으며, 주로 개인 정원 작업을 중심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구성_ 조재희
ⓒ월간 전원속의 내집 2024년 7월호 / Vol.305 www.uuj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