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주요 유통업계가 인공지능(AI) 기술을 앞세워 '대화형 커머스'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고 있다. 기존 단순 키워드 검색을 넘어 대화 맥락을 이해해 상품 검색부터 결제까지 한 번에 이어지는 혁신을 꾀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유통사들은 자체 AI 개발 대신 글로벌 빅테크와 손을 잡는 추세다. 이는 정체된 온라인과 오프라인 유통 시장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한 승부수로 풀이된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신세계그룹은 국내 유통사 최초로 ChatGPT 개발사인 오픈AI(OpenAI)와 전략적 제휴를 맺었다. 2027년까지 상품 검색부터 장바구니 담기, 결제, 배송까지 한 번에 처리하는 '완결형 AI 커머스' 모델을 구축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예컨대 "내일 가족 식사 준비해줘"라고 입력하면 필요한 식재료를 자동으로 추천하고 구매까지 이어지는 방식이다.
신세계그룹이 AI 커머스 전환을 적극적으로 시도하는 이유는 다가올 미래 유통의 새로운 표준을 선점하기 위해서다. 'AI 퍼스트'라는 패러다임 변화 속에서 기존 온·오프라인 유통의 이분법적 한계를 넘어설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초개인화된 맞춤형 쇼핑 경험을 앞세워 갈수록 치열해지는 국내 커머스 시장에서 주도권을 유지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됐다.
신세계그룹 AI 전환의 핵심 목표는 조직의 체질 혁신과 고객 편의성 제고다. 우선 연내 이마트 앱에 'AI 쇼핑 에이전트'를 탑재해 매장 방문부터 구매까지 돕는 퍼스널 쇼퍼에 가까운 경험을 구현할 계획이다. 나아가 전사적인 AX 협력 체계를 가동해 업무 생산성을 높이고 신규 비즈니스 기회까지 발굴하겠다는 구상이다.
유통사들이 AI를 직접 만들지 않고 빅테크와 협력하는 이유는 독자 개발의 높은 난이도와 현실적 한계 때문이다. 대규모 언어모델을 자체 개발하려면 막대한 투자와 데이터, 인력이 필요해 전통 유통기업이 감당하기 쉽지 않다. 그만큼 검증된 플랫폼과 협업해 고객 경험에 집중하는 편이 더 현실적인 선택으로 평가된다.

롯데쇼핑의 롯데온 역시 '패션 AI'를 선보이며 대화형 맞춤 쇼핑 제안에 나섰다. 고객이 "출근용 블라우스"처럼 구체적 상황을 입력하면 감성적 표현까지 파악해 직관적으로 상품을 추천한다. 이를 통해 기존 검색의 한계를 넘어 주력 버티컬 부문인 패션 경쟁력을 한층 강화할 방침이다.
무신사 또한 카카오와 손잡고 카카오톡 내에서 대화형 패션 커머스의 대중화를 시도하고 있다. 무신사는 'ChatGPT for Kakao'의 핵심 파트너사로 참여해 사용자가 대화창 안에서 TPO나 날씨에 맞는 정교한 코디 추천을 받도록 했다. 앱을 옮겨 다니지 않고도 셔츠 탐색부터 실제 구매 고객의 리뷰 확인까지 패션 전문가와 대화하듯 쇼핑을 즐길 수 있도록 설계됐다.
현대백화점의 프리미엄 전문몰 '더현대 하이(Hi)'는 카카오톡 내 '카카오툴즈'에 파트너사로 합류해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대화창에 "어버이날 선물 추천해줘"라고 질문하면 AI가 최적의 상품을 제안하고 자사 앱으로 연결해 구매까지 이어지게 하는 방식이다. 일상적인 메신저 앱을 활용해 프리미엄 이커머스의 신규 고객 유입을 늘리겠다는 구상이다.
임영록 신세계그룹 사장은 “AI 커머스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유통의 이분법을 넘어 미래 유통시장의 뉴노멀을 새롭게 정의하게 될 것”이라고 짚었다. 무신사 관계자도 “고객이 패션을 발견하는 모든 과정에서 가장 스마트한 인터페이스를 제공하는 데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석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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