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국의 베팬알백] ㊿LG ‘천보성호’의 돌풍과 1997년 삼성과 악연

『4일 삼성과 정경배가 빅뱅을 일으키며 대구구장에선 홈런포 10개가 쉴 새 없이 작렬, 무려 14개의 기록이 쏟아졌다. 삼성은 홈에서 재계 라이벌이자 선두인 LG를 맞아 정경배의 프로통산 1호 연타석 만루홈런 등 9발의 홈런을 쏟아부어 27-5로 대승을 거뒀다.』
1997년을 돌아볼 때 어린이날 시리즈의 참패를 잊을 수 없다.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5월초, LG는 대구 원정에서 현기증 나는 스코어 차이로 연이어 대패를 당하면서 큰 충격을 받는다.
그해 삼성과 악연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부정 배트’ 소동과 코칭스태프간 벤치클리어링이 이어지고, LG 천보성 감독과 삼성 백인천 감독은 친정팀을 향해 날선 신경전을 벌였다. 두 팀은 결국 한국시리즈 진출권을 놓고 플레이오프에서 맞붙게 된다.
[엘팬알백-LG 트윈스 팬이라면 알아야 할 100가지 이야기] 50번째 이야기는 1997년 삼성과 얽히고 설킨 앙숙관계와 많은 스토리를 내포한 가을야구 진출 이야기다.

◆초보 사령탑 ‘천보성호’의 4월 선두 돌풍
[엘팬알백] 49화에서 설명했듯이 LG는 4월부터 반란을 일으켰다.
새롭게 지휘봉을 잡은 초보 사령탑 천보성 감독은 개막 2연패의 충격을 당했지만, 선발 마운드를 김용수를 빼고 모두 신예들로 교체하는 모험수를 감행해 대성공을 거뒀다.
1년 늦게 지각입단한 신인 최대어 투수 임선동과 2년생 손혁, 신인 사이드암 전승남 등으로 선발 로테이션을 정비했다.
여기에 야수 쪽에서도 슈퍼루키 이병규와 3년생 중고신인 신국환의 깜짝 등장으로 팀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LG는 4월 20일 사직 롯데전 승리로 공동 1위, 23일 인천 현대전 승리로 단독 1위로 도약했다. 4월 18일 사직 롯데전부터 연승 행진을 펼치기 시작해 박철순의 은퇴식이 열린 4월 29일 잠실 OB전까지 10연승을 질주했다.
10연승은 MBC 청룡 시절부터 현재까지 LG 구단 역사상 최다 연승 기록으로 남아 있다. 2000년 이광은 감독 시절 타이기록까지 갔지만 이를 넘어서지는 못했다(LG는 2026년 8연승을 내달려 신기록에 대한 기대감을 부풀렸으나 4월 15일 잠실 롯데전에서 패했다).
LG는 4월 30일 OB전에서 0-2로 패해 연승 행진이 멈췄지만, 4월을 12승4패(승률 0.750)로 마무리하며 1위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투타에서 신예 전력들이 대거 출현한 가운데 4월 한 달 동안 5개의 홈런포를 몰아 친 포수 김동수와 1구원승 6세이브를 올리며 특급 소방수로 진화한 이상훈 등이 시즌 초반 돌풍의 중심을 잡아줬다.
LG는 5월에도 첫날(1일) 잠실 OB전을 4-3으로 이겨 산뜻한 출발을 했다.


◆정경배 연타석 만루포…대구 어린이날 시리즈, LG 49실점 참사
LG는 5월 3일(토)부터 5일(월)까지 어린이날 시리즈를 치르기 위해 의기양양하게 대구에 입성했다. 양 팀의 시즌 첫 맞대결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양 팀 사령탑의 대조적인 유니폼이었다. LG 천보성 감독은 대구 태생으로 KBO 원년부터 삼성 프랜차이즈 스타로 활약했던 인물이었다. 1997년 LG 감독이 된 뒤로 고향 대구를 처음 찾았다.
삼성 백인천 감독은 서울 출신으로 원년 MBC 청룡 감독 겸 선수로 활약한 뒤 1990년 LG 트윈스 감독을 맡아 최초의 우승을 이끈 주인공. 1996년 삼성 사령탑에 올라 2년째에 접어들었다.
당시 선두를 질주하던 LG와 달리 삼성은 6승1무10패로 8개 구단 중 현대와 공동 6위로 처져 있을 정도로 부진했던 상황. LG의 우세가 점쳐지는 분위기였다.

막상 뚜껑을 열자 경기는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전개됐다.
LG는 3일 3-9로 크게 지고 말았다. 삼성 류중일이 연타석 홈런을 포함해 5타수 4안타 5타점의 불방망이를 휘둘렀다.
첫날 경기는 예고편에 불과했다. LG는 5월 4일 삼성에 홈런 9개를 헌납하며 5-27이라는 치욕적인 스코어로 참사를 당했다. 27점은 당시 KBO 한 경기 최다득점 신기록이었다(이 기록은 27년 후인 2024년 7월 31일 광주에서 두산이 KIA에 30-6으로 이겨 역대 2위로 물러났다).
최다득점뿐만이 아니었다. 무려 14개의 신기록과 타이기록이 쏟아졌다.
그중 가장 화제를 모은 것은 정경배의 KBO 최초 연타석 만루홈런이었다. 1회말 2사 만루에서 신인투수 장문석을 상대로 우중월 만루홈런을 때린 뒤 2회말 1사 만루에서 바뀐 투수 차동철을 상대로 중월 그랜드슬램을 터뜨렸다(1경기 2개의 만루홈런도 지금까지 유일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
한 경기에 9발의 홈런을 허용한 LG는 심재학이 유일하게 홈런을 날려 체면치레를 했을 뿐이었다.
LG 선발투수로 나선 루키 장문석은 1.1이닝 10실점의 난조를 보였고, 2번째 투수 차동철은 3.1이닝 12실점을 하고 말았다. 이어 나온 김기범(1.1이닝 1실점)과 신영균(2이닝 4실점)도 삼성 타선의 불길을 잡지 못했다.

"정경배는 당시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않던 타자였는데 1회와 2회에 연타석 만루홈런을 쳐서 저도 당황스러워했던 기억이 납니다. 다른 삼성 타자들도 쳤다 하면 안타와 홈런이 나오는데…..세월이 많이 흘러 세세한 내용은 다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 초등학교 때부터 포수를 하고 나서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어요. 결국 초반에 저도 교체돼 나갔죠."
당시 포수로 선발출장한 김동수(현 서울고 감독)의 말이다.
실제로 이날 김동수는 3회말부터 포수 최동수로 교체돼 벤치에 들어갔다. 이미 2회까지 0-11로 뒤졌으니 LG로선 사실상 백기를 든 셈이었다.
그러고도 삼성의 득점파티는 멈추지 않았다. 4회와 5회에 각각 6점, 7회 1점, 8회 3점을 뽑은 다음에야 불방망이를 거둬들였다.
LG 마운드의 비극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3연전 마지막 날인 5일 어린이날에도 홈런 5방을 맞고 1-13으로 대패했다.
믿었던 맏형 선발투수 김용수마저 3이닝 6실점으로 삼성 방망이를 견디지 못했다. 2번째 투수 김기범은 1이닝 7실점(4자책점)으로 부진했다. 삼성 고졸 3년생 이승엽은 1회말 솔로홈런에 이어 4회말에는 만루홈런을 터뜨렸다.
LG는 이 3연전에서 무려 49실점(경기당 16.3실점)을 기록해 팀 평균자책점이 3.56에서 5.41로 폭등했다.
화창한 봄날에 펼쳐진 어린이날 시리즈. 삼성 어린이 팬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추억이 됐을지 몰라도 이날 대구구장을 찾은 LG 어린이 팬들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악몽으로 남는 순간이었다.

◆한 달 이상 홍역 치른 ‘부정 배트’ 시비
삼성은 LG와 3연전에서만 무려 17개의 홈런을 터뜨렸다. 이 시리즈에 앞서 그해 17경기에서 15개의 홈런을 기록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보면 분명 믿기지 않는 숫자였다.
LG 천보성 감독은 마지막 경기가 끝나자마자 삼성 덕아웃으로 달려가 삼성 선수들이 사용하던 배트를 집어 들었다.
“아니, 이 방망이에는 공인번호가 없지 않습니까?”
천 감독은 심판진에게 삼성이 사용한 미즈노 방망이를 들어 보이며 “부정 배트 아니냐”며 이의를 제기했다.
“그게 어디가 어때서 그래? LA 다저스 포수 마이크 피아자도 이 방망이를 써!”
삼성 백인천 감독이 달려와 불같이 화를 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천 감독은 “같은 미즈노 제품이지만 LG 선수들이 사용하는 방망이와 달리 삼성 선수들이 쓰는 배트는 공인도장이 찍혀 있지 않다”고 거듭 주장했다. 실제로 LG 선수들의 미즈노 방망이에는 ‘002’, ‘009’ 등 일본 커미셔너사무국이 인정하는 공인번호가 찍혀 있었다.
이에 대해 백인천 감독은 “우리 방망이는 미국에서 수입한 미즈노 제품”이라며 “생산지가 달라 공인도장이 없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KBO 야구규약의 ‘야구배트 공인규정’엔 천 감독의 주장처럼 경기용 방망이에는 반드시 공인 및 공인번호가 찍혀 있어야 한다’라고 돼 있다.
하지만 당시엔 관례처럼 삼성은 물론 다른 구단에서도 공인용 불도장이 찍혀 있지 않은 배트를 사용하기도 했고, 관리감독을 해야 할 KBO는 이를 묵인해 왔다.

KBO는 부정 배트 시비가 파문을 일으키자 삼성이 사용한 배트 두 자루를 수거해 6일 인근 목공소에서 절단해 보고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려 했다.
문제는 규칙위원회에서 공식적으로 내린 결정이 아니라 황석중 심판위원장을 비롯한 상벌위원회의 위원들이 의사를 표시한 것이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파문이 더 확산됐다. KBO는 뒤늦게 5월 9일 이상일 운영부장과 조희준 기획조사부 대리를 일본 미즈노사에 파견해 배트 성분 분석을 의뢰했다.
KBO 박종환 사무총장은 이상일 부장이 일본 미즈노사로부터 받아온 검사결과를 토대로 5월 12일 “배트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KBO가 소집한 규칙위원회에서 “규칙에 위배된다는 명확한 규정은 없지만 현실적으로 일본프로야구와 메이저리그에서는 이런 미국산 미즈노 배트를 사용하는 예가 없다”면서 “6월 1일 이후에는 공인마크가 없으면 사용할 수 없다”고 KBO의 적합판정에 반기를 들었다.
그 사이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졌다. LG는 5월 18일 잠실 OB전에서 대구에서 수거해 온 삼성 배트(검정색 미즈노 배트) 한 자루를 1번부터 9번까지 돌려가며 사용했다. 1번타자 류지현(당시 등록명은 유지현)이 친 방망이를 2번타자 동봉철이 주워 다시 하용하는 식이었다. 마치 동네야구에서나 볼 법한 일. 일종의 무언의 항의처럼 보였다.
그러자 KBO리그 전체에 한바탕 회오리 바람이 불었다.
한화도 '마법의 배트' 3자루를 긴급 공수해 타자들이 돌아가며 쓰기 시작했고, 현대 등 몇몇 구단에서는 “가격과 상관없이 배트를 구입하고 싶다”며 미국 애틀랜타에 있는 미즈노 배트 제조사에 연락을 취했다. 그러면서 이 배트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결국 KBO 홍재형 총재는 규칙위원회의 결정을 시행하는 것을 유보하고 박현식 규칙위원장과 이상일 운영부장을 다시 미국으로 파견했다. 5월 24일 메이저리그 사무국에 배트 정밀검사를 의뢰한 뒤 6월 16일 다시 “이상이 없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삼성이 사용한 배트는 일단 압축배트는 아닌 것으로 결론이 나면서 부정배트 시비는 일단락됐다. 하지만 LG 측에서는 "우리가 말하는 것은 압축배트가 아니라 공인마크가 없기 때문에 말하는 것"이라고 항변했다.
한 달 이상 홍역을 치른 가운데 얻은 가장 큰 성과라면 이때부터 배트 사용에 관한 규칙 적용이 엄격해졌다는 것이었다. 공인 마크가 없는 배트를 KBO리그에서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도록 확실히 못을 박았다. 주먹구구식이었던 KBO리그 배트 사용 관행이 제대로 자리를 잡았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있었다.

◆충격의 대구 3연패에도 LG 전반기 1위 질주
5월 3~5일 대구 3연전에서 LG는 시즌 처음 3연패를 당했다. 하지만 그동안 벌어놓은 승수가 있었기에 단독선두 자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6일 잠실 롯데전에서 선발투수 임선동의 7이닝 1실점 호투와 신인 이병규와 신국환의 적시타 등으로 4-2로 승리하며 분위기를 추슬렀다.
이후 승과 패를 나눠 가져가던 LG는 5월 중순 이후 ‘3연승-1패-3연승-1패-3연승’을 반복하면서 안정적인 레이스를 펼쳤다.
5월 17일 잠실 OB전에서는 해태에서 이적해 온 최향남이 5.2이닝 무실점으로 데뷔 8시즌 만에 첫 선발승을 거두는 감격을 맛보기도 했다. 최향남까지 선발 로테이션에 가세하면서 LG 마운드는 더욱 탄탄해졌다.
하지만 호시탐탐 선두를 노리던 해태가 5월에 무서운 상승세를 탔다. 5월 10일 광주 LG전 승리를 시작으로 ‘6연승-1패-6연승’을 올렸다.

5월 23일 금요일 밤.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우선 한화 정민철이 대전에서 OB를 상대로 KBO 정규시즌 역대 9호 노히트노런을 달성했다. 무안타 무4사구 무실점으로 최초의 퍼펙트게임이 완성될 뻔했으나, 8회초 심정수의 헛스윙 삼진 때 포수 강인권이 공을 뒤로 빠뜨리고 말았다. 결국 ‘스트라이크아웃 낫아웃’으로 출루를 시키는 바람에 노히트노런에 만족해야 했다.
이날 LG는 잠실에서 쌍방울에 0-7로 덜미를 잡히면서 3연승 행진이 끝났다. 그러자 해태가 사직에서 롯데를 1-0으로 꺾고 단독 1위로 올라섰다. LG로서는 4월 18일 1위로 도약한 뒤 1개월 5일 만에 선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하지만 LG는 4일 후인 5월 27일 1위를 탈환했다. 6월 4일과 27일 하루씩 다시 2위로 내려간 것을 제외하고 전반기 내내 1위를 지켰다.

◆삼성 백인천 감독과 LG 알바레즈 코치의 난투극
부정 배트 시비 문제는 가라앉았지만 LG와 삼성의 감정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그 여진은 6월 22일에 다시 터졌다. 삼성 백인천 감독과 LG 조 알바레즈 코치가 그라운드에서 난투극을 벌이는 보기 드문 사태가 발생했다.
사건의 발단은 9회초. 이날은 LG 타선이 폭발했다. 9회에만 4안타 2사사구를 집중시키며 5점을 추가해 스코어가 12-3으로 크게 벌어졌다. 계속된 2사 2루 신국환 타석이었다.
백 감독은 3루 쪽 삼성 덕아웃에서 마운드 쪽을 향해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뭔가를 지시했다. 투수 박석진이 도망가는 피칭을 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아예 1루로 걸러 보내라는 손짓을 보낸 것이었다.
그런데 LG 3루코치로 나가 있던 알바레즈 코치는 이를 일부러 신국환의 몸에 맞는 공을 던지라는 시그널로 판단했다.
하지만 몸에 맞는 공 없이 9회초 LG 공격이 종료됐다. 그런데 알바레즈 코치는 이닝 교대를 위해 LG 덕아웃 쪽으로 가려다 3루 옆 삼성 덕아웃을 향해 ‘F’가 들어가는 욕설을 내뱉었다.
흥분한 백 감독이 덕아웃을 박차고 나가 알바레즈 코치에게 달려들었고, 주먹으로 턱을 치면서 그라운드는 아수라장이 됐다. 곧바로 조창수 수석코치가 알바레즈의 멱살을 잡으면서 백 감독 대신 몸싸움을 벌였다.
선수가 아닌 코칭스태프끼리 난투극을 펼치는 보기 드문 장면. 당연히 양 팀 선수들도 그라운드로 쏟아져 나와 대치를 했지만 어른들의 싸움에 끼어들기도 애매해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들이었다.
가뜩이나 삼성이 대패를 하는 분위기였는데, 난투극이 펼쳐지자 흥분한 대구구장의 관중들은 오물을 그라운드에 투척하기 시작했다.
사태가 일단락되자 김병주 주심은 백 감독과 알바레즈 코치에게 동시퇴장을 선언했다.
하지만 흥분한 대구 팬들은 경기 후에도 야구장 밖에서 소동을 벌였다. 대구북부서의 300여 명 경찰병력이 투입된 가운데 3연전을 마친 LG 구단버스가 가까스로 서울로 향할 수 있었다.
어쨌든 LG는 이날 대구 원정 7연패의 악몽에서 벗어났다. 선발투수 최향남이 7이닝 2실점 역투를 펼치면서 시즌 6연승 무패 가도를 달려 완전히 에이스로 자리 잡았다.
LG는 전반기 최종일인 7월 5일 잠실 쌍방울전에서 3-6으로 패했지만, 41승2무24패(승률 0.627)의 호성적으로 2위 해태(39승1무26패)를 2게임차로 밀어내고 1위로 반환점을 돌았다.
전년도 6위 팀 LG는 시즌에 앞서 대체적으로 하위권 전력으로 평가 받았다. 그러나 LG는 놀라운 변신을 통해 가을야구, 나아가 한국시리즈 직행을 꿈꾸기 시작했다.

◆‘꾀돌이’ 류지현, 구단 최초 ‘Mr. 올스타’
LG는 MBC 청룡 시절부터 유난히 올스타전 MVP와 인연이 없었다. 그러다 1997년 마침내 구단 역사상 최초의 ‘미스터(Mr.) 올스타’가 탄생했다.
7월 8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올스타전. 1983년 1차전(1982~1985년에는 올스타전이 3차전까지 열렸다) 이후 14년 만에 달구벌에서 ‘꿈의 구연’이 펼쳐졌다.
LG에서는 포수 김동수에 이어 외야수 부문에서 심재학과 신인 이병규가 팬투표로 서군(LG, 해태, 현대, 한화) 올스타로 선정됐다.
하지만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감독 추천선수로 참가한 뒤 6회말 대수비(2루수)로 출전한 류지현이었다.
이날 경기는 역전과 동점, 재역전의 명승부로 장식됐다. 서군이 먼저 3점을 얻자 동군이 4회와 5회 2점씩을 뽑아 4-3 역전에 성공했다. 서군이 6회초 4-4 동점을 만들자 동군이 7회초 다시 5-4로 1점을 달아났다.
9회초 서군의 마지막 공격. 2사 만루 찬스에서 류지현이 타석에 들어섰다. 동군 마운드에는 OB의 마무리투수 김경원. 주자 만루 상황에서 볼카운트도 3B-2S로 꽉 찼다.
여기서 류지현은 천금의 2타점 중전 적시타를 날렸고, 서군은 6-5로 짜릿한 재역전승을 거뒀다.
류지현은 7회 우익수 플라이를 포함해 2타수 1안타에 그쳤지만 결승타의 주인공으로 MVP까지 거머쥐었다. 기자단 투표서 51표 중 34표를 획득해 승용차 ‘소나타Ⅲ’를 부상으로 받았다.
류지현은 “감독 추천선수로 올스타전에 나왔기 때문에 나에게는 좋은 기회가 돌아오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면서 “사실 94년 신인왕을 수상한 이후 개인 부문 타이틀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랜만에 큰 상을 타서 기분이 좋다”며 활짝 웃었다.

한편 전반기에 6승1패를 거두며 LG의 1위 숨은 공신으로 떠오른 최향남은 생애 처음 올스타전에 참가하는 영광을 누렸다.
그는 팀이 4-5로 뒤진 8회말 1사 후 마운드에 올라 1.2이닝 동안 3탈삼진 무실점으로 역투를 펼쳤다. 때마침 9회초 터진 류지현의 역전 결승타로 인해 승리투수가 됐고, 우수투수로 선정되는 기쁨을 맛봤다.
호사다마일까. 최형남은 전반기 마지막 경기(5일 잠실 쌍방울전)에 등판한 뒤 이틀만 쉰 채 이날 올스타전에 참가했다. 경기가 엎치락뒤치락 하면서 투수들이 많이 소모돼 예정보다 많이 던졌다.
결국 팔꿈치에 통증이 발생했다. 최향남은 그 이후 한동안 마운드에 서지 못했다. 불규칙한 등판 간격 속에 후반기에는 2승(2패)을 추가하는 데 그치고 만다. LG의 후반기 행보가 힘겨워진 원인 중 하나였다.

◆후반기 개막하자마자 LG 연패 늪…1위→3위 ‘위기의 계절’
LG는 전반기를 1위로 마감한 데다 구단의 숙원이던 올스타전 MVP까지 배출했다. 하지만 후반기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7월 13일 최하위 롯데를 사직에서 만났지만 1-2로 패하면서 스텝이 꼬였다. 19일 잠실 삼성전까지 후반기 5연패. 전반기 마지막 경기(5일 잠실 쌍방울전) 패배까지 포함하면 6연패의 수렁에 빠졌다.
3연패까지는 1위를 지켰지만 17일 잠실 한화전에서 패하면서 해태에 1위를 내주고 2위로 내려앉았다.
18일과 19일 잠실 삼성전에서는 연속으로 패했다. 결국 삼성에도 추월을 허용해 3위로 떨어졌다.
20일 삼성을 잡으면서 2위를 되찾았지만 사직 롯데 원정에서 3연전 스윕패를 당하면서 또 3위로 주저앉았다.
최향남뿐만 아니라 류지현도 올스타전 후유증인지 후반기 부진에 빠지고, 마무리투수 이상훈도 흔들리면서 최대 위기를 맞닥뜨렸다.
LG는 다행히 7월 25일부터 27일까지 2~3위 경쟁을 하는 삼성을 적지인 대구에서 3연파하며 한숨을 돌렸다.
하지만 한 번도 1위를 탈환하지 못했다. 1위를 해 본 것도 7월 16일이 마지막이었다.

◆PO 직행 확정…2년 만에 가을야구로!
LG는 8월에 접어들면서 전열을 재정비했다. 클로저 이상훈의 특급 마무리 솜씨가 다시 본 궤도에 오르면서 마운드 전체가 안정됐다. 8월 5일 잠실 OB전 승리를 시작으로 6연승을 질주했다. 17일부터 23일까지는 5연승을 거뒀다.
8월말과 9월초 각각 3연패를 겪기도 했지만, 9월 10일 잠실 해태전부터 시즌 막판인 23일 잠실 한화전까지 무려 9연승을 달렸다.
LG의 ‘믿을맨’ 차명석은 9월 12일 전주 쌍방울전에서 구원승을 챙겨 생애 처음 시즌 10승 고지에 올랐다. 그해 68경기(119.1이닝)에 등판해 11승4패, 7세이브, 평균자책점 2.79의 커리어하이 시즌을 장식하면서 LG 불펜의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하지만 해태의 페이스가 워낙 좋았다. 좀처럼 곁을 내주지 않았다. 9월 28일까지 LG는 72승2무51패(승률 0.584)를 기록했다. 해태는 73승1무49패(승률 0.598)로 LG를 1.5게임차로 앞서 있었다.
팀당 정규시즌 126경기를 하던 시절. LG는 9월 29일 잠실 쌍방울전 1경기를 남겨두고 있었다.
해태는 이날 광주 삼성전에 이어 30일 광주 한화전, 10월 1일 전주 쌍방울까지 3경기가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해태의 정규시즌 1위 확정을 위한 매직넘버는 1이었다.
LG로서는 일단 이겨놓고 봐야했다. LG는 시즌 최종전에서 선발투수 김용수의 6이닝 무실점, 이상훈의 3이닝 2실점 이어던지기로 쌍방울을 5-2로 꺾었다.
하지만 해태가 광주에서 OB를 4-1로 이기면서 자력으로 한국시리즈 직행을 결정했다.
자연스럽게 LG의 2위(플레이오프 직행)도 확정됐다. LG는 1993년(삼성 상대)과 1995년(롯데 상대)에 이어 구단 역사상 3번째 플레이오프를 치르게 됐다.
준플레이오프는 3위로 돌풍을 일으킨 쌍방울 레이더스와 4위 삼성 라이온즈의 맞대결. 여기서 삼성이 2승1패로 이겼다.
이로써 플레이오프는 1993년에 이어 4년 만에 LG와 삼성의 매치업이 성사됐다.
4년 전에는 LG가 5차전 혈투 끝에 2승3패로 물러나면서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한 아픔을 겪었다.
따라서 LG로서는 ‘리벤지 매치’였다. 특히 1997년 한 시즌 내내 앙숙 관계였던 상대라 더더욱 플레이오프를 벼를 수밖에 없었다.
[엘팬알백] 51편에서 계속

이재국
야구 하나만을 바라보고 사는 ‘야구덕후’ 출신의 야구전문기자. 인생이 야구여행이라고 말하는 야구운명론자.
현 스포팅제국(스포츠콘텐츠연구소) 대표 / SPOTV 고교야구 해설위원 / 유튜브 '이재국의 와일드피치' 운영
전 스포츠서울~스포츠동아~스포티비뉴스 야구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