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도서관 '단종 한국 게임' 특별전, "게임도 기록 유산"

국립중앙도서관이 한국 게임의 문화적 가치와 디지털 문화유산으로서의 보존 의미를 조명하는 특별전 '단종 한국 게임, 다시 켜다'를 7월 14일부터 12월 31일까지 디지털도서관 지하 3층 작은 전시실에서 연다. 국립 기관의 첫 게임 전시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국립중앙도서관이 연말까지 '단종 한국 게임, 다시 켜다' 전시회를 연다 ©INVEN
개막에 앞서 13일 오전 게임 업계 관계자와 학계 인사 등이 참석해 전시 취지를 공유하고 게임 자료 기증식을 진행했다.

이번 전시는 국립중앙도서관이 소장한 한국 게임 관련 자료를 중심으로, 한때 개발·유통됐지만 이제는 쉽게 접하기 어려운 단종 게임과 미발매 게임의 기록을 소개한다. 도서관이 1980년대 초부터 수집·보존해 온 게임 잡지 4종, 매뉴얼 6권, 플로피디스크 게임 3점 등이 전시된다.

전시는 총 5개 영역으로 구성됐다. 1존 '도서관, 게임을 수집하다', 2존 '책장 너머의 게임들', 3존 '한국 게임의 시간여행', 4존 '게임을 지키는 사람들', 5존 '다시 켜는 한국 게임'이다.

특히 1990년대 게임 잡지 광고에만 흔적으로 남아 있던 미출시 슈팅게임 '그날이 오면'을 인공지능(AI) 기술로 재현해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했다. 잡지 기사와 광고, 인터뷰 등 기록으로만 남아 있던 사라진 게임도 최신 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문화콘텐츠로 되살릴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5존에서는 관람객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AI 게임 체험존도 운영한다. 도서관 캐릭터 '북키'와 '투미'가 등장하는 이 체험존은 관람객이 사라진 게임 데이터를 탐색하고 회수한 뒤 AI 기술로 복원하는 과정을 게임 형식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그날이 오면'을 복원한 슈팅 게임을 관람객이 실제로 플레이해볼 수 있으며, 도서관 측은 향후 순위 기록에 따라 소정의 상품을 제공하는 랭킹 시스템 도입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막고야 대표를 지낸 홍동희 씨(왼쪽)가 국립중앙도서관에 게임 자료를 기증했다 ©INVEN
개막식에서는 전(前) 막고야 대표 홍동희 씨의 자료 기증식이 함께 열렸다. 홍 씨는 미국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1992년부터 게임 개발을 시작해 한국 게임 시장을 이끈 1세대 개발자로, 한국 최초의 게임벤처기업 '막고야'를 설립해 PC게임 '세균전'으로 인기를 얻었다. 이후 슈팅게임 '전륜기병 자카토' 등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으며, 문화체육관광부 게임산업정책자문위원과 게임종합지원센터 이사 등을 역임했고 현재는 계원예술대학교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이번에 홍 씨가 도서관에 기증한 자료는 1994년 출시된 '전륜기병 자카토'와 1997년 출시된 '제3지구의 카인' 게임 패키지다. 여기에 '세균전' 소스코드와 막고야가 개발한 한글 폰트도 함께 기증됐다. 국립중앙도서관은 기증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홍 씨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홍 씨가 기증한 게임들 ©INVEN
박주옥 국립중앙도서관 지식정보관리부장은 인사말에서 "규모는 크지 않지만 단종된 한국 게임들을 만나고 복원 결과까지 확인할 수 있는 기획전시"라고 소개하며, 준비 과정에서 홍동희 대표와 게임문화재단 조수현 국장 등의 도움이 컸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 게임은 소중한 문화유산"이라며 "옛 플로피디스크나 CD롬에 담긴 게임을 디지털화해 다시 구동할 수 있게 만드는 작업이 디지털 복원·보존의 중요성을 일깨운다"고 말했다.

박 부장은 도서관이 게임 관련 기록을 지켜왔기 때문에 오늘날 복원이 가능했다는 점에서 기록유산으로서의 의미도 강조했다.

홍동희 씨는 축사에서 "게임 산업이 지난 30년간 크게 발전했고, 자수성가한 성공한 인사 중 다수가 게임 산업에 뿌리를 두고 있다"며 산업적 파급효과에 비해 역사 기록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측면이 있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국립중앙도서관이 뜻깊은 행사를 마련해준 데 대해 산업계를 대표해 감사드린다"며, 앞으로 산업계와 연대해 기증·발굴할 수 있는 자료를 선제적으로 찾아 나서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그는 최근 게임 산업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언급하면서도, K-콘텐츠 안에서 게임이 지닌 위상과 잠재력을 살려 역량을 결집하면 다시 해외 시장에 한국 문화를 수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전시를 소개하는 이연수 학예사 ©INVEN
개막식 이후에는 전시를 준비한 자료보존연구센터 이연수 학예사의 안내로 전시 투어가 진행됐다. 이 학예사는 지난해부터 단종 한국 게임 관련 연구를 시작했다고 소개했다.

1존에서는 도서관이 소장한 게임 매체들을 볼 수 있다. 국내 초기 FPS 게임으로 꼽히는 작품의 소스코드가 담긴 매체, 대우 'IQ2000' PC, 26종의 게임이 담긴 셰어웨어 게임팩, 격투 게임 매뉴얼, 손노리가 개발한 게임의 매뉴얼, '창세기전' 게임 패키지 등이 전시된다. 이 학예사는 게임 CD와 달리 패키지에 포함된 카드류 등 부속물은 종이 기록물처럼 별도 관리가 필요해 보존이 까다롭다고 설명했다.

2존은 미발매·발매 미정 게임을 다룬다. '그날이 오면'은 후속작인 2편과 3편이 실제 출시돼 대중적 인지도가 있었던 반면, 1편은 잡지 광고로만 흔적이 남아 이번에 복각됐다. 당시 개발자가 개발 가능성을 자신했다가 실제로는 무산된 격투 게임 사례도 소개됐다. 이 밖에 게임 음악 앨범과 악보가 함께 기증된 사례, 특정 게임기에만 탑재돼 그 기기로만 즐길 수 있었던 신작 게임 10종 등도 전시된다.

전시의 취지가 담긴 1존 ©INVEN
"(슈팅 게임) 배틀그라운드 이전에 초롱이의 모험이 있었다" ©INVEN
3존 '한국 게임의 시간여행'은 국내 게임사를 세대별로 구분해 소개한다. 1983~1989년은 개인 개발자 중심의 태동기로 MSX, 애플 등 플랫폼에서 '신검의 전설', '대마성', '우주전사' 등이 나온 시기다. 이후 PC게임이 자리 잡은 형성기를 거쳐, 1994~1996년경에는 RPG가 본격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1996년부터는 '창세기전' 시리즈 등 다양한 시도가 이뤄진 패키지 게임 전성기로, 이 학예사는 이 시기 한국 게임의 완성도가 눈에 띄게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2002~2006년경은 '킹덤 언더 파이어' 등을 앞세워 콘솔 게임 시장에 도전한 시기로 소개됐다.

4존은 도서관의 게임 보존 기술을 다룬다. 5.25인치 플로피디스크처럼 현재 하드웨어로는 직접 구동하기 어려운 매체를 전용 장치로 읽어 디지털 이미지화한 뒤, 가상환경에서 재구현하는 보존 과정을 소개한다. 이 학예사는 일본 국회도서관도 오래된 게임 매체를 소장하고 있다고 언급하며, 해외 도서관의 게임 아카이빙 사례도 함께 소개했다.

중요하게 다뤄진 게임 보존 기술 방법 ©IN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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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철 국립중앙도서관 자료보존연구센터장은 "게임은 한 세대의 놀이이자 문화이며, 당시의 기술과 상상력이 담긴 중요한 기록유산"이라며 "사라진 한국 게임을 되살리고 최신 기술을 활용해 보존·복원함으로써 미래 세대와 공유하기 위한 의미 있는 시도입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도 단종 매체와 디지털 문화유산의 보존과 활용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전시와 연계한 세미나도 예정돼 있다. 오는 22일(수) 오후 2시에는 '단종 게임 보존과 활용'을 주제로 한 세미나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