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미 양국이 한국 국방 예산을 단계적으로 국내총생산(GDP)의 3.5% 수준으로 증액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지자 일본이 당황해하고 있다는 보도가 일본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한미 양국은 미국산 무기를 2030년까지 약 250억 달러(약 34조 원) 규모를 구매하는 방안을 협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죠.
지난 9월 1일 미국 정부 관계자는 "한국이 국방비 지출을 이른 시일 안에 GDP 대비 3.5%로 늘리기로 합의했다"고 밝혔습니다.
한국 정부 관계자는 "실무 단계에서 구체적인 수치를 갖고 협상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한미 정상회담을 위한 실무 조율 과정에서 국방비 지출을 GDP 대비 3.5%로 늘리기로 한미 양측이 의견을 모았다는 의미죠.
이 뉴스가 터지자 일본 열도가 제법 당황스러운 분위기에 휩싸였습니다.
한국이 벌써 이런 구체적이고 큰 그림을 그려놓았다는 사실에 일본 정부와 언론이 깜짝 놀란 것이죠.
'3.5%' 숫자에 숨어 있는 트럼프의 계산법
국방비 지출을 GDP 대비 3.5% 수준으로 증액하기로 한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과 합의한 GDP의 5%보다 낮은 수치입니다.

트럼프가 나토 회원국들과 협의한 기준을 보면, 직접 국방비는 3.5%, 사이버 안보 등 간접 안보비용은 1.5%로 총 5%죠.
그런데 한국은 직접 국방비 부분인 3.5%에만 합의한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의 내년도 국방예산은 올해보다 8.2% 늘어난 66조2947억 원으로 GDP 대비 국방예산은 2.42%인데, 이를 3.5%로 끌어올리려면 약 30조 원이 추가로 필요한 상황입니다.
일본이 순간 당황한 이유
일본 입장에서는 상당히 곤란해진 겁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한국, 일본, 호주는 '트럼프 정권의 국방 예산 증액 요구'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국이 먼저 손을 들어버린 거죠.
미국 국방부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요구해왔던 국방비 증액 기준인 '국내총생산(GDP)의 5%'를 한국에도 적용하겠다는 입장을 처음 공식화했는데, 한국이 벌써 절반은 응답해버린 상황입니다.
트럼프의 일본 압박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사실 트럼프는 일본에 대해서도 꾸준히 압박을 가해왔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월 10일 백악관에서 열린 각료회의에서 미일상호방위조약에 대해 "미국은 일본을 지키기 위해 몇 천억 달러를 지불한다. 전액 미국이 부담한다. 일본은 아무것도(한 푼도) 지불하지 않는다"고 말했죠.
물론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일본이 실제로 내고 있는 주일 미군 주둔경비 연간 부담금은 약 2110억 엔(약 2조 1천억 원)이고, 일본 방위성에 따르면 주일 미군 주둔경비 중 일본쪽 부담분의 1978~2024년 간 총액은 약 8조 4961억 엔(약 84조 2천억 원)입니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런 사실관계보다는 '더 많이 내라'는 메시지를 계속 보내고 있었던 것이죠.
일본의 급한 대응, 그리고 한국의 여유
하지만 일본은 국방비 증액에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심각한 일본의 재정 상황 때문입니다.
일본의 GDP 대비 부채 비율은 2024년 기준 236.70%에서 261%까지 올라 독보적인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리스가 재정 위기에 직면했던 2009년의 127%보다 훨씬 높은 상태죠.

일본국채의 규모는 2023년 12월 기준 무려 1,200조 엔(약 1경 1천억 원)을 돌파했고, 올해 예산 중 3분의 2를 복지와 이자 지급에 쓰는 상황입니다.
더욱 심각한 건 일본 정부가 빌린 돈(국채)에 대한 이자가 1%만 올라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는 점이죠.
부채 규모가 워낙 커서 이자율이 조금만 올라도 정부가 내야 할 이자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늘어나는 것입니다.
때문에 이시바 총리도 최근 일본의 재정 상황에 대해 "그리스보다 좋지 않다"며 감세에 반대했을 정도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방비를 대폭 증액한다는 것은 일본에게는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시바 총리는 지난 8월 7일 미 워싱턴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 2027년까지 일본의 방위비를 트럼프 1기 때보다 2배로 늘리겠다고 밝혔습니다.
일본 언론들은 이것이 GDP 3% 수준까지 갈 수 있다고 분석했죠.
그런데 재미있는 건 협상의 여유도가 다르다는 겁니다.
트럼프는 사람을 첫 인상으로 판단하고, 보고서도 한두 장 짜리 요약본을 선호한다는 평가인데, 국방비 지출에서도 오로지 '총액'에만 관심이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즉, 한국이 GDP 3.5%라는 숫자를 어떤 방식으로 채우든 상관없다는 의미죠.
직접적인 무기 구매 외에도 병사 급여 인상, 군 시설 개선, 사이버 보안 강화 등 다양한 항목으로 예산을 늘려서 목표 수치를 맞출 수 있어, 일본과 달리 한국에게는 협상의 여지가 많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만의 특별한 카드
한국은 일본과 달리 몇 가지 특별한 협상 카드가 있습니다.
우선 한국은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에 따라 매년 1조원이 넘는 비용(올해 1조4028억원)을 별도 지출하고 있습니다.

또한 방위사업청에 따르면 한국은 최근 5년 간 미 정부의 대외군사판매(FMS) 제도를 통해 6조 9160억원어치를, 상업구매(G2B)를 통해 3조원 넘는 무기를 사들여 연 평균 2조원 가량을 쓰고 있는 셈이죠.
한국의 방위비분담금은 일본의 2022~26년 5년간 연평균 2110억 엔(약 2조 1천억 원)보다 절대액은 적지만, 인구나 국가GDP 규모로 보면 상대적으로 일본보다 더 많은 분담금을 내고 있는 셈입니다.
일본이 더 조급해진 상황
남성욱 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장은 "일본은 스스로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미국에 선물을 주기로 결정한 것"이라며 "트럼프 입장에선 일본의 방위비 증액을 미국산 무기 구매로 포장할 수 있으니 성과를 거둔 셈"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이 벌써 구체적인 숫자와 미국산 무기 구매 계획까지 내놓으면서, 일본으로서는 "아, 우리도 뭔가 더 해야 하는 건 아닌가"하는 압박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 언론들이 한국의 국방비 증액 합의를 상세히 보도하면서 트럼프의 압박이 한국에서 일본으로 넘어갈 것에 대한 우려를 드러내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이죠.
만약 한국이 3.5%로의 인상에 응하면 호일에 대한 압력이 높아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결국 한국이 먼저 카드를 내밀면서 동북아 방위비 협상 게임에서 주도권을 잡았고, 일본은 이제 뒤따라가야 하는 처지가 된 것 같습니다.
트럼프의 '5% 룰'이 태평양을 건너와 새로운 군비 경쟁의 서막을 열고 있는 셈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