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자전거 여행의 끝판왕을 가다

이남석 2022. 9. 5. 09:38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페루 안데스산맥 평균 고도 4,200m, 숙소도 없는 1,200km를 한 달간 주파
우안카벨리카(3,600m)를 출발해 아브라촌타 고개(4,900m)로 오르는 길.

3년 만에 다시 페루를 찾았다. 못 다한 안데스산맥 그레이트 디바이드Great Divide(대분수계) 자전거 종단을 끝내기 위해서다. 당시 해발 4,200m의 코노코차Conococha마을에서 우안카벨리카Huancavelica까지 1,000km 자전거 여행을 했다.

이번 자전거 여행은 그 다음 구간으로, 우안카벨리카를 출발해 안데스에서 가장 깊은 계곡인 코타우아시Cotahuasi계곡을 지나 마지막 도착지인 코타우아시마을에 이르는 총 1,200km 여행이다. 평균 해발고도 4,200m이며 5,000m가 넘는 고개 4개를 넘어야 한다.

거의 모든 구간이 비포장길이다. 가만히 서 있어도 고소증으로 힘든 고산에서, 가파른 오르막을 자전거로 오르내려야 한다. 비포장길이라 자전거 여행은 결코 쾌적하지 않으며, 숙소나 식당이 없어 모든 일정은 야영이다. 기본 야영짐이 있어, 자전거의 무게만 해도 만만치 않은 것.

우안카벨리카 아르마스 광장의 건물.

전 세계 오지 자전거 여행자들의 끝판대장이라 해도 어울릴 정도로 상당한 인내력과 체력이 필요하다. 물론 한국 사람은 아무도 시도한 적 없는 도전이다. 안데스 고산 자전거여행은 무엇보다 식량 보급, 그리고 오르막과의 줄다리기다.

깊이 들어갈수록 마을 간 거리가 멀고 고도도 높아진다. 어느 구간은 4일간의 식량과 식수를 준비해야 하는 곳도 있다. 건기인 6월에서 8월 사이가 자전거 여행 적기다. 이곳을 자전거로 여행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만약 혼자 간다면 거의 마지막까지 혼자 가야 한다.

평범한 여행도 막상 시작하면 그 안에 평범하지 않은 것들이 있음을 보여 준다. 하물며 특별한 여행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갈등은 언제나 존재하며 판단은 매 순간 여행자의 몫이 된다. 페루 수도 리마에서 10시간 이상 버스를 타고 우안카벨리카로 이동했다. 우안카벨리카는 마치 서역의 도시처럼 건물마다 강렬한 채색의 대비가 아름답고 눈부셨다. 안데스 중앙에 섬처럼 떠 있는 이 큰 도시는 식민지 시대 정복과 광산의 흔적으로 상징되는 도시이다. 3년 전에는 자전거 여행의 최종 종착지였으나 이번에는 출발지다.

아브라 우아이라카사 고개를 넘어 카우달로스 광산으로 가는 비포장길. 숙소나 식당이 거의 없는 고산지대라 야영 채비를 했다.

마을을 만나면 가장 먼저 식량을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충분한 음식 섭취를 해야 하는데 그렇다고 양껏 배를 채우면 자전거 여행 특성상 격한 움직임에 의해 에너지 소모가 많아 오히려 빨리 소화가 된다. 그렇게 되면 중간에 공복으로 더 심한 허기가 와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다.

이것저것 식량을 많이 준비하면 짐이 무거워지고, 적게 준비하면 배고픔을 참아야 한다. 더구나 고도 4,000m 이상 높은 산 위로 아득하게 이어진 긴 오르막을 볼 때마다 다리 힘이 풀리면서 의지가 약해지고, 여행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체력과 인내심, 그리고 강한 멘털이 동행해야 하는 이유다.

산타페마을의 성당에서 만난 어느 여인이 내어준 죽과 감자. 식량을 구할 수 없어 곤혹스러웠던 순간이었기에, 이 음식은 신의 은총과 마찬가지였다.

정 안 되면 포기할 마음으로 출발

출발 전부터 여러모로 많은 생각이 들었다. 특히 이번 여행의 마지막 구간인 산타로사Santa Rosa에서 코타우아시Cothahuasi까지는 해발 5,000m 넘는 고개를 여러 개 넘어야 하기에, 끝까지 갈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다. 마음이야 완주하고 싶지만, 체력적으로 감당하기 힘들고 정신적으로 버티기 어려우면 주저하지 않고 중도에서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해발 3,600m의 우안카벨리카를 출발해 해발 4,900m의 아브라 촌타Abra Chonta고개까지는 포장도로로 큰 어려움 없이 오를 수 있었다. 점심이 다 되어 출발했기에 고개에 도착하기 전에 날이 저물어 중간에 야영하고 다음날 점심에 고개 정상에 올랐다.

해발 4,900m 아브라 리티파타 고개 정상. 월간山 깃발을 놓고 찍었다.

안데스에서 광막하고 길게 펼쳐진 산맥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고개 정상에 올라야 한다. 아마 길고 지루한 고개에 오르는 고통을 조금이라도 잊게 만드는 것 중 하나일 것이다. 과연 저 고개에 도착하면 어떤 풍광이 펼쳐질까.

아브라 촌타고개 정상에서 왼쪽 비포장도로로 들어서 3km 더 가면 다시 높은 고개와 만나는데 높이가 5,000m 넘는 아브라 우아이라카사Abra Huayraccasa고개다. 고갯마루에 당도하자 마치 히말라야의 라다크를 닮은 풍경이 나타났다. 주황색과 옅은 갈색으로 채색된 봉우리가 청옥을 닮은 하늘을 만나고 있었다.

그뿐인가. 산줄기 위에 떠 있는 막 팬 목화 같은 구름 덩어리들이 바다 같은 하늘과 어울린 광경은 아름다움을 넘어 환상 자체였다. 오르막보다 오히려 반갑지 않은 길게 뻗어나간 내리막길을 보며, 과연 저 길이 어디까지 연결될까 궁금했다. 시작이 있는 길은 반드시 끝이 있다지만 몸과 마음이 지치면 그렇게 보이지도 생각되지도 않는다. 그냥 한없을 뿐이다.

파라스 마을의 경찰들이 호의를 베풀어 경찰 숙직실에서 하루를 묵었다. 떠나기 전 경찰관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구불거리는 카우달로스Caudalos광산을 지나 한참을 더 내려와 해발 4,100m의 광산 마을인 우아초콜파Huachocolpa에서 하루 묵었다. 다음날 계속 달려 아토크마르카Atoccmarca에서 야영했다. 반나절가량 이어지는 가파른 오르막 끌바(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는 것)의 시작이었다.

혼자 가는 먼 길이 시작되었다. 아침부터 진눈깨비가 내리고 안개가 자욱했다. 정신줄을 놓은 걸까? 무슨 생각에 골몰했는지 지도를 확인하지 않고 그냥 가다가 중간에 길을 잃었다. 2시간 이상 목동과 양들의 흔적을 따라 겨우 본 경로에 합류했다. 길을 찾지 못해 헤매면서도 별 두려움이 없었던 것은 이틀 정도는 충분히 견딜 수 있는 식량과 여기저기 양과 라마들이 지나간 흔적을 봤기 때문이다.

우아초콜파마을에서 리카파마을로 가는 길의 작은 돌탑. 중간에 잠시 길을 잃었다.

길 없는 능선에서 간신히 탈출해 본 도로에 합류했다. 꾸준히 내리막을 달려 오후 3시쯤 해발 4,300m의 리카파Licapa마을에 도착하자 날이 완전히 갰다. 리카파는 식당은 물론이고 상점조차 없는 작은 마을이었다. 달러를 페루 화폐로 환전 못 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이곳에서 환전은 당연히 불가능했다. 절실했기에 돈이 좀 있을 것 같은 기름 가게 주인을 설득해 200달러를 환전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손해는 좀 봤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나마 행운이 따른 결과였다.

호텔 같았던 편안한 야영

해발 4,850m의 아브라 아파체타Abra Apacheta고개를 얼마 남겨놓지 않은 곳에 유목민 가옥을 발견하고 작은 움막 옆에서 야영을 했다. 아직 해는 남아 있는데 낮에 길을 찾느라 힘을 쏟은 데다 넘어가는 저녁 빛을 받아 눈부실 정도로 황홀하게 펼쳐진 황토색 능선과 산봉우리, 그리고 여기서 쉬어가라는 유목민 말에 현혹되어 자전거를 세웠다. 그날 야영은 페루 일정 전체를 통틀어 가장 편안한 야영이었다.

리카파를 출발해 아브라 아파체타 고개 못미친 곳에서 야영을 위해 텐트를 설치하고 있다. 현지 유목민이 자기 집 옆에서 야영할 것을 권했다.

본격적으로 두 번째 구간이 시작되는 산타페Santa Fe마을에 도착해서는 식량이 바닥났다.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리카파마을에 상점이 없어 빵을 준비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 산타페마을 역시 상점이 없는데다가 현지 주민에게서 식량을 구하려 해도 마침 일요일이라 모두 성당에 모여 미사를 드리는 중이었다.

어떻게 안 될까 내심 기대하면서 성당 안을 기웃거리는데 안에서 내 행색을 본 한 여인이 나오더니 뭔가 말을 건넸다. 궁하면 통한다는 비유가 적절한지는 모르겠지만 바로 이런 경우가 아닐까? 미사 중 내 안색을 살핀 여인의 말뜻은 "배고프지 않냐"는 것이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잠깐 기다리라"고 하더니 집에서 삶은 감자와 죽을 가지고 왔다. 만약 삶은 감자가 없었더라면 나는 해발 4,950m의 아브라 리티파타Abra Ritipata고개를 넘어 파라스Paras마을까지 가지 못하고 중도에 주저앉았을 것이다.

아름다운 라구나 아줄코차 호수. 4,800m 고도에 있는 호수로 길에서 멀지 않지만 급경사로 접근이 불가능하다. 카메라의 한계로 실제는 훨씬 압도적이다

리티파타 고개를 오르는 길은 아름다운 그림이며 장엄한 기록영화였다. 고개를 오르는 사람이야 높은 고도와 자전거를 끄는 데 따른 체력 손실로 그 멋진 풍광이 다소 고통스럽게 보이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여행 끝까지 이 순간을 기억하고 싶었다. 가슴으로 품은 인상은, 눈으로 기억한 것보다 오래 남기 마련이다. 나는 철저하게 그걸 믿는다.

실타래가 풀리듯 천천히 아래로 늘어지기 시작하던 비포장길은 해발 4,800m에 이르렀다. 나는 이상한 공포와 전율로 자전거를 멈췄다. 지금까지 봤던 그 어떤 호수보다도 신비하고 아름다운 라구나 아줄코차Laguna Azulcocha 호수가 절벽 아래에 딱 버티고 있었다.

두려운 것은 길에서 호수로 이어진 절벽이 거의 수직에 가까울 정도로 아찔했다. 전율을 느낀 이유는 고원에 버틴 호수에서 내뿜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강력한 푸른 빛 때문이었다.

리카파마을로 가는 도중 비를 피하러 들어간 유목민 마을의 노천 시장 풍경

해발 3,300m에 있는 파라스마을까지 내려가는 길은, 말 그대로 세기조차 힘든 굽잇길의 연속이었다. 오죽하면 손과 발에서 쥐가 날 정도였다. 고개 정상에서 출발해 고도 1,900m를 내려가야 하는 내리막이니 그 고도차가 한라산 꼭대기에서 서귀포까지로 보면 된다. 고개 정상에서 마을까지는 급경사에다가 해가 떨어질 즈음이라 마음이 급했다. 헤어핀(굽잇길)을 달릴 때 절벽 아래로 추락할 듯 아찔한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

제법 큰 마을인 파라스에 도착하자 해가 완전히 떨어져 어둑어둑했다. 식당부터 찾아가 그토록 먹고 싶었던 음식 '칼도 데 갈리나Caldo De Gallina'부터 시켰다. 페루에 도착해 이 음식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고생했다.

아브라 아파체타 고개 못미친 곳에서 만난 페루 유목민들

닭을 삶은 국물에 면과 감자, 닭고기를 넣어 만든, 말하자면 닭국수다. 영양도 풍부하고 맛도 좋으며 무엇보다 양이 많아 페루에 있는 내내 이 음식만 먹었다. 이제 겨우 여행 초반인데 벌써 에너지가 고갈되고 멘털이 허물어지는 느낌이 나자 나는 황급히 마음을 다잡았다.

"이 마을에 여관이 둘 있는데 한 곳은 보수공사 중이고, 다른 한 곳은 곧 시작할 피에스타(축제)를 준비하느라 문을 닫았습니다."

고개를 넘어 산타페로 가던 길목에서 만난 유목민 가족. 자연적인 삶 그대로다.
고개를 넘어 산타페로 가던 길목에서 만난 유목민 가족. 자연적인 삶 그대로다.

젊은 경찰관은 친절하게 나를 경찰서 숙직실로 안내했다. 물론 그 대가로 여러 명의 경찰관과 밤늦게까지 얘기를 나누며 스마트폰 번역 앱을 통해 한국을 소개하느라 진땀을 뺐다. 안데스의 외진 마을에 불쑥 찾아온 동양인 자전거 여행자를 대하는 그들은 유쾌하고도 진지했다.

늦은 저녁 자전거에 짐을 잔뜩 실은 여행자 혼자서 경찰서 문을 두드렸으니 얼마나 신기하고 놀라웠겠는가. 누워 눈을 감고 그간의 이런저런 경험을 정리하려 했지만 순식간에 꿈속으로 떨어졌다.

월간산 9월호 기사입니다.

Copyright © 월간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