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건보 쓰나미에 쓸려나가는 한의계의 운명
진료비 구조적으로 낮게 측정
공단 목표보다 5917억 덜 받아
원가 근거의 객관적 자료 필요
정부, 직역 간 형평성 살펴야

“건강보험이 한의원을 살린 줄 알았지만, 이제는 서서히 잠식하고 있습니다.”
최근 발표된 ‘한의원 경영수지 분석 연구’ 결과는 한의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한의 진료비 중 건강보험이 차지하는 비중은 이미 70%를 넘어섰고, 첩약까지 보험에 포함되면 90%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그만큼 건보에 의존하면서도 정당한 보상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2024년 기준으로 최소한의 인건비 상승률만 반영해도 약 20%의 수가가 누락된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단순한 회계 수치가 아니라, 한의 진료가 구조적으로 저평가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이제는 미세한 조정이 아니라 제도적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는 매년 진료비 인상률을 정할 때 SGR(지속가능성장률) 제도를 적용한다. 겉보기에는 합리적인 계산모형이지만 실제로는 재정 절감을 우선시하는 제도다. 특히 2019년을 제외하고는 매년 의료계의 필요 인상률보다 훨씬 낮게 책정됐다. 한방의 경우 공단이 스스로 제시한 적정 인상요인이 7~9%에 달했음에도 실제 반영률은 3%대에 그쳤다.
이는 ‘재정의 지속가능성’이라는 이름으로 의료의 지속가능성을 희생시킨 결과다. 이런 제도하에서 건보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한의원의 경영 기반은 더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한의계 내부에도 반성이 필요하다.
그동안 한의협은 ‘타 단체보다 1% 더 인상됐다’는 수치를 성과로 홍보해 왔다. 그러나 이 1%의 의미는 직역별 재정 규모에 따라 전혀 다르다. 양방에서 1% 인상은 1조원이 넘는 재정을 의미하지만, 한방은 약 200억원에 불과하다. 즉, 표면적 비교로는 ‘성과’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요구해야 할 보상액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협상은 감정이 아니라 근거의 싸움이다. 한의계는 지금까지 원가 분석과 경영지표를 충분히 제시하지 못했다. 데이터 없이 협상장에 들어가면 결과는 뻔하다. 이제는 원가 근거를 토대로 한 객관적 자료가 필요하다.
이번 연구는 2013년부터 2022년까지의 건강보험 지급 실적을 추적했다. 그 결과 한의계는 공단이 설정한 목표 진료비보다 5천917억원을 덜 받았다. 환자 수나 진료 건수는 줄지 않았는데도 이런 차이가 발생한 것은 한의 진료비가 구조적으로 낮게 책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단위보정계수(UAF)가 1.07로 산출되어 ‘적정 진료비가 현재보다 7% 높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지만, 이를 입증할 자료가 부족해 실제 보정에는 반영되지 못했다.
결국 준비되지 않은 협상의 대가를 고스란히 치른 셈이다.
보건복지부의 ‘제2차 건강보험 종합계획(2025년 시행)’을 보면 전체 200쪽 중 한방 관련 내용은 2쪽에 불과하다. 급여 항목은 의과 7천371개, 한의과 435개(약 16분의1 수준)에 머물며 진료비 점유율도 2015년 4%에서 2023년 3.1%로 감소했다. 중풍·심혈관계·근골격계 등 주요 영역이 정부정책 편향으로 양방으로 이동하고 첩약의 건강보험은 행위 분류와 원가 반영 없이 시작해 ‘감액의 악순환’에 빠졌다.
이대로라면 한의학은 건강보험 제도 속에서 점점 주변으로 밀려날 것이다.
한의학은 여전히 국민에게 신뢰받는 의학이다. 그러나 제도가 그 가치를 따라오지 못한다면 의학의 역사와 철학은 그 자체로 무력화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감정적 대응이 아니다. 정확한 근거와 수치를 기반으로 한 ‘데이터 협상’이다.
정부 또한 의료의 다양성과 지속가능성을 지키기 위해 직역 간 형평성을 다시 살펴야 한다.
건강보험 제도는 국민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한 축이 무너진다면 전체 구조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제는 한의학의 생존이 아니라, 국민의료 균형을 위해서라도 변화가 필요하다.
/이만희 수원 보성한의원 대표원장·(사)대한한의사협회 한의약보장성강화 특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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