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트로 vs. 오리지널] 09. 토요타 FJ 크루저 vs. FJ40 랜드 크루저 '막 쓰기 좋은 차'
토요타는 세계 시장에 다양한 모델을 판매해 인기를 얻었지만, 판매량은 둘째치고 내구성과 험로 주파능력을 인정받은 랜드 크루저의 인기를 무시할 수 없다. 랜드 크루저가 명성을 얻는 데에는 1951년부터 시작된 모델 역사에서 25년이라는 시간동안 생산된 FJ40이 큰 역할을 했고, 세계적으로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는 모델이기도 하다. 그 모델의 디자인을 현대적 차에 반영해 양산된 것이 2006년에 선보인 FJ 크루저다.
FJ 크루저의 디자인은 2003년 디트로이트 오토쇼에서 토요타가 공개한 콘셉트 카를 통해 먼저 공개되었다. 당시 토요타 캘리포니아 디자인 스튜디오인 칼티(CALTY)에 재직 중이었던 우리나라 디자이너 김진원 씨가 외부 디자인을 맡은 것이 국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내부는 베테랑 디자이너인 윌리엄 처고스키(William Chergosky)가 디자인했다. 양산 모델은 일부 요소만 바뀌었을 뿐 콘셉트 카의 디자인을 거의 그대로 이어받았다. 변화의 폭은 외부보다 내부가 더 컸다.
칼티에서 일하던 젊은 디자이너가 내놓은 디자인 제안을 제품화한 데에서도 알 수 있듯, FJ 크루저는 처음부터 북미 시장의 젊은 소비자에 초점을 맞춰 개발되었다. 완전히 새로 설계하기에는 부담이 커, 개발 당시 토요타가 보디 온 프레임 구조로 만들어 팔고 있던 랜드 크루저 프라도의 뼈대와 동력계 및 구동계를 활용해 만들었다. 이는 오프로드 주행 능력을 고려한 결정이기도 했다. 그래서 덩치가 무척 컸고, 겉모습도 상당히 우람한 분위기에 차체의 양감도 풍부했다.
즉 스타일 요소만 옛 랜드 크루저에서 가져왔을 뿐, 성격과 제품 포지셔닝은 무척 다른 차가 되었다. 차체 형태는 완전히 달라졌고, 앞뒤 바퀴 위쪽 차체를 부풀린 블리스터 펜더, 차체 아래쪽에 두른 검은색 플라스틱 몰딩, 가로로 긴 테일램프 등은 FJ40 랜드 크루저에는 없었던 요소다.
가장 특별한 것은 앞뒤 도어가 마주보고 열리는 코치 도어를 단 점이다. 제대로 된 뒤 도어를 달기에는 차체 길이가 애매했기 때문에 취한 것이었겠지만, 색다른 접근방식이었던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혼다가 내놓은 비슷한 성격의 크로스오버 카인 엘리먼트에도 같은 방식의 도어가 쓰여 신선한 느낌은 적었다.
실내는 FJ40 랜드 크루저가 기능 중심으로 단순하게 꾸몄던 것과 달리, FJ 크루저는 2000년대 중반 승용차에서 필요한 기본적 편의장비를 두루 갖추고 있었다. 물론 대시보드를 중심으로 눈에 들어오는 부분들의 형태는 FJ40와 비슷했지만, 오디오와 공기 조절장치를 모아 놓은 센터 페시아나 기어 레버와 함께 컵 홀더 및 수납공간을 배치한 센터 콘솔, 승용차 감각의 좌석들은 실내를 FJ40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쾌적한 분위기로 만들었다. 일부 패널은 차체와 같은 색으로 꾸몄는데, 이는 철판이 그대로 드러나 있던 FJ40 랜드 크루저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FJ 크루저는 출시 당시에는 토요타의 기대 이상으로 잘 팔렸다. 그러나 금세 판매는 크게 줄었고, 북미형 모델은 2013년에, 일본 내수용 모델은 2018년에 생산이 중단되었다. 원래 토요타가 주 판매 대상으로 삼았던 젊은 소비자들에게 FJ 크루저는 크고 부담스러운 차였다. 2008년 미국을 강타한 금융위기 여파와 고유가는 부담을 키웠다. 디자인에 대한 평은 좋았지만, 제품 성격이 원래 의도에서 벗어난 것이 FJ 크루저의 수명을 단축시킨 가장 큰 이유였다. 다만 생산이 완전히 중단된 것은 아니어서, 지금도 아랍에미리트를 비롯해 일부 지역에는 소량이나마 판매가 계속되고 있다.
FJ 크루저 디자인의 모태인 FJ40 랜드 크루저는 1960년부터 1984년까지 생산되었다. 랜드 크루저와 비슷한 성격과 스타일로 조금 일찍 나온 시리즈 랜드로버만큼은 아니어도, 특유의 앞 모습을 비롯해 전반적 디자인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채 장수한 모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신진자동차가 1968년부터 1971년까지 조립생산하기도 했다.
그릴과 헤드램프를 모두 감싸는 흰색 테두리, 보닛 앞쪽의 얇은 공기 흡입구, 돌출된 앞 펜더에 올려 놓은 방향지시등과 같은 요소들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인상이 특징이었다. 이는 같은 성격으로 만들어진 지프 CJ 시리즈나 시리즈 랜드로버, 닛산 패트롤 같은 차들과도 구분되는 FJ 40의 상징이나 다름없었다. 차체 뒤쪽 모서리 부분의 곡면 유리도 마찬가지다. 기능적 측면과 생산성을 고려해 단순한 모습으로 만든 차체는 적당히 굴곡진 보닛과 어우러져 단단해 보였다.
FJ40 랜드 크루저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막 쓰기에 좋은 차’였기 때문이다. 단순함과 견고함을 바탕으로, 어느 곳에서나 무슨 용도로 써도 좋은 차였다. 차의 상징이 된 앞모습 등 스타일 요소라 할 만한 것들은 최소한의 장식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의 기억에 더 오래 남을 수 있었고, 사람들이 FJ 크루저에서 되살아난 것을 반긴 이유기도 했다. 성격이 다른 차가 되었어도, 스타일로 기억하고 반길 만큼 FJ40 랜드 크루저의 영향력은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