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필름은 독특한 기업입니다. 다른 카메라 업체들이 가는 길과 다른 길을 가죠. 모두가 풀프레임 카메라를 내놓을 때, 혼자 APS-C 크롭 센서 카메라(X 시리즈) 풀프레임보다 큰 중형 센서를 탑재한 카메라(GFX 시리즈)를 선보인 것처럼요. 필름 시뮬레이션 기능은 보정을 따로 하지 않아도 스마트폰과 다른 느낌의 사진을 쉽게 뽑아낼 수 있어서 소셜 미디어에서 화제를 모았고, 아무도 후지필름 카메라를 쉽게 구할 수 없는 계기(?)를 제공했습니다.
후지필름이 20일 선보인 GFX100RF는 후지필름의 공전의 히트작 X100VI(https://the-edit.co.kr/66357)에 중형 센서를 넣으면 어떻게 될까라는 상상에서 출발한 카메라인 것처럼 보입니다.
즉, 중형 센서를 콤팩트 디지털 카메라의 바디에 끼워 넣은 것이죠. 요즘 X100VI를 비롯해 리코의 GR3나 소니의 RX1, 라이카 Q3와 같이 일명 ‘똑딱이’라 불리는 콤팩트 카메라 바디에 DSLR이나 미러리스 카메라에서 볼 법한 대형 센서를 넣는 것이 유행인 가운데, GFX100RF는 이 개념을 극한까지 밀어붙인 셈이에요.
그래서 그런지 공개된 사진만 봐도 ‘콤팩트’라는 말과는 좀 어울려 보이진 않죠? 얼핏 보기만 해도 X100VI와 비교해서 더 커진 게 보입니다. 하지만 후지필름에 따르면 무게는 중형 센서 카메라 라인인 GFX 시리즈 중에서 가장 가벼운 735g이라고 합니다. 렌즈가 붙박이로 붙어있는 GFX100RF와 다르게 GFX 시리즈의 다른 카메라들은 모두 렌즈 교환이 가능한 미러리스 카메라여서 바디만 실측한 무게라는 걸 감안하면 상당한 무게 감량인 셈이죠.
센서는 미러리스 카메라인 GFX100S II에 들어간 1억 200만 화소 중형 포맷 센서를 사용합니다. 이 센서는 44x33mm의 면적으로, 35mm 필름의 면적을 가져온 일반적인 풀프레임 센서와 비교해 1.7배 정도 더 커요. 그만큼 더욱 향상된 화질과 극적인 배경흐림 효과를 낼 수 있죠.
후지필름은 여기에 최신 5세대 X 화상처리 프로세서와 35mm F4 렌즈를 조합했는데, 센서 크기가 풀프레임보다 더 크다 보니 풀프레임으로 환산하면 28mm 정도의 화각이 됩니다. 리코 GR3가 사용하고 있는 렌즈의 환산 화각과 같죠.
여기에 X100VI에도 있는 디지털 텔레컨버터 기능도 사용할 수 있어서 풀프레임 환산 36mm, 50mm, 63mm의 디지털 줌도 지원하고, 화면 비율 변경 다이얼을 통해 센서의 4:3 비율을 최대로 쓸지, 아니면 일부를 자를지를 선택할 수도 있어요. AI 기반의 피사체 인식 기능을 탑재한 AF 시스템도 빠른 AF를 보장한다고 하는데, 후지필름 카메라의 AF 속도는 전통적으로 빠르다고 보긴 힘들었어서 실제로 그럴지는 지켜봐야 할 거 같네요. 또한, 바디를 작게 유지하기 위해 손떨림 방지가 빠진 부분도 센서가 크면 클수록 손떨림에 더 약하다는 걸 생각하면 아쉽습니다.
GFX100RF의 출시 시기는 4월, 가격은 4,899.95달러(약 719만 원)로 책정되었습니다. 절대 저렴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후지필름의 중형 미러리스를 고려하고 있던 분들에게는 도리어 매력적인 가격대입니다. 같은 센서를 탑재한 GFX100S II가 바디만 699만 원, 여기에 화각 상으로 그나마 제일 비슷한 GF 30mm F3.5 렌즈가 220만 원이어서 이 둘을 합한 것보다 조금이나마 저렴한 가격에 카메라 전체를 구매할 수 있으니까요.
GFX100RF는 후지필름의 강점을 최대로 살린 카메라라는 생각입니다. 이러한 중형 센서를 장착한 카메라는 기타 카메라 업체에서는 만들고 있지도 않을뿐더러, 여기에 렌즈 마운트를 빼고 붙박이로 렌즈를 붙이면서 사실상 직접적으로 경쟁하는 제품이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소니 RX1은 단종했으니) 라이카의 Q3 정도가 있겠지만, Q3는 풀프레임 센서라 센서 크기에서도 불리하고, 가격도 라이카답게 더 비싸죠. 물론 가격도 비싸고, 중형 센서라는 특성상 GFX100RF의 타겟층은 X100VI보다 훨씬 한정적이겠지만, 여전히 불티나게 팔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