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보여준 5·18 참상 사진이 ‘소년이 온다’ 쓰게 했다”

노벨문학상 수상 한강 작가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 창작 모티브“십대 어린 나이였지만 오월 참혹한 모습들 인간의 존엄 깊이 숙고”
16일 광주 북구 중흥도서관에서 열린 ‘한강이 궁금해’ 행사에 참석한 문인 북구청장과 효동초등학교 학생들이 푯말을 들고 한강 작가의 수상을 축하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jeans@kwangju.co.kr

“제가 작품을 썼다기보다 소설 속 주인공인 소년과 80년 광주를 체험했던 시민들이 작품을 썼다고 본다.

돌이켜보면 글을 쓰는 동안 저의 삶을 온전히 그분들께 빌려드린다는 마음으로 작업을 했던 것 같다.”최근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한강의 작품들이 주목을 받고 있는 가운데 광주의 참상을 그린 소설 ‘소년이 온다’가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2016년 한강 작가가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이후 광주의 참상을 그린 ‘소년이 온다’도 주목을 받았다. 당시 기자는 한강 작가와의 통화에서 ‘소년이 온다’를 쓰게 된 배경, 해외 번역 출간 등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한강 작가는 “소설 ‘소년이 온다’ 의 모티브는 열세 살 때 아버지(소설가 한승원)가 보여준 사진첩에서 얻었다”며 “그 사진첩에는 80년 5월 광주에서 학살된 이들의 참혹한 모습이 담겨 있었다”고 전했다.

아버지가 가져온 사진첩에는 죽은 이들의 참혹한 모습들이 담겨 있었다. 총상으로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시신, 칼에 찢겨 깊게 패인 상처들의 모습들이 여과없이 노출돼 있었다.한강 작가는 “비록 십대라는 어린 나이였지만 그 사진첩을 매개로 인간의 존엄이 얼마나 중요하며 어떠해야 하는지를 깊이 숙고할 수 있었다”고 했다.‘소년이 온다’ 에필로그에는 한강 작가가 참혹한 사진들을 보고 받았던 충격이 기술돼 있다. “거기 있는지도 미처 모르고 있었던 내 안의 연한 부분이 소리 없이 깨어졌다”는 표현이 이를 방증한다.아마도 얼마전 떠나온 고향 광주에서 발생한 무참하면서도 가혹한 폭력은 어린 소녀의 내면에 깊이 침윤됐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한강 작가가 ‘소년이 온다’를 비롯해 ‘채식주의자’, ‘작별하지 않는다’와 같은 작품을 통해 인간의 폭력과 잔혹함, 상처와 회복의 문제에 천착했던 것은 그러한 부분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스웨덴 한림원은 노벨문학상의 선정 사유에 대해 “한강은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한다. 시적이고 실험적인 스타일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소년이 온다’의 중심 서사는 80년 5월 18일부터 열흘간의 광주와 그 이후의 시간에 맞춰져 있다. 5·18 당시 시위대 속에 있었던 친구의 시신을 찾는 소년(중학생) 동호의 이야기이다.

시위대에서 행진을 하던 정대가 계엄군이 쏜 총에 맞아 죽게 된다.친구 정대의 죽음을 목격한 동호는 이후 도청 상무관에서 시신을 관리하는 일을 돕는다

. 합동분향소가 있는 상무관으로 매일 들어오는 시신들을 수습하는 일을 도우며 어린 소년은 시신에서 ‘어린 새’ 한 마리가 빠져나간 듯한 느낌을 받는다.

백지연 문학평론가는 “우리가 ‘붙들어야 할’ 역사적 기억이 무엇인지를 절실하게 환기하고 있다”고 언급했으며, 신형철 평론가는 “한강을 뛰어넘은 한강의 소설이다”고 평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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