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상식 보면 영화배우분들이 ‘버티면 기회가 옵니다’이런 말 하잖아요. 진짜 힘들었을 때 그런 것 보면 속에서 열불이 터졌어요. 무슨 기회가 오냐, 다 이뤘으니까 하는 말 아니냐 이런 생각을 했어요.”
버티면 정말 기회가 올까?
KIA 타이거즈의 오선우는 요즘 출근길이 행복하다.
빨리 눈 뜨고 싶고, 빨리 출근하고 싶다는 그는 “이런 게 처음인 것 같다. 그냥 지금 행복하다”라고 말한다.
많은 팬들 앞에서 야구를 할 수 있어서, 준비한 것을 보여줄 수 있어서 행복한 오선우. 버티다 보니 기회가 왔지만 그냥 버텼던 것은 아니다.
2023년 2월 애리조나행 비행기에 오르지 못했던 오선우는 함평 챌린저스필드에서 ‘퓨처스 주장’으로 시즌을 준비했다. 퓨처스 캠프가 시작된 날 오선우의 겉모습을 보고 오해를 했었다.
2019년 인하대를 졸업하고 KIA 유니폼을 입은 오선우는 매서운 스윙보다는 야구 선수 답지 않은 외모로 더 주목을 받았다.
‘KIA의 외모’하면 우선 언급되던 선수였지만 스토브리그가 끝나고 만난 오선우는 예전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캠프 앞두고 몸관리를 안 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던 나는 그와의 대화를 통해 섣부른 판단을 한 점을 반성했다.
오선우는 “외형은 포기했다. 외형은 필요 없다. 정말 다 포기했다. 이제는 진짜 보여줄 때다. 보여줄 시간이 많지 않아서 각오했다”며 웃었다.
자신의 강점이 타격 힘을 보여주기 위해, 장타와 OPS라는 목표를 위해 오선우는 의도적으로 몸을 불렸다.
그러나 독하게 준비했던 오선우의 2023년은 33경기 28타수 5안타(2홈런), 타율 0.179, 장타율 0.393, OPS 0.651로 끝났다.
2024년에는 단 3경기에서 7번의 타석 밖에 얻지 못했다.

올 시즌을 앞두고도 오선우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았다.
퓨처스 캠프에서 조용히 시즌을 준비했던 오선우는 부상과 부진으로 팀이 흔들리자 기회를 얻었다.
그는 4월 13일 엔트리 등록과 함께 SSG와의 경기에서 2번 타자 겸 지명타자로 나섰다.
그리고 기다렸던 날, 오선우는 문승원을 상대로 투런포를 날리고 그라운드를 돌았다.
2023년 9월 12일 대구 삼성전 이후 579일 만에 기록된 홈런이었다.
팀은 11-5 승리를 거두고 연패에서 벗어났다.
연승에도 오선우가 있었다.
KT 고영표를 상대했던 4월 15일 오선우는 팀 5안타 중 2개를 책임졌다.
이날 마구를 선보인 고영표를 상대로 팀의 첫 안타를 기록했고 8회에는 1B-2S에서 안타를 만들었다.
불리한 볼카운트에서의 승부, 많은 이들은 시원하게 허공을 가를 오선우의 방망이를 예상했을 것이다. 사실 나도 그랬다.
그러나 오선우는 밀어서 좌측에 공을 떨궜다. 이 안타로 오선우는 예전의 오선우가 아님을 입증하고, 자리 굳히기에 들어갔다.
오선우도 첫 경기 홈런 보다 이 두 개의 안타가 더 기뻤다.
오선우는 “첫 타석 초구가 실투였는데 긴장돼서 방망이를 못 냈다. 실투를 놓치면 타자는 위화감을 느낀다. 2구에 헛스윙하고, 3구에 혼잣말을 했다. ‘높게 보고 존 설정하고’. 마침 생각한 대로 와서 방망이를 돌렸는데 운 좋게 안타가 됐다”며 “두 번째 안타는 초구 체인지업이었다. 내 눈에는 스트라이크였는데 안 맞았다. 2구 체인지업 볼, 3구는 실투였는데 타이밍을 너무 빨리 잡아서 스윙하고 공이 들어왔다. ‘중타이밍을 두고 반대 방향으로 들어가자’, ‘선두타자니까 어떻게든 출루하자’고 생각했다. 커브 커트하고 무조건 반대 방향을 생각했는데 체인지업이 들어왔고, 컨택으로 잘 나온 것 같다”라고 자신의 입지를 바꾼 결정적인 장면을 이야기했다.
확실한 주전이 아닌 선수들에게는 많은 타석이 보장되지 않는다.
언제 올지 모르는 기회에서 뭐든지 보여줘야 한다.
잘 준비하고 기다렸던 오선우는 기회가 찾아오자마자 잡았다.

시상식에서 배우들이 하던 “버티면 기회가 옵니다”는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오선우가 매년 준비를 안 했던 것은 아니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오선우는 자신에 대한 ‘믿음’을 이야기했다.
오선우는 “2023년도에 혼잣말을 많이 했다. 그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끌어당김의 법칙’이라고 경험을 해봐서 그걸 믿는다. 경기 끝나고 영상을 보는데 내 입모양이 ‘할 수 있다, 칠수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며 “홈런보다 세 번째 안타가 더 기분이 좋았다. 홈런은 칠 수 있다고 해서 치는 게 아니다. 타이밍 좋게 안타가 나왔고 진짜 열심히 준비해서 달라졌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었다. 타석에 들어가기 전에도 ‘출루한다, 출루한다’ 이런 말을 하면서 들어갔고, 출루를 해서 기분이 좋았다. 100%가 아닌 200%를 한 것 같았다”고 말했다.
야구는 멘털 스포츠라고 한다. 야구선수들이 지겹도록 듣는 이야기다.
하지만 직접 느끼기 전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이기도 하다.
오선우에게도 ‘멘털’은 그런 난제였다.
오선우는 “멘털의 중요성을 몰랐다. 그냥 하면 되지 그랬는데 안 됐다. 잘 치고 잘 잡고 이게 다인 줄 알았다. 멘탈이 중요한 스포츠라는 걸 많이 느껴서 그런 쪽으로 유지를 많이 하려고 한다. 혼잣말 하면서 수비를 하는데 되니까 ‘이게 멘털이구나’를 느꼈다. 긴장도 떨어지는 것 같아서 그때부터 공부를 했다. 자기 전에도 항상 나에게 ‘수고했다’고 이야기를 한다”며 “혼자서 이렇게 하고 있으면 웃는 선수도 있다. 안 하던 것 하면 죽는다고 하는 선수도 있다(웃음). 달라진 것 없는데 2년 정도 지나서 좋아지는 모습이 보이니까 믿는 것 같다. UFC 선수 중에 내가 생각을 하고, 생각하는 꿈을 사람들한테 말을 할 수 있을 때 꿈은 이루어진다고 한 선수가 있다. 그때부터 했는데 됐다”고 말했다.
멘털만으로 변화를 만들 수는 없다. 야구 기술을 준비하는 것은 기본이고, 야구를 잘 할 수 있게 생활습관도 바꿨다.
오선우는 “체력도 중요하다. 2~3년차까지만 해도 하루 컨디션에 따라서 훈련을 했던 것 같다. 잠을 8시간은 자려고 하고, 찬물샤워도 한다. 과학적으로 찬물 샤워를 하면 심장 박동수가 24시간 동안 원래보다 다운이 된다고 해서 꾸준히 했다. 진짜 좋았다. 그 다음에 치료 관리 받고, 항상 스케줄을 똑같이 하려고 한다. 생활의 부분까지 바꾸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싸울 수 있는 몸을 만든 오선우의 결론은 다시 멘털로 돌아온다.
오선우는 올 시즌 1군 첫 출장날 2군 고치 캠프에서 썼던 일기를 펼쳤다.
오선우는 “고치캠프에서 썼던 일기가 있다. 버티자, 버티면 기회 온다. 나는 준비가 되어있다. 기회가 안 왔을 뿐 시간이 언젠가 말해줄 것이다. 인내를 갖자…. 첫 스타팅 날 그걸 읽었다. 경기 들어가기 1시간 전에는 ‘이런 날이 왔다. 모든 걸 쏟아붓자’라고 썼다. 진짜 되니까 이게 믿어진다. 무교인데도 믿어진다”며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의 힘을 이야기했다.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출발은 좋았다. 계속되는 팀의 위기는 기회가 되고 있다. 하지만 야구는 알 수 없다.
스스로를 의심하고, 자신의 가치를 다시 또 증명해야 하는 때가 올 것이다.
그러나 오선우는 생각하면 이루어지는 ‘끌어당김의 법칙’을 믿고 있다.
그는 “내려갈 타이밍이 올 것이다. 좋을 때는 모른다. ‘왜 안 되지’라는 순간에 중요한 것은 멘털인 것 같다. 그동안 해왔던 규율, 패턴이 흔들리지만 않는다면 다시 좋아지는 시기가 짧아지는 것 같다. 좋든, 안 좋든 꾸준함이 중요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KIA 외야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격변의 봄을 보내고 있다.
변화의 바람 속 KIA는 좌익수 오선우, 중견수 박정우, 우익수 정해원의 조합으로 키움을 상대로 위닝시리즈를 만들었다.
충격적인 8회가 없었다면 7일 경기에서 시즌 첫 스윕도 이룰 수 있었다.
모든 게 꼬여버린 시즌, 주목하지 않았던 이들의 활약이 필요해져 버린 시즌. 덕분에 오선우에게 ‘말도 안 되는 날’이 찾아왔다.
오선우는 “진갑용 감독님, 김동혁 팀장님, 동료들 많은 분들이 2군에서 도와주시고 응원해 주셨다. 카카오톡 배경화면에 ‘언젠가 말도 안 되는 날이 있지 않을까 주문을 건다’라는 문구를 써놨다. 말도 안 되는 날이 왔다. 버티니까 진짜 기회가 왔다. 감사하게 살고 있다. 물 들어왔으니까 하루하루 열심히 노를 젓겠다”라고 웃었다.
<광주일보 김여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