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장례식 못 간 초등생 손녀, 그리움으로 묻는 말 [長靑年, 늘 푸른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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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이 배제된 요즘 장례식
선진국은 '장례 동참'이 일반적
어른과 열린 대화로 크는 아이

Q: 초등학교 3학년 늦둥이 딸을 둔 50대 여성 K다. 얼마 전, 손녀를 유독 예뻐하시던 시어머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아이도 할머니를 잘 따랐던 터라, 장례식장에 데려가야 할지 고민이 컸다. 주변에서 "어려서 충격을 받을 수 있다" "괜히 무서운 기억만 남는다"며 만류했다. 결국 동생네 집에 맡기고 어른들만 장례를 치렀다. 그런데 장례를 마치고 돌아온 뒤, 아이가 계속 묻는다. "할머니는 어디로 간 거야?" "왜 나는 안 데려갔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했고, 제대로 답하지 못한 채 대화를 피하게 됐다. 장례에서 아이를 배제하는 것이 옳은 선택이었는지 모르겠다. 아이에게,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 이하일 경우 죽음을 어떻게 알려줘야 할까.
A: 1990년대 초까지는 집에서 장례 치르는 일이 흔했다. 어른들만의 일이 아니라 가족 전체가 함께하는 의례였고,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그 자리에 있었다. 친척 장례 조문길에 아이들이 따라가는 게 보통이었고, 죽음은 특별하거나 먼 일이기보다는 삶의 일부로 마주하는 경험이었다. 하지만 요즘 장례식장에서는 아이들을 보기 어렵다. 조부모상 참석보다 과외나 학원을 우선시하기도 하고, 많은 부모는 장례 분위기에 충격을 받을까 걱정하거나 "아직 죽음을 이해하기 이르다"는 이유로 참여를 배제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어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이른 시기부터 죽음을 접한다. 반려동물의 죽음, 뉴스 속 사고, 조부모의 부재를 통해 '사라짐'과 이별을 겪는다. 그럼에도 어른들만 죽음에 대해 말을 아낀다. 장례식장에서 아이가 사라진 모습은, 죽음을 억지로 삶에서 분리하려는 우리 사회의 단면이다. 죽음은 병원과 장례식장, 요양시설로 옮겨가며 일상에서 멀어졌지만 그사이 아이들은 유튜브와 게임 속에서 훨씬 자극적인 죽음을 접한다. 현실의 죽음은 숨기면서, 가상의 죽음에는 무방비로 노출시키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선진국은 우리와 다른 흐름을 보인다. 아이 눈높이에 맞춰 슬픔이라는 감정을 설명하고, 이를 건강하게 풀어낸다. 관련 동화나 영상, 맞춤 프로그램들이 사회공헌 사업의 일환으로 제공된다. 죽음을 거창하게 가르치기보다 부재 이후의 감정과 일상을 다루는 방식이다. 예컨대 미국의 대표 어린이 프로그램 '세서미 스트리트'에서는 엘모(Elmo)의 사촌 제시(Jesse)가 아버지를 잃은 뒤, 엘모와 함께 '작은 기억들'을 떠올리며 슬픔을 견디는 장면이 나온다. 이런 메시지를 통해 아이는 슬픔을 자연스러운 감정으로 받아들이고, 작별 이후의 삶을 배워간다.
대중 문화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1991년 영화 '마이 걸'에서 11살 소녀는 장례식장을 운영하는 아버지와 함께 살며, 어린 시절부터 죽음을 일상처럼 접한다. 그러던 어느 날, 가까운 친구를 갑작스럽게 잃고 나서야 죽음이 현실로 다가온다. 영화는 그 순간을 통해 아이가 애도를 어떻게 통과하는지를 보여준다. 어른이 준비한 말이나 교과서적 설명으로 정리되는 것이 아니다. 관계의 상실 앞에서 흔들리고, 죄책감과 부정, 혼란을 지나 조금씩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감정을 소화해 나간다. 주목할 점은, 아이가 금세 괜찮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주변의 다른 관계와 일상 속에서 슬픔을 안은 채로 한 뼘씩 자라난다.
무조건 숨기기보다 아이 나이에 맞는 언어로, 진심을 담아 전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메시지는 아이의 성장에 맞춰야 한다. 유아기에는 "다시는 함께할 수 없는 이별"이라는 사실을 짧고 부드럽게 전하고, 초등학생이라면 장례식 참여 여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하되, 어떤 일이 벌어지는 자리인지 미리 알려주는 게 적절하다. 청소년기에 이르면 죽음의 의미나 감정을 스스로 질문하게 되므로, 감정을 함께 나누고 대화를 열어두는 태도가 중요하다. 결국 '무엇을 말할까'보다, 아이의 질문을 외면하지 않고 곁에서 함께 있어주는 어른의 태도가 중요하다.
우리 사회도 웰다잉과 죽음 준비 교육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어떤 지자체는 조례를 만들어 본격 지원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교육 대상은 성인이나 노인에 머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아이와 청소년 역시 이미 '부재'와 '상실'을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고, 때로는 감정의 위기가 훨씬 이른 시기에 찾아오기도 한다.
장례를 마주하는 경험은 그 자체로 교육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이 곁에서 어른이 함께 슬퍼하고, 아이의 마음을 들어주는 시간이 있다면, 그 작별은 아이에게 가장 깊은 삶의 수업이 될 수 있다.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12115180000306)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0271009000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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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01309180005643)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120910280001964)
이정선 을지대 장례산업전공 교수·미국 장례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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