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힙합은 진짜 망했을까? l 그럼에도 논쟁이 필요한 이유③

아이즈 ize 이덕행 기자 2023. 2. 1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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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이덕행 기자

한국 힙합이 망했는지 망하지 않았는지 판단하기란 생각보다 어렵다. 망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근거도 설득력이 있고 망하지 않았다는 주장 역시 나름의 일리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하루 이틀 이어진 논쟁이 아니고 서로가 생각하는 힙합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상충되는 주장도 많이 있다. 그렇다고 이 모든 논쟁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발전 없이 정체되는 순간이 진짜 한국 힙합이 망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힙합 커뮤니티에 잊을 만하면 불타는 '떡밥'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한국 힙합이 망했다'는 주장이 등장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한국에 힙합이 들어오고 자리를 잡은 시점부터 한국 힙합은 망했다는 주장은 꾸준히 제기됐다. '힙합 망했다'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역설적으로 힙합에 대한 관심이 식지 않았다는 뜻으로도 해석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묘한 구석이 있다. 말랑말랑한 감성의 힙합곡들이 인기를 얻을 때도 '이제 힙합은 망했다'는 소리가 나왔고 트랩, 싱잉랩, 이모랩 등 다양한 하위 장르가 인기를 얻었을 때도 곡소리가 넘쳐났다. 다른 장르와의 결합에 격한 거부감을 보이던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제는 교류가 없으면 망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과거 소울컴퍼니를 해체한 더 콰이엇이 일리네어를 설립하고 '머니 스웩'이 가득한 노래를 공개했을 때 나왔던 '힙합 망했다'는 소리는 일리네어가 해체됐을 때도 똑같이 나왔다. '쇼미더머니'라는 프로그램이 처음 등장했을 때 '힙합이 망했다'는 소리가 나왔는데 반대로 '쇼미더머니'의 폐지설이 불거지자 다시 '힙합 망했다'는 소리가 들려온다. 단편적인 현상을 근거로 '한국 힙합이 망했다'는 주장을 하다 보니 모아놨을 때 오히려 근거들이 상충되는 셈이다. 

또한 '한국 힙합'과 '망했다'는 단어의 정의 역시 개개인에 따라 크게 다르다. 누군가에게 한국 힙합은 가리온과 드렁큰 타이거지만 누군가에게는 창모와 저스디스다. 기준을 어느 시점으로 잡느냐에 따라 현재 한국 힙합에 대한 평가도 달라진다. 대중성을 기준으로 흥망을 논하는 팬이 있는가 하면 음악성을 기준으로 성쇠를 판단하는 사람도 있다. 이처럼 추상적인 개념으로 논쟁이 펼쳐지다 보니 '한국 힙합이 망했다'는 명제는 참·거짓을 판별하지 못한 채 쳇바퀴를 구르는 모양새다.

끝없는 고민으로 밴드 사운드와 힙합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넉살/사진=유튜브 

# 그럼에도 논의해야 하는 이유

과거의 근거와 지금의 근거가 상충되고 서로가 정의하는 힙합이 다르기 때문에 '한국 힙합이 망했다'는 주장은 뫼비우스의 띠를 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모든 담론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이 모든 담론에는 한국 힙합을 향한 애정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한국 힙합이 망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한눈에 봐도 한국 힙합에 애정이 가득한 사람이다. 반대로 '한국 힙합이 망했다'는 주장하는 사람 역시 그 안에는 힙합을 향한 애정과 아쉬움이 담겨있다. 단지 자신이 가장 정을 붙였던 순간과 무언가 다르기 때문에 '망했다'고 하는 것이다. 이처럼 애정에 바탕한 논쟁이 계속 된다면 어떤 식으로든 한국 힙합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오히려 두려워해야 할 것은 아무도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다. 한국 힙합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힙합이 망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힙합에 관심있는 일부 사람들만 서로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상황이야말로 진짜 한국 힙합이 망하는 시발점이다. 고인물은 썩기 마련이다. 그 물이 썩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유입과 자정작용을 통한 발전이 있어야 한다.

물론 이 같은 논쟁을 더 깊게 고민해야 할 사람은 힙합을 소비하는 리스너들보다는 힙합을 생산하는 플레이어들이다. 한국 힙합이 망했다고 결론이 난다면 일차적인 원인은 그 문화를 주도한 래퍼들에게 있을 것이다. 반대로 한국 힙합이 망하지 않았다고 결론지어진다면 그걸 증명한 사람 역시 래퍼들일 것이다. 힙합을 즐기는 리스너들의 역할은 든든한 지원자로 그들을 지탱하는 동시에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들이 썩지 않게 감시하는 것이다. 

/사진=유튜브 'P&Q의 국힙상담소'

# 다시 홍대로?

그렇다면 앞으로 한국 힙합이 고민해야 할 지점은 무엇일까. 당연하게도 대중성과 음악성이다. 한국 가요계에서 힙합이라는 장르가 메인스트림에 위치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한국 가요계의 주류라고 할 수 있는 K팝 신에서 많은 아이돌 그룹들은 힙합 장르의 곡을 선보이며 래퍼 포지션의 멤버도 빼놓을 수 없다. 마이너한 음악 장르는 힙합과 교류를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기도 한다. 힙합을 주제로 한 다양한 프로그램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다만, 장르로서의 힙합이 아닌 힙합 문화와 이로부터 파생된 음악들이 모두 메인스트림에 들어갔냐는 질문에는 선뜻 그렇다고 대답하기 어렵다. 좋은 음악은 꾸준히 나오고 있지만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못하며 빛이 바라고 있다. 대중성은 곧 스타성이고 상품성이다. 좋은 음악을 발매하고 들어주기를 기다리기보다는 어떻게 포장하고 어떻게 알릴 것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이에 매몰돼 음악성을 놓쳐서는 안 된다. 통신·매체의 발달로 이제는 비행기를 타지 않고도 다양한 나라의 다양한 음악을 접할 수 있다. 특히 힙합이라는 장르는 그 특성상 외국의 흐름을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무조건적으로 해외의 트렌드를 따라 하는 것이 음악적인 발전을 뜻하지 않는다. 트렌드의 특징을 잘 파악해 자신에게 걸맞은 스타일로 편집하고 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트렌드를 따라갈 필요도 없다. 자신만의 스타일로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하는 것 역시 또 다른 발전 방향 중 하나다.

한국 힙합의 미래가 어떤 식으로 그려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예상되는 그림 중 하나는 '다시 홍대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 발언을 했던 더 콰이엇은 'P&Q 국힙상담소'에 출연해 "어느 정도 저희(한국 힙합)의 고성장이 멈췄다고 본다. 우리는 우리가 재밌는 것과 팬들이 재밌을 만한 새로운 것을 제시해야 하는 사람들인데 쉽게 말해 '쇼미더머니' 말고도 재밌는 게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스스로가 확인해야 되고 팬들한테 확인을 시켜줘야 한다. 그 아이디어 중 하나로 '쇼미더머니'로 이뤄낸 성공을 다 얻은 채로 '쇼미더머니'가 이전 많은 일이 벌어졌던 홍대로 다시 돌아간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봤다"고 설명했다. 물론 더 콰이엇의 말도 틀렸을 수 있다. 잠시 숨을 고른 한국 힙합이 다시 폭발적인 성장을 할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한국 힙합의 미래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래퍼들과 리스너들이 있는 한 한국 힙합이 쉽게 망할 리는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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