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SDI는 AI(인공지능) 데이터센터와 휴머노이드 등 피지컬 AI를 배터리 사업의 새로운 성장축으로 키우고 있다. 전기차 시장 성장세가 둔화한 가운데 AI 산업이 에너지저장장치(ESS)와 무정전전원장치(UPS), 배터리백업유닛(BBU)부터 로봇용 배터리까지 새로운 수요를 만들면서다. AI 데이터센터용 배터리가 이미 실적 개선에 기여하기 시작한 만큼 전기차 중심이던 사업 영역을 데이터센터와 로봇으로 넓혀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AI 전력 수요가 연 새 시장…ESS·UPS·BBU 판매 확대
8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SDI는 AI 데이터센터용 고출력 배터리 공급을 확대하는 동시에 휴머노이드 등 피지컬 AI 시장을 겨냥한 배터리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AI 확산으로 대규모 데이터센터와 로봇 시장이 함께 성장하면서 삼성SDI가 주력해온 각형·원통형 배터리의 수요처가 넓어지고, 개발 중인 전고체 배터리를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장이 넓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사업 기회가 현실화한 분야는 AI 데이터센터다. 삼성SDI는 올해 2분기 매출 3조7688억원, 영업이익 2038억원을 기록하며 7분기 만에 영업흑자로 돌아섰다. 이 가운데 배터리 사업은 매출 3조5190억원, 영업이익 1593억원으로 흑자 전환했다.
AI 데이터센터 관련 수요가 실적 회복에 힘을 보탰다. 삼성SDI는 상반기 전력용 ESS와 UPS·BBU용 고출력 제품을 중심으로 AI 데이터센터 수요에 대응한 점을 실적 개선 요인으로 꼽았다. 2분기에는 UPS와 BBU 등에 사용하는 고출력 배터리 판매도 증가했다. 전기차 수요 둔화로 주력 시장의 성장 속도가 떨어진 상황에서 AI 데이터센터가 새로운 배터리 수요처로 부상한 셈이다.
AI 데이터센터와 배터리 시장을 연결하는 핵심은 전력이다. AI 모델의 학습과 추론을 담당하는 GPU(그래픽처리장치) 등 고성능 가속기를 대규모로 가동하면서 데이터센터의 전력 사용량이 빠르게 늘고 있다. 서버 운영은 순간적인 정전이나 전력 부족에도 영향을 받을 수 있어 전력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공급하느냐가 중요하다.

전력 수요가 늘면서 배터리가 담당하는 영역도 확대되고 있다. ESS는 전력을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공급해 데이터센터와 전력망의 수급을 보완한다. UPS는 정전이나 전압 이상이 발생할 경우 비상 전력을 공급한다. 서버 랙 가까이에 설치하는 BBU는 전력 수요가 순간적으로 급증할 때 개별 서버의 전력 공급을 보조한다.
AI 데이터센터 증설이 ESS와 UPS, BBU라는 서로 다른 배터리 시장을 동시에 키우는 구조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사용되는 배터리 기반 UPS의 지난해 신규 용량은 45기가와트(GW)로 전년보다 30% 증가했다. AI 인프라 투자 확대가 전기차와 별개의 대규모 배터리 시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삼성SDI는 새로운 수요에 맞춰 기존 제품군의 적용처를 확대하고 있다. UPS에는 각형 배터리를 공급하고 BBU에는 고출력 원통형 배터리를 활용한다. 전기차용 각형 배터리와 전동공구 등에서 기술력을 축적해온 원통형 배터리의 수요처가 AI 인프라까지 넓어지는 것이다.
생산능력도 확대한다. 삼성SDI는 AI 데이터센터 투자 증가에 따른 UPS 수요에 대응해 관련 배터리 생산능력을 늘리고 BBU용 고출력 원통형 배터리 생산도 확대할 계획이다. 미국에서는 전력용 ESS 수요 확대에 대응해 현지 생산 기반을 강화하고 있다. AI 산업의 성장과 함께 데이터센터 전력 인프라 투자가 이어질 경우 전기차 의존도를 낮출 수 있는 새로운 매출 기반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커진다.
로봇 시대 선제 대비…전고체로 다음 시장 노린다
AI 데이터센터가 현재 실적에 기여하는 시장이라면 휴머노이드 등 피지컬 AI는 다음 성장 기회다. AI가 소프트웨어와 데이터센터 안에서 작동하는 단계를 넘어 실제 공간에서 움직이는 로봇으로 확장할수록 배터리가 필수 부품으로 자리 잡기 때문이다.
특히 휴머노이드는 배터리에 요구하는 조건이 까다롭다. 사람과 비슷한 크기의 제한된 공간에 배터리를 넣으면서 장시간 움직여야 하고 여러 관절과 모터를 작동시키기 위한 높은 출력도 필요하다. 배터리가 무거워지면 로봇 자체의 이동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높은 에너지밀도도 중요하다.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움직이는 만큼 안전성 역시 핵심 요구 조건이다.
삼성SDI에는 고출력 원통형과 전고체 배터리라는 새로운 사업 기회로 연결된다. 전동공구처럼 순간적으로 높은 출력을 요구하는 제품에 공급해온 원통형 배터리 기술을 로봇 시장으로 확장하는 전략이다.

중장기적으로는 전고체 배터리가 피지컬 AI 시장을 겨냥한다. 삼성SDI는 전기차를 중심으로 개발해온 전고체 배터리 '솔리드스택'의 적용 영역을 휴머노이드와 각종 로봇으로 넓히고 있다. 기존 각형 제품과 별도로 로봇 등에 적용할 수 있는 파우치형 전고체 배터리도 개발 중이다.
전고체 배터리는 액체 전해질을 고체 전해질로 대체해 높은 에너지밀도와 안전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삼성SDI는 황화물계 고체전해질과 무음극 기술을 활용해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하고 있으며 주요 고객사를 대상으로 샘플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양산 목표 시점은 2027년 하반기다.
AI 시대는 삼성SDI에 전기차 이후의 배터리 시장을 넓힐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데이터센터에서는 ESS와 UPS·BBU가 이미 새로운 수요를 만들며 실적 개선에 기여하고 있고, AI가 현실 공간으로 확장되면 휴머노이드와 로봇이 원통형·전고체 배터리의 새로운 시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전기차 시장에서 축적한 배터리 기술을 AI 인프라와 피지컬 AI로 확장하면서 삼성SDI가 AI 시대를 새로운 도약의 계기로 만들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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