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계방송 언어에 대해서 글을 쓸 때마다
'이걸 누가 관심을 가질까?'
솔직히 이런 생각에 걱정입니다.
그런데 써 놓고 보면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셔서 계속 생각이 나는 게 있을 때마다 써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별 의미 없는 '플레이'라는 단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외야에서 내야의 각 베이스 혹은 홈으로 야수를 거쳐서 공을 전달하는 과정을 우리는 '중계'라고 합니다. 한자어로는 ‘中繼’고요.
사전적인 의미는 ‘중간에서 이어줌’입니다. 영어로는 ‘릴레이’(relay)입니다.
그런데 방송을 듣다 보면 이상합니다. 캐스터, 해설 모두 그냥 ‘중계’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뒤에 '플레이'를 꼭 붙입니다.
그래서 이 행위는 '중계 플레이'라고 모두가 부르고 있습니다.
"중계 플레이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지금은 중계 플레이가 좋았다."
이런 캐스터, 해설의, 이야기를 자주 들어보셨을 겁니다.

자! 그럼 위 문장에서 플레이를 빼보겠습니다.
"중계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지금은 중계가 좋았다."
의미가 다른가요?
아니요. 같습니다.
그럼 그냥 '중계'라고 하면 되는데 왜 뒤에 ‘플레이’를 붙이는 걸까요?
제 칼럼을 꾸준히 읽어보신 분이라면 짐작하실 겁니다. ‘중계 플레이’는 일본 용어입니다. 일본에서 한자어 '중계'에 영어 '플레이'를 붙여서 츄게이 프레이 (中継プレイ)라는 용어를 만들었고, 이 용어가 여과 없이 우리 야구 용어에도 쓰이고 있습니다.
우리가 야구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별생각 없이 여기저기에 '플레이'를 붙이게 된 시발점이 바로 '중계 플레이'입니다.

저는 단순히 일본 용어를 썼다고 해서 이게 잘못됐다는 게 아닙니다. 어차피 ‘야구’, ‘투수’, ‘타자’, ‘유격수’, ‘안타’ 등의 수많은 야구 용어가 일본에서 그대로 온 용어들입니다. 대체가 불가능한 용어는 그냥 쓰면 됩니다.
문제는 우리가 여기에 또 창작을 해서 덧붙이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는 야구장 안에서의 많은 동작에 '플레이'를 덧붙이는 습관이 붙어버렸습니다.
저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저도 이게 오랜 습관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병살 플레이', '주루 플레이'가 그것입니다.
일본에서는 츄게이 프레이는 쓰더라도 병살 플레이와 주루 플레이는 쓰지 않습니다. 즉, 병살 플레이와 주루 플레이는 우리의 창작물입니다.
병살 플레이는 병살 과정에서의 수비 행위를 말하는 듯합니다. 이 경우 그냥 이 행위 자체가 ‘더블 플레이’라서 더블 플레이를 쓰면 되는데 ‘병살 플레이’라는 말이 가끔 쓰입니다. 일본의 경우 ‘따부르 프레이’로 쓰고 있습니다. 더블 플레이죠. ‘주루 플레이’는 그냥 ‘주루’라고 하더라고요.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바는 ‘일본용어니까 쓰지 말자’가 아닙니다.
지난 칼럼에도 제 스승 임주완 캐스터의 가르침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던 적이 있는데, 다른 사례 하나를 들어드리겠습니다. 교육 기간 동안에 이런 말씀을 해주셨던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일본어인 줄 모르고 쓰고 있는 표현들이 있어요. 대표적인 게 '곤색', '기라성' 또 '발목을 잡다'입니다. 곤색은 감색 혹은 남색으로, 기라성은 샛별로, 발목을 잡다는 덜미를 잡다로 쓰는 것이 맞아요.
저는 이 가르침을 철저히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2000년대 초반 제가 일을 시작하고 얼마 안 되는 시점부터 많은 매체에서 ‘발목을 잡다’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하더니 차차 그 빈도가 막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진 겁니다.
옛날 신문의 검색 결과를 보더라도 이 ‘발목을 잡다’라는 표현은 2000년대 들어오기 전까지는 거의 쓰지 않던 표현임을 알 수 있습니다. 1920년부터 1999년까지 ‘발목을 잡다'는 단 34회 검색이 됩니다. 80년대 들어와서 쓰인 두 차례의 기사를 제외하면 나머지 32회의 검색 결과는 진짜 발목을 잡는 행동을 묘사한 표현이지 요즘 쓰는 ‘덜미를 잡다’와 같은 의미로 쓰지 않았습니다.

저는 본격적으로 이 표현이 대중언론에서 쓰인 이유를 만화 ‘슬램덩크’ 때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1992년부터 공식으로 라이선스 됐던 이 만화는 국내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끌었는데 이 만화책에서 서태웅, 채치수를 비롯한 많은 북산의 인물들이 강백호에게 이야기하는 말이 있거든요.
‘내 발목을 잡지 마!’
이는 ‘足を引っ張る(아시오 힛빠루)’의 번역체라고 합니다.
1990년대에 이 만화를 본 세대들이 2000년대에 언론계에 진출해 기사를 생산하면서 '발목을 잡다'가 스포츠계에서 굳어진 것이 아닌가 추측합니다.

2018년 정도였을 겁니다. 저도 이 표현을 써야 하는지 아니면 이건 잘못된 일본식 표현이라고 이 표현을 쓰는 사람들과 싸워야 하는지를 스승에게 물었습니다.
언어는 항상 변해요. 내가 교육을 하면서 정우영 씨에게 그런 내용을 이야기를 했다면 그건 그 당시의 이야기로 생각하는 것이 맞아요. 지금 사람들이 그 표현을 널리 쓰고 있으면 그냥 두세요. 우리는 대중의 생각과 싸우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저는 그 당시의 가르침을 존중하면서 지금까지 방송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발목을 잡다’를 방송에서 쓰지는 않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
‘제가 배웠습니다! 제 말이 맞습니다’
라고 우기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일본 용어 중에 잘못된 조어나 아예 잘못된 용어는 바꾸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는 생각은 늘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도 하나씩 예를 들어드리겠습니다.
'잘못된 조어'의 대표적인 경우는 ‘포볼(four ball)’입니다. 원래 용어는 ‘볼 포(ball four)’인데 이게 일본에서 포볼이 됐고, 우리나라에서는 90년대까지 방송에서도 공식용어처럼 쓰였습니다. 지금도 물론 현장에서는 포볼을 가끔 쓰고 있기는 합니다만 KBO 허구연 총재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포볼’은 대중들에게 ‘볼넷’이 됐습니다.
'아예 다른 의미의 잘못된 용어'는 ‘바스타’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Fake bunt and Slash’로 가장 널리 알려진 번트에서 강공으로 전환하는 동작을 일본에서는 ‘바스타’라고 합니다. 어원을 알 수 없습니다. 제가 예전에 썼던 책, ‘야구장에 출근하는 남자’에서 페이크 번트가 어쩌다가 바스타가 됐을까를 추측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 추측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진실은 알 수 없습니다. 보는 관점에 따라서 일본어에는 'ㅓ'발음이 없기 때문에 'burster'나 'buster'가 바뀐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하지만 burster는 'Cloud burster'로 아주 높게 뜬 플라이볼의 관용적 표현으로 쓰여요. 그러니까 이건 아닐 것 같습니다.
일본 야구 관련 홈페이지에 아무리 검색을 해도 나오지 않더라고요.
아무튼 이 ‘바스타’도 2000년대까지 중계방송에서 캐스터, 해설이 모두 썼습니다. 고백하자면 저도 쓴 기억이 있습니다.
이후 많은 이들이 노력하면서 현재 이 동작은 ‘페이크 번트’ 혹은 ‘공격(강공) 전환’으로 완전하게 대체됐습니다.

이 글의 시작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왜 우리는 어떤 동작에 '플레이'를 뜬금없이 붙일까?'
라는 질문으로 이 글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그 모든 시작은 ‘추게이 프레이'라는 잘못된 조어의 일본식 합성어가 여과 없이 들어와서 '중계 플레이'가 됐고, 이게 우리나라에서는 오히려 'OO 플레이'로 계속 확장이 되고 있다는 것이 그 질문에 대한 답이었습니다.

저는 이게 단순한 문제 같지 않습니다.'플레이'는 어디에 붙여도 다 말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추세로 가다 보면 야구장의 모든 행위에 플레이가 붙게 될지도 모릅니다.
"지금 저 타자는 타격 플레이가 환상적이었어요."
"투수의 투구 플레이가 예술이군요."
"감독의 교체 플레이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우리가 이런 말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나요?
그럼 마지막으로 질문드리겠습니다.
'플레이'
안 붙이는 게 맞습니까?
아니면 그냥 쓰기 시작한 거 언어는 유기체라 계속 쓰는 게 맞습니까?
<SBS스포츠 정우영 캐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