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의지가 워낙 강했다” 김만배 ‘대장동 뇌물’ 100쪽 판결문엔... [법없이도 사는법]
지난 14일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가 수원지법 형사 11부(재판장 신진우)로부터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습니다. 대장동 개발 사업을 도와 달라고 최윤길 당시 성남시 의장에게 청탁하고 뇌물을 공여한 혐의로, 대장동 사건과 관련한 김씨의 첫 유죄 판결입니다. 뇌물을 받은 최 전 의장에게는 징역 4년 6개월이 선고됐습니다. 다만 재판부는 실형을 선고하면서도 두 사람을 법정구속하지는 않았습니다.
대장동 사업자인 김씨에 대한 1심 판결문은 총 96쪽으로 100쪽 가까운 분량입니다. 두 사람이 서로 뇌물을 주고 받았다는 혐의 내용에 비해 그 분량이 상당할 뿐 아니라 대장동 초기 성남시, 사업자들, 주민들이 어떤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는지, 김만배씨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사건의 핵심 증거인 정영학 회계사의 녹취록에 대해서도 증거능력을 인정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법원, ‘정영학 녹취’ 증거능력 인정
대장동 사건 초기이던 2021년 9월, 천화동인 5호 소유주 정영학 회계사는 김만배씨, 남욱씨와의 대화 내용을 휴대폰으로 녹음해 USB에 담아 검찰에 제출했습니다. 대장동 사건의 뇌관으로 통한 이 녹취에는 이른바 ‘50억 클럽’인사들에게 대가를 지급해야 한다는 발언, 이재명 성남시장 측으로부터 20억원을 요구받았다는 발언, 이 시장 측에 428억원을 줄 것이라는 발언 내용(걔네가 가지고 있는 게 49%의 반이야) 등이 담겨 있습니다.
이 ‘정영학 녹취’에 대해 김만배씨 측은 “원본과의 동일성이 인정되지 않아 증거능력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복제가 가능한 전자증거는 원본과의 동일성이 인정돼야 증거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정씨 진술에 따르더라도USB가 휴대폰 녹음파일의 사본이고 원본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동일성을 증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법원은 김만배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정영학씨가 “휴대전화로 상대방과 통화를 하면서 그 통화내용을 녹음한 후 파일을 휴대전화에서 USB로 옮겨 보관하고 있었다” “녹음파일 원본을 USB에 사본하는 과정을 직접 수행했다”고 녹음파일 작성 및 제출 경위를 구체적으로 진술한 데다, 본인이 대화 당사자로 참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씨가 어떤 부분이 편집·조작됐는지 구체적으로 지목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법원이 원본과의 동일성을 인정하는 근거가 됐습니다. 그에 따라 앞으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나 김만배·남욱·유동규 등 대장동 업자들의 재판에서도 ‘정영학 녹취’가 증거로 인정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습니다.
◇남욱 “이재명 시장 공사설립 의지가 워낙 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 사건 청탁의 절박한 필요성’이라는 중간제목으로 공사 설립의 필요성을 인정했습니다. 남욱씨 진술에 따르면 2012년 2월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의 공사설립 의지가 워낙 강해서 ‘우리 할아버지가 와서 부탁해도 민간개발은 안된다’고 했다고 합니다. 민간개발을 원했던 대장동 주민들은 처음에는 공사가 설립되면 무조건 수용방식으로 개발될 것으로 보고 공사 설립을 반대했지만, 당시 부산저축은행 사태로 대장동 부지가 헐값에 경매로 넘어갈 상황이어서 더는 시간적 여유가 없기도 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민간개발을 추진하던 남욱씨도 공사설립을 통한 민관합동 개발방식으로 일을 진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성남시의회에서 새누리당의 반대가 공사 설립에 걸림돌이 되자 최윤길씨를 의장으로 만들어 공사 설립 조례안을 통과시키는 작업에 착수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100%공공개발을 추진하던 이재명 성남시장도 높은 부채비율과 주민반대 등의 문제로 민관합동개발로 선회합니다. 2013년 2월 주민들에게 대장동에서 3700억원의 이익을 남겨 2000억원은 1공단 공원화 사업에, 나머지 1700억원은 대장동 주민의 택지보상 등에 사용하겠다는 계획을 표명했습니다. 그러면서 “공사가 설립돼야 대장동 사업을 할 수 있는데 새누리당이 반대입장으로 당론을 정해 협조하지 않고 있다”고 어려움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최윤길 의장선출 기획하고 실행한 김만배
판결문에 따르면 최윤길 의원을 의장으로 만들어 공사설립을 추진하는 방안을 기획한 사람은 김만배씨입니다. 그는 대장동 사업에서 법조계·정치계 인맥을 활용한 대관업무를 담당해 왔습니다. 김씨는 상대당이던 민주통합당 대표의원에게 부탁해 당내경선에서 떨어졌던 최윤길씨에게 표를 몰아주도록 했고 결국 최씨는 의장으로 선출된 후 새누리당을 탈당합니다.
이후 2013년 2월 새누리당의 반대로 가결되지 못했던 공사 설립 조례안이 다시 상정됩니다. 투표방식을 둘러싸고 갈등이 일자 최윤길 의장은 의장의 의사정리권으로 무기명투표 방식으로 진행했습니다. 새누리당 의원들이 반대하며 의사장 밖으로 퇴장하자 이를 막으려는 대장동 주민들과 몸싸움이 벌어졌지만 정회 없이 그대로 표결을 진행해 조례안이 통과됐습니다.
재판부는 그에 기반해 최씨가 남욱씨 등으로부터 청탁을 받은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또한 김만배씨가 직접 청탁을 하지는 않았더라도 핵심적 경과를 촉진해 본질적 기여를 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최씨는 자신이 도와준 데 대한 대가를 요구했고 그에 따라 김만배씨가 대장동 사업이 완성 단계에 이른 2021년 1월 최씨를 화천대유 부회장으로 채용하면서 성과급 명목으로 40억원을 약정하고, 연봉 등의 명목으로 8000여만원을 받아갔다고 재판부는 판단했습니다.
검찰은 이번 판결을 두고 “대장동 사업 초기부터 이재명, 정진상 등과 대장동 일당들 사이에 불법 유착관계가 형성됐다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공사 설립이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의 중요 공약이었고 대장동 일당들이 이를 대신 실천해 줬다는 것입니다. 최윤길씨가 대장동 사업을 도와 주고 대가를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남욱씨 등이 ‘이재명 시장 측 몫’이라며 언급한 ‘428억원 약정 의혹’에 대해서도 면밀히 살펴 보겠다는 입장입니다.
반면 김만배씨는 청탁 사실을 부인하며 항소했습니다. ‘본편’인 이재명 대표 재판에서도 이번 판결에서 인정된 대장동 사업과정의 부정청탁과 뇌물수수의 사실관계를 깨거나, 적어도 이 대표와의 연관성을 부인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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