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 공포까지 덮쳤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가능성 낮아
SVB 파산 후폭풍
은행 위기의 확산여부에 대해서는 ‘그렇다’는 답을 내려야 할 것 같다. 현재의 위기는 장기간 지속됐던 저금리에 순치돼 부주의하게 행동했던 경제 주체들이 대가를 치르고 있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기축통화국인 미국이 금리를 올린 후에는 늘 소란이 있었다. 1980년대 초의 긴축 이후에는 미국의 상업은행들과 중남미 국가들이 위기를 겪었고, 1980년대 중반의 긴축 직후에는 미국 S&L(주택대부조합)들이 대규모로 파산했다. 2004~2006년의 긴축 직후에는 미국 부동산 시장의 붕괴가 뒤따랐다.
이번 은행위기는 금리 인상의 후폭풍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보편성을 갖지만 조금 독특한 측면도 있다. 과거 은행위기는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려간 대출자가 부실해지면서 발생했다. 2008년 금융위기도 주택을 사기 위해 돈을 빌렸던 저신용자가 부채를 상환하지 못한 데 따라 은행이 타격을 입으면서 발생했고, 2000년대 초까지 빈번했던 한국의 은행위기도 막대한 대출을 받았던 재벌기업들이 부실화되면서 나타났다. 그런데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SVB와 CS는 고객의 잘못보다는 금융기관 스스로가 시장에서 잘못된 포지션을 잡으면서 여려움에 봉착하고 있다. SVB는 금리 상승 국면에서 장기국채에 아무런 헤지수단 없이 투자하는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했고, CS는 금융회사 ‘그린실 캐피털’과 헤지펀드 ‘아케고스 캐피털’ 등에 대한 투자 실패에 내부통제 결함이라는 의혹이 더해지며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특히 긴축의 시차효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서브프라임 위기를 복기해 보면, 당시에도 금리 인상이 부실 발생을 촉발시키는 역할을 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2004년 6월부터 2006년 6월까지 기준금리를 1%에서 5.25%까지 올렸는데, 금융시장에서 서브프라임 위기가 감지되기 시작했던 때는 2007년 8월 프랑스 BNP파리바가 미국 모기지 채권이 편입된 펀드에 대한 환매를 중단하면서부터였다. 금리 인상이 멈춰진 이후 1년 2개월이 지난 후 문제가 발생했던 것이다. 중앙은행의 긴축 사이클이 종결되더라도 금리가 높은 수준에서 유지된다는 사실 만으로도 누군가에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투자자 워런 버핏은 말했다. ‘수영장의 물이 빠져봐야 누가 수영복을 입지 않고 헤엄쳤는지 알 수 있다’고. 연준의 긴축이 지속되고 있어 아직은 수영장의 물이 다 빠지지도 않았다고 봐야한다.
그럼에도 은행위기가 글로벌 금융위기급으로 확대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글로벌 경제의 안정성이 높아졌다기 보다는 2008년 리먼브라더스 파산 이후 ‘파산 없는 자본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리먼브라더스 파산이 중앙은행과 관료들에게 남긴 트라우마는 매우 컸다. 실물 경제는 ‘대침체(great recession)’로 불릴 정도로 후퇴했고, 미국의 부실은 전 세계로 확산됐다. 차라리 리먼 브라더스에게 구제금융을 지원했던 것이 더 나았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을 법하다. 리먼 다음 타자로 기론되고 있었던 AIG 등의 부실 대마(大馬)는 줄줄이 살아남았다.
파산은 어떤 측면에서는 자본주의의 자정작용이기도 하다. 리스크 관리에 실패한 플레이어에게 책임을 물어 시스템의 기강을 세우고, 비효율적인 경제주체들이 퇴출됨으로써 시스템의 효율은 높아진다. 2008년 이후의 주류 자본주의는 대마의 ‘파산’을 막음으로써 심각한 위기 발생은 막고 있지만, 장기적인 활력은 떨어지는 길을 걷고 있다. 인플레이션 때문에 유동성 공급을 못할 것이라고? 작년 가을의 영국을 보시라. 공격적인 금리 인상과 유동성을 직접적으로 줄이는 양적긴축을 예고하고 있는 와중에서 장기금리가 상승하면서 금융시스템이 흔들리자, 영란은행은 기한부 양적완화를 실시하는 초현실주의적 행동을 보여줬다. 금융시스템이 붕괴되면 돈이 돌지 않으면서 경제는 곧바로 디플레이션 상황으로 반전될텐데, 물가 부담 때문에 중앙은행 등이 자제력을 발할 것 같지는 않다. 일차적으로 재할인 기준 완화를 통해 중앙은행이 민간금융기관에 유동성을 공급할 것이다. 산발적으로 부실이 돌출되면서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에 긴장이 강화되는 모습이 상당 기간 지속되겠지만, 군소 금융기관이 아닌 시스템에 영향을 줄만한 거대 금융기관의 파산으로 2008년과 비슷한 금융위기가 재연될 가능성은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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