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온 청소년 받아줄 쉼터 부족…범죄 노출·재입소 '악순환'
지난 9일 오후 찾은 대구 중구 종로1가 대구여자단기청소년쉼터. 분홍색 시트지가 붙여진 철제문을 들어서자 관리인력들이 일하는 사무실부터 상담실과 식당, 아이들의 생활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방 안에는 2층침대 2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고, 거실 곳곳에는 전면거울과 월별 일정표, 당번 게시판 등이 붙여져 있어 흡사 학교 기숙사를 연상케 했다.
가정 밖 청소년의 피난처인 이곳에는 현재 청소년 10명이 상주하고 있고, 센터장 등 관리인력 8명이 교대로 근무 중이다. 부모로부터 지속적인 학대를 당하거나 마땅한 보호자가 없는 이들이 이곳을 찾는다. 입소대상은 만 9~24세로, 입소 대상 선정시 만 19세 미만 청소년을 우선한다.
◆자립은 막막, 범죄위험에도 노출… "쉼터 역할 커"
이들이 단기청소년쉼터에서 머물 수 있는 기간은 최대 2년이지만 상당수 아이들이 쉼터를 떠난 뒤 생계가 막막해 이곳을 다시 찾는다. 녹록지 않은 현실은 물론, 한편으로는 쉼터가 이들에게 제공하는 '보호막'을 체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 2021년 11월에 이곳에 처음 입소한 김주현(가명·18) 양도 지금껏 퇴소와 재입소를 반복 중이다. 쉼터를 떠난 후 막상 먹고 살 방법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미용실에서 인턴으로 근무 중인 그는 내년에 자립지원수당을 받을 수 있는 시기에 맞춰 자취를 준비 중이다.
김 씨는 "쉼터의 경우 아무래도 단체생활이다 보니 외출이나 휴대폰 사용 등에 제약이 있다. 그런 제약을 받는 게 답답해 퇴소를 했지만 당장 살 집을 구하기도 어려워 다시 들어왔다"고 했다.
2년 전 자립했던 정유리(가명·21) 씨는 최근 취업 사기를 당한 뒤 생활고를 겪다 재입소를 결심했다. 취업을 시켜준다는 말에 신분증을 미리 보냈다가 명의를 도용당해 휴대폰이 불법으로 개통된 것이다. 심지어 무릎 관절염이 심해져 하고 있던 아르바이트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됐다.
정 씨는 "아무래도 일자리가 귀하다 보니 취업을 시켜준다는 말에 너무 쉽게 속았던 것 같다. 최근 일자리를 구해 돈이 어느정도 모일 때까지 이곳에 있을 생각"이라며 "이곳에서 생활하는 걸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개인적으론 불안, 우울감 대신 안정감을 찾을 수 있는 공간이다보니 큰 도움이 된다. 집 보다는 훨씬 낫다"고 했다.
여성가족부가 2022년 시행한 '위기청소년 지원기관 이용자 생활실태조사' 자료는 가정 밖 청소년의 범죄 노출 위험성을 통계적으로 보여준다. 가정 밖 생활을 경험한 9~18세 '위기청소년' 4천203명 중 친구나 선후배 등으로부터 폭력 피해를 당했다 응답한 비율은 15.9%로 유사 연령대 대조군(5.9%)에 비해 3배 이상 높았다. 성폭력 피해 경험도 4.3%로 대조군(1.8%)과 비교해 2배 이상 높았다.
경찰은 일단 쉼터에 자리잡은 청소년들은 규칙적이고 통제된 생활을 통해 범죄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진단한다. 대구 서부경찰서 한 학교전담 경찰관은 "가출 학생들이 이른바 '가출팸'에 합류하거나 성인남성에게서 숙식을 제공받는 과정에서 '조건만남' 등 성범죄에 노출되거나 경제범죄에 휘말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반면 쉼터에 자리 잡으면 비행이나 범죄에 연루될 가능성을 크게 낮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퇴소 후 지원책 미비, 센터 운영도 빠듯…사회안전망 강화해야
다만 빠듯한 쉼터 운영예산과 아직까지 부족한 '퇴소 후 지원책'은 개선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대구에는 '가정 밖 청소년'을 위해 일시쉼터, 일시고정형 쉼터, 남·여 단기쉼터, 남·여 장기 쉼터 등 청소년 쉼터 6곳이 있다. 일시쉼터는 7일, 단기쉼터와 장기쉼터는 최장 2년에서 4년까지 머무를 수 있다. 여성가족부는 2년 이상, 직전 6개월 보호한 청소년에게 3년 동안 월 40만원의 자립지원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문제는 가정 밖 청소년들 중 2년 넘게 쉼터를 이용하는 이들이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2021년 1월부터 2022년 8월까지 전체 쉼터 거주 청소년 중 5.8%만 2년 이상 쉼터에 머물렀던 것으로 드러났다. 같은 기간 쉼터에 6개월 미만 머물렀던 청소년은 80.1%에 달했다.
청소년 쉼터 종사자들은 쉼터에서 단순한 보호 외에 이곳을 거쳐간 아이들이 지속적으로 사회안전망의 도움을 받으며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일정 기간 쉼터에 머문다고 해서 청소년을 둘러싼 환경 자체가 개선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쉼터 관련 예산과 인력도 한계가 뚜렷한 점도 개선이 필요한 지점이다. 대구시에 따르면 올해 청소년 쉼터 6곳에 지원되는 예산은 28억2천1백만원으로 쉼터당 약 3억원~5억원 규모다. 대부분 쉼터 인건비 등으로 사용돼 아이들에게 돌아가야 할 사업비는 전체 예산의 20% 정도다. 이마저도 인력이 부족해 직원들이 상담사와 생활지도사 역할을 사실상 겸임하고 있어 고충이 크다.
이상분 대구여자단기청소년쉼터 센터장은 "쉼터를 찾는 청소년들에게 가장 큰 문제는 이들이 쉼터를 떠날 경우 최소한의 보호 자원도 없다는 것이다. 센터에 나가자마자 사기를 당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쉼터 차원에서도 퇴소한 아이들과 관계를 이어나가는 등 사후 지원을 하고 싶지만 예산, 인력 한계가 크다. 지금도 부족한 인력으로 겨우 당직근무를 유지하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김지효 수습기자 jy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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