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 호칭도 ‘○○님’…K-건설, 젊어질 수 있을까?[비즈니스 포커스]

2024. 10. 1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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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계에서 조직문화가 가장 보수적이라고 알려진 곳이 바로 건설업계다. 건설업은 중후장대한 수주산업으로 현장에선 발주처가 요구하는 공사기한을 맞추기 위해 모두가 지시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한다. 이에 따라 “까라면 까”라는 소위 ‘꼰대 문화’가 강한 곳으로 유명하다.

이런 건설업계조차 변화의 바람을 피하기는 어려웠다. 10여 년 전부터 시작된 임금 및 직급체계 개편의 흐름이 또다시 본격화하고 있다. ‘사원(주임)-대리-과장-차장-부장’으로 이어지는 직급체계를 유지하는 대형건설사는 몇 남지 않았고 조직 구성원들의 호칭은 단순해지는 추세다.

각 기업에선 직급 개편을 통해 수평적이고 유연한 조직문화와 성과주의가 자리 잡기를 기대하고 있다. 시장 환경이 나날이 악화하는 가운데 ‘역피라미드형’ 인력구조가 심화하면서 비용은 느는 반면, 업무효율은 떨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산업구조가 그대로인 한 이 같은 변화가 실질적인 효과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 일각에선 결국 단순화한 직급만큼 임금체계만 수평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님’·‘프로’로 통일된 호칭

최근 대우건설은 창사 이래 수십 년간 이어온 직급체계를 ‘전임·선임·책임’으로 단순화했다. 대형건설사 중에선 가장 늦은 편이다. 특히 책임의 범위가 과장에서 부장까지로 매우 넓다. GS건설은 한술 더 떴다. 기존에도 과장까지 전임, 차·부장은 책임이라 불렸지만 9월 도입된 새 인사제도로 인해 팀장 이하는 모두 ‘○○님’으로 통합됐다.

두 회사는 비교적 젊은 오너의 취임 이후 ‘수평적이고 유연한 조직’을 강조하는 분위기다. 대우건설은 2022년 중흥그룹에 인수되고 나서 1968년생인 ‘중흥 2세’ 정원주 회장 체제가 자리 잡았다.

허창수 GS그룹 명예회장의 장남인 GS건설 허윤홍 대표는 1979년생으로 지난해 최고경영자 취임 후 첫 임원인사에서 김응재 호주인프라수행담당, 김병수 주택영업2담당, 기노현 프리팹사업그룹장, 유영민 경영전략그룹장 등 40대 4명을 임원으로 선임하기도 했다. 허 대표는 현장 위주의 유연한 조직, 성과주의 등을 강조하고 있다. 복장도 자율화돼 한여름에 반바지를 입는 직원도 늘었다.

이 같은 변화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2018년 SK에코플랜트(옛 SK건설)가 부장 이하 직급을 ‘프로’로 통일한 뒤 경쟁사들 역시 직급 개편을 단행했다. HDC현대산업개발, 롯데건설, 현대건설, 삼성물산 건설부문도 차례로 변화의 주인공이 됐다.

때마침 재계에 ‘애자일(Agile) 경영’이 화두가 된 영향도 있었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신속한 의사결정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조직을 유연하게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 애자일 경영철학의 핵심이다.

이로 인해 그룹 전체의 인사체계가 개편되면서 건설사도 그 영향권에 놓이게 됐다. 건설사들은 다른 그룹사보다 한발 늦게 움직이는 식이었다. 2020년에는 보수적인 조직문화로 유명한 현대건설이 직급을 매니저·책임매니저로 단순화했는데 2019년부터 현대차그룹의 ‘수평적 조직문화 만들기’ 방침이 전사에 확산한 영향이었다.

최근 건설사들의 직급 개편 움직임을 보면 예전과는 다른 흐름이 읽힌다. 스스로 변화해야 할 필요성에 따라 인사 시스템을 바꿨다는 것이다.

통상 국내 건설사는 평균 근속연수나 연봉이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일명 ‘워라밸’ 측면에선 인기 없는 직장이다. 건설 프로젝트 현장의 근무환경이 열악하고 출퇴근이 따로 없이 장시간 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토목직군의 업무 강도가 강해 이직도 잦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젊은 건설사 직원들 사이에선 ‘탈건’(건설사를 탈출해 다른 업계로 이직한다는 뜻)이라는 용어가 널리 퍼져 있기도 하다. 결국 몇 년 사이 건설사들의 역피라미드형 인력구조는 더욱 심화한 편이다.

각 사는 이 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직급개편을 통해 조직에 수평적 문화와 성과주의를 도입하려 한다는 것이다. 일부 기업들은 직급과 함께 임금체계도 개편했다. 이미 대부분 호봉제에서 ‘페이밴드(pay-band)’로 임금체계가 변화한 지 오래인데 페이밴드는 일종의 차등 연봉제로 기본급의 상한과 하한을 정하는 임금 테이블 시스템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몇 년 전 그룹 차원에서 직급개편이 이뤄지면서 우리도 직급을 통합하게 됐다”며 “실제로 젊은 직원들이 업무협의를 위해 차·부장급에게 좀 더 편하게 연락을 취하게 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호칭이 단순해지고 연공서열주의가 사라지면서 동료들의 연봉을 인사팀과 본인만 알 수 있는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조직 내에선 ‘호봉제’ 향수도


이처럼 페이밴드 자체가 성과에 따라 테이블 내 계급이 정해지도록 바탕을 뒀다고 하지만 그동안엔 연차나 직급에 연동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직급이 통합되면서 여러 단계로 촘촘했던 페이밴드 역시 단순화하는 사례가 생겼다는 것이다. 이런 사례에선 “갑자기 서로 다른 직급이 한데로 묶이면서 이로 인해 이익을 본 직원과 손해를 본 직원 사이에서 희비가 갈렸다”는 평가다. 통상 부장급 등 직급이 높은 쪽에서 손해를 보게 된다.

건설사 내부에선 직업 안정성의 측면에서 옛 제도를 선호하는 분위기도 존재한다. 노조와 2년여의 논의 끝에 직급체계는 물론 임금체계도 개편한 대우건설은 매년 1% 임금인상률을 보장하는 등의 호봉제 시스템을 일부 도입했다. 직급 단순화로 인해 손해를 본 임직원의 임금인상분도 일부 보전한다.

임금과 상관없이 업무 특성상 옛 직급체계로 ‘리턴’한 기업들도 있다. 포스코이앤씨(옛 포스코건설)와 (주)한화 건설부문(옛 한화건설)이 대표적이다. 각 공정이 체계적으로 진행돼야 하는 건설 현장에선 강력한 하향식 지시체계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SK에코플랜트, GS건설 등은 조직 내 핵심 관리직인 팀장·부장급 이하나 임원급 내에 한해 직급개편을 단행했다. 부서마다 호칭 및 직급을 다르게 사용하는 ‘반쪽짜리’ 개편도 흔하다. 영업을 비롯한 대외업무 부서가 대표적이다. 국내 정서상 새로운 직급에 익숙지 않은 외부인도 많기 때문이다.

한 건설업계 전문가는 “직급개편의 효과는 결국 그 기업문화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거칠고 각종 리스크가 많은 건설현장에선 수평적인 관계보다 ‘꼰대’에 의한 수직적인 업무지시가 더 신속하고 유연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부인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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