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안 하면 수용소행"…디스코드 가상국가, 협박 테러로 현실을 공격하다

이상무 2026. 2. 12.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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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국가 테러, '진짜 테러' 되다>
디스코드 가상국가 전쟁 문화 확산
테러 인증 경쟁, 계급 상승 수단화
신상털기·명의도용 범행 구조 확산
현실 테러 협박 이어진 스와팅 범죄
10대 중심 가상국가 네트워크 형성
경찰, 엄정 대응...주범 특정해 구속
지난해 12월 15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카카오 판교아지트 건물에 폭파 협박이 있었다는 회사 측 신고가 접수돼 경찰과 군이 수색에 나섰다. 성남=연합뉴스

지난달 5일 오후 6시 5분 KT 휴대폰 개통 상담 게시판에 "분당 본사에 폭탄을 설치했다"는 글이 올라왔다. 느닷없고 건조하기 짝이 없는 문자들 사이로 위협과 협박이 은근했다. 글 게시자는 '김○○'. 그는 태연하게 "오후 9시에 (본사를) 폭파하겠다"고 예고하곤 "토스뱅크로 100억을 입금하지 않으면 칼부림하겠다"면서 공포를 조장했다.

경찰이 분주히 움직였다. 신고를 받자마자 경기 성남시 분당 KT 본사 현장을 꼼꼼히 수색했다. 순찰차로 인근을 확인했고, 기동대 2개 팀을 급파했다. 현장 일대는 순식간에 혼란 상태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그 불안과 혼란을 느긋하고 흐뭇하게 지켜보는 누군가가 있었다.

같은 시간대 한 온라인 커뮤니티 플랫폼 서버. 작성자 A군의 글이 하나 올라왔다. 그는 자신이 올린 글 하나에 KT 본사로 출동한, 그의 말을 옮기면 '호들갑 떠는', 경찰 얘기를 늘어놓았다. 자랑 섞인 말, 으스대는 폼이 역력했다. 그러곤 "VPN 우회로 여러 국가를 거쳤기 때문에 IP추적은 불가능하다"고 자신했다. 소위 '추종자'들이 즉각 환호로 답했다. 사이버 회피 능력이 대단하다면서 경찰을 조롱했다. 공권력과 대기업을 글 하나에 농락한 B군에 대한 '칭송'은 끝을 몰랐다.


10대들이 꿈꾸는 가상국가, 인터넷에 있다

디스코드 가상국가 서버 및 테러 협박범 관계도. 그래픽 강준구 기자

"국민들은 올바른 자세로 전쟁에 임해주시기 바랍니다."

늦은 밤, 온라인 커뮤니티 플랫폼 디스코드의 한 '가상국가' 서버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테러 공지 게시판에는 다른 가상국가 서버에 대한 '선전포고'가 올라왔다. "중립을 선언하면 전쟁 법률에 따라 수용소로 보내겠다"는 문구가 붙었고, 게시글 아래에는 거수경례 이모티콘이 줄줄이 달렸다. 잠시 뒤 상대 서버는 디도스 공격을 받아 마비됐고, 게시판에는 "테러 완료"라는 보고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온라인 공간 속 '전쟁'은 그렇게 승리로 기록됐다.

최근 '폐쇄형 온라인 커뮤니티'인 디스코드와 가상국가 서버가 10대들의 놀이터가 되고 있다. 미국에서 등장했던 디스코드는 게임 이용자들이 음성으로 대화하고 협업하기 위해 만든 플랫폼. 그곳이 2026년 대한민국에서 초대 링크가 있어야 들어갈 수 있는 폐쇄적 공간, 그리고 살벌한 온라인 테러와 전쟁이 벌어지는 가상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이들 디스코드가 10대들 놀이터가 된 이유는 국가 체계를 모방한 '가상국가 서버'에 있다. 서버 하나가 국가가 되고, 운영자는 대통령이나 국왕처럼 최고 권력자가 된다. 정부·국회·사법부·군·외교 채널이 만들어지고 참여자들은 실제 국가인 듯 활동한다. 서버 간 연합을 맺기도 하고 전쟁을 선포하기도 하고, 외교 협상을 벌이기도 한다.

'규모'가 제각각이다. 참여자 500명 이상이면 대형으로 분류된다. 가끔은 연합 서버가 동맹하면서 참여자가 2,000명을 넘기도 한다. A군이 속한 서버가 바로 그런 곳이다. 이런 대형 가상국가 서버가 자리를 잡고 중소형 서버들이 난립해 디스코드 내 가상국가 서버만 수십 개에 이른다.

그곳에도 나름의 체계가 있다. 참여자들은 시민·군인·외교관 등 역할을 맡는다. 규칙에 따라 활동하면 점수와 계급이 올라간다. 외교관은 장관이 되고 군인은 최고 사령관까지 승진할 수 있다. 가장 빠른 승진 방법은 '테러 지시' 수행이다. "다른 가상국가 테러하면 +1점"이라는 공지가 반복된다. 하위 계급 참여자들은 테러 성공 인증 캡처를 올리며 점수를 쌓고, 점수는 곧 권력과 명성이 된다.

A군도 그렇게 '장군'의 자리까지 올랐다. 그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가졌고, 많은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그의 지시에 복종하는 참여자들도 많았다. 그런 그가 KT 게시판에 테러 협박 글을 올린 건 단 하나 이유였다. 더 큰 영향력을 얻기 위해서, 더 많은 추종자들을 원해서다. 그래서 KT 분당 본사를 시작으로 서울역·강남역·부산역·방송사 등에 10차례 협박 글을 게시하며 금전을 요구했다.


가상국가 서버 내 '신상털기→명의 도용→스와팅 범죄'

A군도 가상과 현실을 구분할 정도는 됐다. 치밀하게 머리를 굴렸다는 얘기다. 먼저 KT 본사 테러 협박글 작성자 '김○○'은 거짓이었다. 서버에서 갈등을 겪던 하위 계급 참여자 이름이었다. 마침 서버 내에선 운영진 교체나 징계 등 갈등이 빈번하면서 상대 '신상털기'가 일상이었다. 서울역 등 잇단 협박글에 모두 5명의 이름을 썼는데, 모두 가상국가 서버에서 갈등을 겪었던 인물들이었다. 게시자를 쫓던 경찰이 제일 먼저 찾은 것도 당연히 이들이었다. A군은 이를 노렸다는 듯, 다시 경찰을 조롱했다.

경찰 또한 이를 모르지 않는다. 이미 '스와팅 범죄'로 규정, 이들의 범행 행태 파악을 마친 상태다. 스와팅은 미국에서 시작됐는데, 공중 협박으로 괴롭히고 싶은 상대가 머무는 주거지나 직장으로 경찰특공대(SWAT)를 출동시켜 곤궁에 빠트린다는 의미다. 경찰 관계자는 "가상국가 서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학교·기업· 방송사·철도역 등이 협박 대상이 돼 시민 불안이 확산되는 질 나쁜 범죄"라고 꼬집었다.


가상국가 서버 넘나들며 확산된 10대 스와팅 네트워크

경기 성남시 분당구 카카오 판교아지트 건물 폭파 협박 신고가 접수된 지난해 12월 15일 경찰이 수색을 하고 있다. 성남=뉴시스

경찰은 이미 지난해 10월부터 10대들의 테러 협박 글 대부분이 디스코드 내 가상국가 서버의 소위 '상위 계급 참여자'들이 주도했다는 점을 파악하고 있었다. 예컨대 A군은 현재 소속 가상국가 서버 이전 다른 곳에 몸을 담았는데 이때 만난 B(18)군과 C(18)군과 아는 사이였다. 이 두 명 또한 테러 협박글을 올리는 데 '잔뼈가 굵은 유명 인사'였다. 서로 다른 가상국가 서버를 넘나들며 테러 협박 인증을 성과 삼아 유명세를 늘리고, 이를 바탕으로 낮은 계급 참여자들의 명의를 도용해 괴롭혔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실제로 B군은 카카오 판교 사옥과 KT 분당 본사 협박 글을 10차례, 대통령 암살 글까지 게시했다. C군은 지난해 10월 한 달 동안 13차례 학교 폭파 협박과 119 신고까지 했다.

경찰은 10대 청소년 중심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인정 욕구, 경쟁 심리가 결합돼 괴롭힘으로 이어졌고 결국 현실 범죄로까지 진화했다고 분석한다. A군과 B군을 조사한 조경묵 경기 분당경찰서 강력3팀장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능력을 과시하고 약한 참여자를 괴롭히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태도가 테러 협박이란 범죄로 이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분당경찰서는 최근 A군을 공중 협박 혐의로 구속 송치했고, B군도 같은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C군은 인청경찰청 형사기동대에서 구속 송치한 뒤 기소돼 6일 첫 재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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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hankookilbo.com/news/article/A2026021002520005077)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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