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먹는 부동산신탁?...금융지주 믿고 사업 늘리더니 '부메랑'
신한·우리금융도 유증·영구채 인수 등 지원사격
지주 신용도 믿고 늘린 '책임준공' 확대, 부메랑
부동산 경기 악화가 지속되면서 금융지주들이 관련 자회사에 지속적인 자금 수혈에 나서고 있다. 특히 올해 들어서는 고금리 장기화 '직격탄'을 맞은 저축은행 뿐만 아니라 '책임준공사업' 폭탄을 맞은 부동산신탁사에도 자금 투입을 지속하고 있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KB부동산신탁은 지난달 25일 이사회를 열고 1500억원 규모의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결의했다. KB부동산신탁 지분 100%를 보유한 KB금융이 자금을 댄다. 이로써 KB부동산신탁의 자기자본 규모는 3502억원에서 5002억원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KB금융이 자회사에 유증 형태로 자금을 지원한 것은 지난 2021년 KB캐피탈의 2000억원 규모 유증 이후 처음이다. 다만 KB금융이 지난 6월 KB부동산신탁이 발행한 신종자본증권 1700억원 중 1500억원을 인수했던 점을 고려하면, 올해 KB부동산신탁에만 두 차례나 자금을 수혈하는 셈이다.
신한금융지주 또한 지난 5월 신한자산신탁이 발행한 사모 신종자본증권 1000억원을 전액 인수하면서 자금 지원에 나섰다. 우리금융지주는 지난 3월 우리자산신탁이 진행한 2100억원 상당의 주주배정 방식 유상증자에 자금을 투입했다.
금융지주들이 일제히 자금 수혈에 나서는 것은 지주 산하 부동산신탁의 핵심 사업으로 꼽히는 책임준공형 사업의 수요가 줄어들고 있고, 책임준공 미이행에 따른 채무인수 또한 증가하면서 몸살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부동산 신탁사들의 적자 규모는 올해 들어 크게 확대됐다. 4대 금융지주 부동산신탁사(KB부동산신탁·신한자산신탁·하나자산신탁·우리자산신탁)의 올 상반기 순손실 규모는 2355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592억원 흑자)에 비해 급감하며 적자 전환했다.
금융지주 신용도 기댄 '책임준공' 사업 확대 '부메랑'
이들 신탁 자회사들의 손실은 모회사인 금융지주사 신용도를 앞세워 책임준공형 신탁을 과도하게 확대한 여파로 풀이된다.
금융지주 계열 신탁 자회사들은 2020년부터 2022년 사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렸던 책임준공사업의 수주를 확대했다. 그러나 이후 부동산 경기가 악화하자 해당 사업이 자금 및 대손 부담이란 '폭탄'으로 돌아왔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비금융지주 계열 회사들은 책임준공사업을 확대하면 위험을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생각에 취급을 늘리지 못했던 반면, 금융지주 계열 회사들은 무슨 일이 터져도 금융지주의 지원이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있어 책임준공사업을 끌어왔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금융지주들이 계열 신탁사들에 대한 지원에 예상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진 않는다는 평가도 나온다.
신한 등 일부 금융지주들은 올해 들어 신탁 자회사에 대한 단기차입금 증가를 결의하는 등 지주 차원의 유동성 지원에 나섰지만, 유상증자나 영구채 인수 등에 비하면 효과가 미미하다는 평가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대여금의 경우 유동성을 공급해 주는 것인데 자본으로 간주되지 않기 때문에 부채가 늘어나게 된다"며 "다른 차입금 대비 좋은 조건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최근 KB금융이 KB부동산신탁에 자금을 수혈한 것 또한 지난 6월 신용평가사들이 KB부동산신탁의 단기신용등급을 A2+에서 A2로 하향조정하면서 위기감을 느낀 데 기인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금융권 다른 한 관계자는 "상반기까지만 해도 증자 계획이 없었던 KB금융이 뒤늦게 증자에 나선 것은 손실 확대 속도 등을 볼 때 상황이 심각하다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지주사 추가 지원 가능성도
지주사들의 자본력을 고려하면 부동산신탁 자회사에 대한 지원이 재무적으로 부담을 미치는 수준은 아니라는 게 업계 평가다.
문제는 현재 부동산 시장 업황 회복 속도 등을 봤을 때 부동산신탁사들의 적자가 하반기에도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향후 부동산신탁 자회사 신용도 하향 압력을 낮추기 위해서는 또 다시 지주사가 나서야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신용평가업계 한 관계자는 "일부 부동산신탁 자회사의 경우 적자 규모에 비해 올해 증자 규모가 충분하지 않다"라며 "하반기에도 적자가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올해 유증 규모가) 안심할 정도는 아니다"고 설명했다.
다만 문제가 되고 있는 책준형 사업이 지주 계열 부동산신탁사에서 주로 이뤄진 점을 고려하면 업계 전반으로 위기가 확대될 가능성은 낮다고 봤다.
이 관계자는 "금융지주 계열 부동산 신탁사들이 증자나 신종자본증권 인수 등으로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에 업계 전체가 저축은행처럼 아주 위기 국면에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지수 (jisoo@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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