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신라, 면세 불황에 1300억원대 자금 조달…남은 과제는 [넘버스]

호텔신라가 지난 5일 자사주를 담보로 1328억원 규모의 교환사채를 발행했다. 신라면세점 전경 /사진 제공=호텔신라

호텔신라가 차입금 상환을 위해 1328억원 규모의 채권을 발행했다. 엔데믹 전환에도 면세사업의 매출이 늘지 않자 부채비율을 낮추고 이자비용을 줄이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전반적으로 면세 업계가 고전하는 가운데 호텔신라가 재무구조 개선과 함께 기존 시내·공항면세점을 어떻게 운영할지 주목된다.

1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호텔신라는 지난 5일 자사주 213만5000주를 활용해 1327억9700만원의 무기명식 무보증 사모 교환사채(EB)를 발행했다. 1주당 교환가액은 가중산술평균주가에서 15% 할증한 6만2200원, 만기일은 오는 2029년 7월5일이다. 채권의 표면 및 만기이자율은 모두 0%다. EB는 채권자에게 추후 호텔신라 주식으로 교환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 사채로, 회계상 부채비율을 낮출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확보한 자금은 지난해 KB국민은행으로부터 연 4.65% 금리로 빌린 1500억원의 차입금을 상환하는 데 쓰일 예정이다. 재무건전성을 높이려는 호텔신라의 의지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호텔신라의 재무상황은 최근 몇년간 좋지 않았다. 올 1분기 총차입금은 1조9060억원으로 지난해 말 대비 19%가량 늘었다. 통상 30% 이하를 적정 수준으로 평가하는 차입금의존도도 2021년 56.6%에서 올해 1분기 기준 59.6%까지 확대됐다. 대표적 원인은 호텔신라 매출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면세(TR) 부문의 부진이다. 1분기 TR 부문 매출(8348억원)은 전년동기대비 36%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이 232억7000만원에서 45억6500만원으로 80% 감소하는 등 수익성이 좋지 않았다. 지난 3년간 매출도 3조3496억원, 4조3332억원, 2조9579억원으로 하향세를 보였다.

불황은 2020년 코로나19 유행으로 관광객의 발길이 끊기면서 시작됐다. 호텔신라는 2013년 싱가포르 창이국제공항을 시작으로 2019년까지 마카오·태국·일본 등 해외 업체와 합작사를 차리거나 단독 면세점을 내면서 글로벌 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했다. 2018년에는 국내 면세사업자 최초로 해외 매출 1조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이후 2020년 팬데믹으로 해외 사업을 점차 축소했지만 싱가포르·홍콩·마카오 등의 면세점을 유지하는 비용이 컸다. 임대료와 인건비 등 고정비 부담이 지속되면서 재무상황이 나빠졌다. 부채비율을 보면 팬데믹 전후의 차이가 극명하다. 2018년과 2019년 부채비율은 각각 132.4%, 145.8%였지만 팬데믹 이후 △2020년 278.5% △2021년 361.1% △2022년 444.4% △2023년 394.1% 등으로 급증했다. 올 1분기에도 부채비율 426.8%를 기록해 재정 압박이 커진 상황이다.

인천공항 면세사업권으로 활로 찾나

호텔신라가 무이자로 자금을 조달했다는 점에서 금융비용 부담은 덜어낼 것으로 보인다. 이번 EB의 표면 및 만기이자율은 모두 0%다. 호텔신라가 지난 3년간 지출한 금융비용(이자비용)은 399억원, 424억원, 515억원에 달했다. 올해 3월 말까지 지출한 금융비용도 149억원 수준으로 전년동기(125억원) 대비 18.8% 늘었다.

문제는 외국인들의 면세점 방문이 느는 와중에도 매출은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면세점의 외국인 이용객 수는 602만4290명으로 팬데믹 기간인 2021년(66만5579명)보다 10배, 2022년(156만3046명)보다는 4배가량 늘었다. 반면 면세점 매출은 13조7585억원으로 코로나19 기간인 2021년(17조8333억원), 2022년(17조8163억원) 보다 22% 하락했다. 2019년(24조8586억원)과 비교하면 거의 반 토막이 났다. 외국인 여행 트렌드가 패키지에서 개별여행으로, 면세점 쇼핑 대신 로드숍 위주로 바뀌면서 수요가 이전과 달라진 영향이 컸다.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서 신라면세점이 선보이고 있는 '샤넬 썸머 클럽' /사진 제공=신라면세점

우선 호텔신라는 신라면세점 인천공항점의 수익성 확보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엔데믹 전환으로 올 1분기 기준 외국인 관광객 수가 2019년의 88%선까지 회복됐고, 4월 기준 인천공항 여객 수도 코로나19 이전 대비 97%까지 올라온 556만명에 달한 것이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 신라면세점은 지난해 4월 인천공항 면세점 입찰에서 DF1(향수·화장품·주류·담배)과 DF3(패션·액세서리) 구역의 영업권을 확보했다. DF1은 내국인들도 자주 찾는 물품을 판매하고 DF3와 함께 출국장 위치도 가까워 당시 매출 증가에 대한 기대가 높았다. 신라면세점은 최근 인천공항점 오픈 1주년 기념으로 내외국인 관광객의 소비를 유도하는 각종 할인행사와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다른 면세 업계처럼 임대료·인건비 등 고정비를 줄이기 위해 시내면세점 영업공간을 축소할 가능성도 있다. 지난달 비상경영 체제를 선언한 롯데면세점은 국내 시내면세점 중 가장 넓은 잠실 월드타워점 면적의 35% 수준인 타워동(4599㎡) 매장의 문을 닫는다고 밝혔다. 타워동 매장은 2017년 중국인 관광객 및 월드타워 방문객이 늘면서 오픈했지만, 경영 효율화를 위해 축소하기로 결정했다. 신세계면세점은 강남점이 있던 자리에 미식공간 ‘하우스 오브 신세계’를 열었고, 국내 1호 시내면세점인 동화면세점도 지난해 지하 1층 영업장을 매각했다.

이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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