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가 추진 중인 오르카(Orka) 프로젝트가 한국 방산업계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3000톤급 잠수함 3척을 도입하는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잠수함 수출을 넘어 한국 방산업체들의 유럽 시장 진출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입니다.
약 3조원의 건조 사업비에 함정 MRO(유지·보수·정비) 사업비까지 포함하면 총 8조원에 달하는 이 프로젝트는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을 중심으로 한 한국 조선사들이 사활을 걸고 있는 중요한 전장이 되고 있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만든 기회
왜 하필 폴란드인가요? 이는 지정학적 상황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폴란드는 자국 안보에 대한 위협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군사력 증강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발트해 연안국으로서 해양 안보의 중요성이 커짐에 따라 잠수함 전력 강화는 폴란드의 핵심 군사 현대화 과제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의 데이터에 따르면, 최근 5년(2020~2024년) 한국의 방산 수출에서 폴란드가 차지하는 비중은 46%에 달합니다.
이는 2022년 폴란드가 K2전차 180대, FA-50 경공격기 48대, K9자주포 212문, 천무 다연장로켓 218대 등 약 17조원 규모의 한국산 무기체계를 대량 구매한 결과이지요.
폴란드가 한국의 무기체계를 선택한 배경에는 높은 성능 대비 합리적인 가격, 러시아 무기체계와의 대응 경험, 신속한 인도 가능성, 그리고 기술 이전 및 현지화에 대한 한국 기업들의 적극적인 의지가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르카 프로젝트는 한국 방산업체들에게 육상 무기체계에서 해상 무기체계로 협력 범위를 확장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의 치열한 경쟁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은 각자의 강점을 내세우며 오르카 프로젝트 수주를 위해 전략적 접근을 하고 있습니다.

HD현대중공업은 2023년 폴란드에서 열린 '국제해양 안보포럼'에서 3000톤급 잠수함(KSS-Ⅲ PL)과 2300톤급 잠수함(HDS-2300) 두 가지 플랫폼을 동시에 제안하며 주목받았습니다.
이는 참여 의향서를 제출한 조선업체 중 유일하게 두 가지 플랫폼을 제시한 경우입니다.
특히 자체 개발한 2300톤급 잠수함은 발트해의 환경적 특성을 고려하면서도 건조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됐습니다.
발트해는 수심이 상대적으로 얕고 염도가 낮은 특성이 있어, 이에 최적화된 잠수함 설계는 폴란드 해군에게 매력적인 제안이 될 수 있습니다.
한편 한화오션은 김동관 부회장의 주도 아래 한화그룹의 방산 역량을 총동원한 접근법을 취하고 있습니다.
3000톤급 '장보고-III 배치' 잠수함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공동개발한 리튬이온 배터리와 한화시스템의 전투체계가 탑재된 통합 솔루션인데요.
이는 단순한 잠수함 판매를 넘어 한화그룹 전체의 방산 기술력을 패키지로 제공할 수 있다는 강점을 가집니다.

특히 최신 리튬이온 배터리 기술은 재래식 디젤-전기 추진 잠수함의 잠항 지속시간과 성능을 크게 향상시키는 핵심 요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 기술은 한국 해군이 도입한 장보고-III 잠수함에 이미 적용되어 그 성능이 입증되었으며, 이는 폴란드와 같은 국가들에게 큰 매력 포인트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폴란드 현지 산업과의 협력 강화
오르카 프로젝트 수주의 핵심 변수 중 하나는 폴란드 현지 산업과의 협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폴란드 정부는 경제 기여도를 중점 고려 요소로 설정하고, 기술 이전, 현지 생산, 일자리 창출 등을 강조하고 있어요.
HD현대중공업은 폴란드 레몬토바(Remontowa) 조선소와 MRO 협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레몬토바는 연간 약 200척 이상의 선박을 건조 및 수리하는 폴란드 대표 조선소로, 유럽 내 MRO 분야 1위의 입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협력은 단순한 잠수함 판매를 넘어 장기적인 유지보수 체계를 구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화오션은 레몬토바뿐만 아니라 나우타(Nauta) 조선소와도 협력을 논의 중이며, 지난해에는 폴란드 대표 방산 그룹인 WB그룹과 잠수함 사업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습니다.
이러한 현지 기업과의 협력은 폴란드 정부의 '현지화' 요구를 충족시키는 동시에, 향후 유럽 시장 진출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효과가 있는 것이지요.
발트해 환경에 맞춘 맞춤형 잠수함 설계
발트해의 평균 수심은 55m에 불과하고, 최대 수심은 459m 정도입니다.
또한 염도가 대양의 1/5 수준으로 낮아, 다른 바다와는 다른 독특한 환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기존의 대형 대양용 잠수함보다는 소형화되고 특화된 설계가 필요한데요.
HD현대중공업이 제안한 2300톤급 잠수함(HDS-2300)은 이러한 발트해의 특성을 고려해 설계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얕은 수심에서도 효율적으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선체 형상과 추진 시스템이 최적화되었습니다.
또한 상대적으로 작은 크기는 폴란드의 작은 항구들에서도 운용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한화오션의 3000톤급 '장보고-III 배치'는 더 큰 잠수함이지만, 첨단 소나 시스템과 저소음 추진 기술을 적용해 발트해에서의 대잠수함 작전에 효과적인 성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특히 러시아의 칼리닌그라드 지역에서 운용되는 러시아 잠수함에 대응하기 위한 고성능 탐지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오르카 프로젝트의 전략적 함의
오르카 프로젝트 수주는 한국 방산업체들에게 단순한 경제적 이익을 넘어 유럽 방산시장 진출의 결정적 전환점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NATO 회원국인 폴란드에 잠수함을 공급한다는 것은 한국 잠수함 기술에 대한 NATO 표준의 인증을 받는 효과가 있어습니다.
이는 향후 루마니아, 그리스 등 다른 유럽 국가들의 잠수함 도입 사업에도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된다는 의미이지요.
루마니아는 이미 K9 자주포를 도입하는 등 한국 방산장비에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그리스는 노후화된 잠수함 교체 사업을 계획 중에 있습니다.
세계 잠수함 시장은 현재 프랑스의 나발 그룹, 독일의 TKMS, 스페인의 나반티아, 스웨덴의 사브 등 전통적인 유럽 강자들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재래식 디젤 잠수함을 건조하지 않고 핵잠수함만을 건조하기 때문에 잠수함 건조 시장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한국은 후발주자로서 자체 기술을 바탕으로 시장 진입을 시도하고 있는 단계인데요.
오르카 프로젝트 수주는 인도네시아에 이어 한국 잠수함 기술의 해외 수출 사례가 될 가능성이 높으며, 필리핀 등 이미 협상 중인 아시아 국가들과의 계약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AIP 추진 시스템, 한국의 기술적 경쟁력
한국이 개발한 잠수함의 주요 경쟁력 중 하나는 공기불요추진(AIP) 시스템입니다.
이 기술은 재래식 디젤-전기 잠수함의 최대 약점인 스노클링(공기 흡입을 위해 수면 가까이 올라와야 하는 것) 빈도를 크게 줄여줍니다.

한국은 독자적인 연료전지 기반 AIP 시스템을 개발했는데요,
이 시스템은 수소와 산소를 결합해 전기를 생산하는 방식으로, 독일이나 스웨덴의 시스템보다 효율성과 안전성 면에서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특히 한화오션이 제안한 장보고-III 배치 잠수함에 적용된 리튬이온 배터리와 AIP 시스템의 조합은 2주 이상 스노클링 없이 잠항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합니다.
이러한 기술적 우위는 발트해와 같이 제한된 해역에서 러시아 함대에 대응해야 하는 폴란드 해군에게 매력적인 옵션이 될 수 있습니다.
장시간 잠항 능력은 적의 탐지를 회피하면서 효과적인 정찰 및 감시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죠.
한국 방산업체의 '원팀' 전략과 전망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은 지난 달 방사청과 '함정 수출사업 원팀 구성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습니다.
이 합의에 따르면 함정 수출사업 참여 시 HD현대중공업은 수상함을, 한화오션은 잠수함 수출사업을 주관하며 상호 지원하는 체제를 갖추게 됩니다.
그러나 오르카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이미 양사가 별도로 입찰의향서를 제출한 상태로, 회사별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이는 경쟁을 통한 최적의 제안을 도출하는 한편, 폴란드에 다양한 옵션을 제시함으로써 한국 방산업체 전체의 수주 가능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습니다.
올해 상반기 중 우선협상대상자가 선정되고 3분기 중 최종 계약이 체결될 전망이며, 한국 조선사들의 치열한 수주 경쟁은 계속될 것입니다.
폴란드 오르카 프로젝트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변화된 유럽 안보 환경 속에서, 한국 방산업체들이 글로벌 방산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이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는 한국 방산산업의 미래가 육상무기 뿐만 아니라 해상무기로도 유럽에 진출할 수 있는 분기점이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주목해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