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O협약, 노조는 안되고 ‘필리핀 이모’는 된다?…김문수의 이중잣대

공성윤 기자 2024. 10. 2.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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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 파업에 “ILO 적용 못한다”던 김문수 장관, 외국인 급여는 ILO 근거로 “차별 안 돼”

(시사저널=공성윤 기자)

노동계로부터 '반(反)노동' 인사로 비판을 받아 온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이 최근 외국인 가사관리사의 임금을 낮추기 어렵다는 주장을 재차 펼치면서 그 주장의 논거로 ILO 협약을 꺼내 들었다. '외국인 가사관리사 사업에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해야 한다'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입장에 반대하면서다. 김 장관은 과거 화물연대 파업 때 ILO 협약의 현실성을 폄하했던 터라 지금의 이같은 입장 변화는 이례적이란 분석이 뒤따른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이 9월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청년 취업지원 대책 관련 당·정협의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김 장관은 최근 외국인 가사관리사의 임금을 낮추기 어렵다는 주장을 재차 폈다. 그는 9월3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가사관리사에 대한 최저임금 차등 적용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싱가포르는 (가사관리사 급여가) 100만원 이내인데 우리는 왜 비싸냐'고 하는데 한국과 싱가포르는 전혀 다른 나라"라며 "싱가포르는 우리보다 작은 도시국가여서 속속들이 관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임금을 낮추면 근로자 이탈 등 부작용이 생길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김 장관은 인사청문회 때도 같은 입장을 내놨다. 그때 근거로 인용한 것이 'ILO 111호 협약'이다. 이는 고용과 직업에 있어 차별대우를 해선 안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는 김대중 정부 때인 1998년에 이를 비준했다. 이에 따라 출신 국가에 상관없이 모든 근로자에게 최저임금 기준을 동일 적용해야 한다. 김 장관이 예로 든 싱가포르는 ILO 111호 협약을 비준하지 않고 있다.

김 장관은 해당 협약과 함께 헌법(평등권), 국내법(근로기준법·외국인고용법) 등을 거론하며 "외국인 근로자라는 이유만으로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는 것은 이에 배치된다"고 청문회 전날인 지난 8월25일 국회에 서면 답변했다.

2022년 화물파업 때는 "ILO 얘기대로 되는 나라 없다"

이는 2년 전에 김 장관이 보인 태도와는 사뭇 결이 다르다. 당시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던 김 장관은 화물연대의 운송 거부를 '불법'으로 규정하며 ILO 협약의 경직성을 지적했다. 그는 2022년 12월 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화물연대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이 ILO 강제노동 금지 협약에 위배될 위험은 없나'라는 질문에 "ILO 얘기대로 되는 나라가 미국도 없고 세계적으로 없다. 다 규약을 적용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후 지난 3월 ILO는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이 '결사의 자유' 침해라고 판단하며 화물운송 노동자에 대한 형사처벌 금지 등을 권고했다. 이에 정부는 "당시 업무개시명령은 정당한 조치였다"라며 "ILO 권고는 구속력이 없다"고 평가절하했다. 화물연대는 ILO 협약에 대한 김 장관의 태도를 꼬집으며 장관 임명 철회를 촉구하기도 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8월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간담회의실에서 열린 필리핀 가사관리사 임금 관련 세미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서울시

"고용노동부 끌려가는 모습, 尹 정부에 득될 것 없어"

이처럼 ILO 협약에 부정적이던 김 장관이 외국인 가사관리사 급여 문제에 있어서는 ILO 협약을 적극 인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외국인 가사관리사 제도를 추진 중인 오세훈 서울시장과 대립하는 모양새가 됐다. 오 시장은 8월27일 국회 세미나에서 "ILO 협약 등에 따라 최저임금 적용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가사관리사 제도) 시행 전부터 높은 비용 문제가 계속 제기되고 있다"며 "고비용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해외 돌봄 인력을 도입해봐야 중산층 이하 가정에는 그림의 떡"이라고 지적했다. 이 자리에는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도 참석해 힘을 보탰다.

ILO 협약을 뒤늦게 강조한 김 장관의 언행을 두고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는 시각도 있다.야권의 한 관계자는 "외국인 급여 문제의 키를 쥔 고용노동부가 서울시에 끌려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윤석열 정부에게 득될 게 없다"고 주장했다. 일단 김 장관은 이번 사안과 관련해 오 시장과의 면담 의사를 밝히며 "만나면 상당한 협력이 될 것"이라고 밝힌 상태다.

서울시는 양육가정의 가사·육아 부담과 여성경력 단절 예방을 위해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을 추진 중이다. 해당 사업에 지원한 필리핀 가사관리사 100명은 지난 9월3일부터 서울 각 가정에서 근무 중이다. 이들은 국내 최저시급인 9860원에 4대 보험료 등을 더해 시간당 1만3700원을 받는다. 월급으로 치면 주 40시간 근로 기준 약 206만원이다. 내국인과 비슷한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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