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만 무성한 한동훈, 칼자루 썩겠네

한겨레21 2024. 10. 25.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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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탕 차담’ 뒤 한가해 보이는 친한계 모임… 특별감찰관 꺼내 들었지만 ‘김건희 의혹’ 다루기엔 한계 뚜렷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10월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 파인그라스에서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를 만나 대화하고 있다. 이 자리에는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배석했다. 대통령실 제공

어느 날 사도 왕윤이 생일을 핑계로 대신들을 집에 불러 모았다. 역적 동탁을 제거할 방책을 찾자는 것이었다. 늙은 대신들이 종묘사직 걱정에 한숨 쉬고 눈물짓고 밤새도록 통곡하자 말석에 있던 효기교위 조조가 이들을 비웃으며 말했다. “언제까지 울기만 할 겁니까! 칠성보도를 내주시면 제가 동탁을 처리하겠습니다.” 잘 알려진 대로 조조는 동탁 암살에 실패해 관직을 버리고 도망치는 신세가 된다.

‘3대 요구’ 들을 생각 없는 대통령

삼국지 얘기를 새삼 꺼낸 건 2024년 10월22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소집한, 이른바 ‘친한계 모임’에서 이 대목이 연상됐기 때문이다. 보도에 따르면 이 자리에는 현역 의원 20여 명이 참석했다는데, 상황의 엄중함을 공유했다고는 하지만 김건희 특검 등에 대해선 논의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동훈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에게 철저히 무시당한 데 대한 아픔을 공유하고 이를 위로한 뒤 앞으로 어떻게 할지는 천천히 생각해보기로 했다는 얘긴데, 아직 한가한 분위기다 싶다.

한동훈 대표가 이 자리에서 윤석열 대통령과의 면담에 대해 밝혔다는 내용을 보면 대통령의 인식은 분명한 것 같다. 대통령은 한동훈 대표와의 회동에서 이른바 ‘3대 요구사항’에 대해 이런 취지로 답했다고 한다. 첫째, ‘김건희 라인’ 인사 조처는 잘못이 뭔지 구체적으로 지적해야 할 수 있다. 둘째, 김건희 여사 활동은 이미 최소화했으므로 별도의 선언은 필요 없다. 셋째, 명태균씨 등 관련 의혹은 막연히 제기해선 안 되고 이미 검찰 조사가 진행 중이니 지켜볼 문제다. 결국 한동훈 대표가 주장하는 ‘문제’란 존재하지 않으며, 그럼에도 3대 요구사항 운운하는 것은 야당의 얼토당토않은 프레임에 놀아나는 것에 불과하다는 거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를 행동으로도 보여줬다. 첫째, 대통령실에서 공개한 사진을 보라. 윤석열 대통령은 거의 모든 사진에서 매우 불쾌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김건희 라인’으로 지목된 인사가 등장하는 사진도 있다. 사진을 고른 주체가 한동훈 대표의 문제 제기를 무시하기로 작정한 게 아니라면 이렇게 될 리 없다.

둘째, 10월21일 대통령과 한 대표의 회동은 오후 4시50분에야 시작됐고 80분간 진행됐다. 식사라도 함께 하는 게 상례겠지만 예정된 다른 만찬 일정으로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런데 대통령은 회동 이후 예정된 만찬을 진행하면서 굳이 한 대표는 초대하지 않은 자리에 추경호 원내대표를 불렀다. 한 대표는 이미 ‘저쪽’으로 넘어간 ‘배신자’고 추 원내대표는 ‘이쪽’의 ‘우리 편’으로 본다는 뜻 아니겠는가. 친한계 일각에서 고려했다는 ‘이명박-박근혜’ 신사협정 모델은 말 그대로 한여름 밤의 꿈에 불과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이런 태도는 검사, 아니 검객의 세계관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엘리트 특수부 검사들은 죄가 되고 안 되고를 자신들이 결정할 수 있다고 믿는 듯하다. 대한민국 시사에는 그런 장면이 많이 연출돼왔다. 죄가 되면 기소하고 안 되면 불기소하는 게 아니다. 기소하면 죄고 불기소하면 무죄다. 이런 세계관에서 결국 유무죄는 상대적인 것이므로 검사는 ‘어느 편’에 설 것이냐만 결정하면 된다. 이게 일부 엘리트 특수부 검사 출신이 탈탈 털고 또 덮어주면서 권력과 관계를 맺는 방식일 텐데, 가히 검사가 아니라 검객에 비유할 만한 세계다. 검사 출신 대통령 역시 이런 세계관의 소유자이므로 명백히 존재하는 문제를 ‘없다’고 우길 수 있는 거고, ‘없는 문제를 있다고 하는 녀석이 배신자’란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 아니겠나.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10월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를 만나 차담 장소인 파인그라스로 이동하며 대화하고 있다. 맨 왼쪽은 김건희 라인으로 분류된 이기정 의전비서관. 대통령실 제공

특별감찰관으로 시간 끌기?

그러나 검찰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관련 김건희 여사를 끝내 불기소 처분하면서 특검의 필요성은 더욱 부정할 수 없게 됐다. 동아일보 논설주간이 이그노벨상을 줘야 한다고 꼬집을 정도(동아일보 2024년 10월20일 천광암 칼럼)로 검찰의 논리가 부실하기 때문이다. 압수수색 시도 등에 대해 잘못된 설명을 하는 등 수사가 졸속으로 이뤄진 게 아닌지 의심되는 정황도 있다.

다음 국면이 김건희 특검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가 돼야 하는 건 이래서다. 한동훈 대표는 “오직 국민만 보고 민심을 따라서 피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다. 이의 연장선에서 특검 문제를 다룬다면 논리적으로 세 가지 방식이 가능하다. 첫째는 야권이 이미 내놓은 김건희 특검법을 인정하는 것이다. 둘째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회담 등을 기회로 ‘독소조항’을 손보는 등 협상을 진행하는 것이다. 셋째는 국민의힘이 자체적인 특검법을 제출하는 거다.

한 대표는 야권이 제출한 특검법에 대해 사법 원리에 맞지 않는다는 등의 비판을 해왔다. 동아일보는 10월19일 한 대표가 “민주당이 임명한 특검이 우리 당 공천 상황을 확인해보겠다고 당을 압수수색할 수 있다”고 주변에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런 입장으로 보면 첫째 해법은 아무래도 어렵고 둘째나 셋째 방식을 고려할 수 있을 거다.

한동훈 대표는 일단 특별감찰관 추천 논의로 시간을 벌어보려는 심산인 것 같지만,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이나 공천 개입 의혹 등을 특별감찰관으로 다루는 건 아무래도 한계가 뚜렷하다. 그럼에도 특별감찰관 문제를 먼저 이슈화하는 것에 대해선, 탄핵을 촉발할 수도 있는 특검법 처리가 한 대표를 ‘배신자 프레임’에 가두는 경우를 우려하기 때문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정치공학에 능한 여의도 호사가들이 특검과 탄핵을 주제로 한 이런저런 계산을 얘기한 지는 꽤 됐다. 여기서 두 가지는 꼭 짚어야 한다. 첫째, 특검의 본질은 수싸움이 아니라 검찰이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는 사안에 대한 진실을 밝히고 법적 정의를 실현하는 것에 있다. 둘째, ‘배신자’나 ‘제2의 유승민’이란 프레임을 누군가가 깨지 않으면 보수의 혁신은 영원히 불가능하다. 진정한 의미에서 보수가 재집권하려면 지도자적 정치인이 명분과 본질에 호소하는 것으로 보수 혁신을 시도해야 한다.

칠성보도를 빌릴 각오는 언제 할 것인가

동탁 암살에 실패해 고향으로 도주한 조조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반동탁연합에 참가하고 세를 불려 천하를 다투는 지위에 오른다. 도망가는 신세일 때는 그도 뒷일을 장담할 수 없었을 거다. 반면 남의 손을 연거푸 빌린 왕윤은 결국 실패했다. 한동훈 대표는 얼마 전 비틀스 멤버들의 대화를 인용하며 “절벽에서 뛰어내려야 될 상황이 되면 주저하지 않고 뛰어내리겠다”고 했는데, 칠성보도를 빌릴 각오는 언제 할 것인가?

김민하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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