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제일시장 #한양집 #노포 #생선구이 #임연수어 #소라
지상으로 나온 지하철. 연천 방향 1호선 창밖으로 우뚝 솟은 도봉산과 바위산 무리를 한참 쳐다보았다. 구면이지, 우리. 구름처럼 저 높은 봉우리에 걸렸다가 흩어지는, 어른으로서 생애 첫걸음을 뗄 무렵의 기억, 오랫동안 꼭 감은 두 눈에 고여 있을지도. 뜨면 다시 제 길 찾아 흘러갈까. 시야에서 멀어지는 산봉우리. 행선지가 가까워져 온다. 한양 밖의 의정부. 의정부 제일시장 안의 한양집.



시장의 명물 곰보냉면에서의 인터뷰를 마치고 들어간 넓고 깊숙한 지하, 8비트로 출력되는 고전 게임 화면 속 던전 같은 이곳은 이름하여 <음식백화점>. 한양집, 고흥집, 호남집, 소양강집, 자매집, 만복집……. 제각기 블록 형태로 자리 잡은 온갖 '집'들이 음식과 맛의 '특수구역'을 이루고 있었다.

전국 팔도를 아우른 노포의 집성
다시 쓰는 맛의 지도
사람들의 편의와 입맛에 맞는 정보를 제공하는 지도 앱은 거꾸로 이용자들의 삶을 지도를 구성하는 일부로 흡수하였다. ‘리뷰’와 ‘별점’을 공유하는 이 시스템에 너도나도 힙한 플랫폼이라고 칭송하며 적극 동참했다.


그러나 시계를 보지 않으면 밤낮을 알 수 없는 이곳은 무드를 자아내는 조명도, BGM도 없이 삶의 현장을 그대로 노출했다. 소라껍데기와 초록 병을 모아 집을 지어도 누구도 핀잔하지 않을 여기. 방향을 종잡을 수 없는 사나운 바람이 부는 길 위, 뿌연 김이 서린 포장 한 겹으로 간신히 서 있는 노포, 온기 그득한 그 안에 막 들어왔을 때 느껴지는 아슬아슬한 안도감이 상가 안쪽을 훤히 비추는 백열등 아래서도 그대로 재현됐다. 검은 패딩 속에서 구부정하게 고개를 내민 손님들이 삼삼오오 모여 무르익은 취기로 공기를 데우고 있었다.

메뉴판 외의 요리도 문의 가능, 가격은 ‘시가’라 그날그날 다르다. 값도 종류도 미정未定인 끼니는 정량과 정시에 맞춰 제조된 음식이 담을 수 없는 맛을 냈다. 데친 소라살의 희고 보드라운 살결이 바닷빛을 닮은 푸르스름한 간과 함께 적당한 두께로 저며져 나왔다. 미지근하게 잘 식은 온도. 난삽한 유통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시장에서 직접 공수한 생물의 살맛에 이모님의 손길이 더해, 적당한 수분감과 탄력이 전해졌다. 입안에서 담백한 풍미를 터뜨리는 알진 속살을 음미한다. 해산물을 먹는 묘미는 다른 데 없다.


꼬들꼬들한 소라살을 씹어 삼키고 맥주 몇 모금을 들이켜고 있을 때 모락모락 수분기 어린 기름내를 달게 뿜어내는 부추전을 앞접시 가득 담아 주셨다. 입가에 산뜻한 기름기를 남기며 사르르 녹는 부추전. 촘촘한 가시와 살결 사이사이를 고루 노릇하게 구운 생선이 나란히 자리를 차지했다. 고등어도, 굴비도, 삼치도 아닌 임연수어. 제철 겨울을 맞아 한양집에서 별미로 다시 태어났다. 투박하게 토막 낸 임연수어의 백지 같은 살을 약불에 기름을 둘러 오래 지지면 노포에서 먹는 안주로 손색없다. 껍질은 껍질대로 바삭하고 살은 살대로 고소한, 흔한 생선 임연수어의 인상적인 일미一味.


찾아오는 이들에게 기꺼이 ‘집’이 되어주는 의정부 제일시장 지하 노포 한양집. 한껏 살이 오른 싱싱한 재료 그 자체가 이미 훌륭한 요릿감이지만, 주방 이모의 노하우와 손맛, 그리고 정성이 충분히 배는 일련의 조리 과정과 시간을 보내야 피로와 허기를 달랠 만큼의 깊은 맛을 내는 ‘소울푸드’가 완성된다. 다음 요리가 나올 때까지 밑반찬으로 나온 삶은 고구마의 껍질을 벗겨 살뜰히 먹었다. 곁에 놓인 다시마와 초장, 깍두기의 정겨운 맛도 함께.



사람들은 밥상과 술상에 줄곧 올라오는 것과 다르지 않은 시장 음식을 먹으며 시름을 덜고 살아갈 힘을 얻는다. 흔한 음식이 주는 사랑. 나는 그것이 지천으로 널린 공기와도 같다고 생각한다. 그것 없이는 살 수 없지만 너무 흔해서 소중함이 잊힌 존재. 문득 사람 사는 이야기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에 등장한 한 출연자의 말이 떠오른다. 정작 중요한 일은 어렵지 않다고. 사람을 살게 하는 사랑도 아마 그럴 것이라고 여기면서 노란 알배추의 달큰한 잎사귀를 씹는다. 도처에 널린 그 흔한 사랑이 나는 좋다.
글 | 이은서
사진 | 신태진 · 이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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